‘19금’에 발목 잡힌 순수의시대·그레이·헬머니 안방서 역전할까
지난해 5월 개봉해 극장에서 144만 관객을 모으는 데 만족해야 했지만, 안방에서 ‘1000만 영화’ ‘변호인’(감독 양우석)을 압도할 정도로 ‘대박’을 터뜨렸던 송승헌, 임지연의 ‘19금 멜로’ ‘인간중독’(감독 김대우)의 뒤를 이을 태세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사극 멜로 ‘순수의 시대’다. 조선 초를 배경으로 소중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죽을 각오로 앞만 보며 미친 듯이 달려가던 무장 ‘김민재’(신하균)가 베일에 싸인 기녀 ‘가희’(강한나)를 만나 사랑하게 되면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이야기다. 신하균, 장혁, 강하늘의 주연작이자 스릴러 ‘블라인드’(2011)를 연출한 안상훈 감독의 신작으로 기대를 모으며 지난 3월5일 개봉했다. 그러나 할리우드 액션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감독 매튜 본)의 위세에 눌려 50만 관객을 들이는 데 그쳤다. 신예 강한나의 과감한 노출과 신하균은 물론 장혁, 강하늘 등 세 남자와 펼친 농도 짙은 베드신이 안방에서 얼마만큼 호응을 얻을지 주목된다.
‘순수의 시대’를 위협하는 작품이 할리우드 로맨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감독 샘 테일러-존슨)다. 청순미 넘치는 사회 초년생 ‘아나스타샤’(다코타 존슨)와 재력·외모·두뇌·매너 등 모든 것을 다 갖춘 젊은 CEO ‘크리스천 그레이’(제이미 도넌)의 사랑 이야기다. 두 사람은 초고층 아파트 펜트하우스에서 지내고, 단둘이 자가용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데이트한다. 그레이가 아나스타샤에게 선물한 것은 명품 백도 아닌 자동차다. 이처럼 모두가 열광할만한 환상적인 러브스토리만 나왔다면 북미에서 2월14일 개봉 이후 2주 연속 흥행 1위를 질주한 데 힘입어 총 1억6546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흥행했던 것처럼 국내 여성 관객들 사이에서도 통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2월25일 개봉 이후 정서적인 차이, 특히 극 중 두 사람의 성 노예 계약이나 각종 도구를 이용한 가학적이고 변태적인 베드신 등이 여성은 물론 남성들에게서도 공감을 얻지 못해 36만 관객에 그치는 굴욕을 겪고 조기 강판했다.
이 영화는 같은 날 개봉한 ‘순수의 시대’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지만, 곧 ‘순수의 시대’를 밀어내고 ‘킹스맨’에 이어 2위에 올라 52만명을 들이는 기염을 토했다. 전국 욕쟁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웅을 겨루는 욕 배틀 TV 프로그램 ‘욕의 맛’을 배경으로 어두운 과거에 기반을 둔 현란한 욕을 달고 사는 ‘지옥에서 온 헬머니’(김수미)와 가족들의 이야기다. 배꼽을 쏙 빼낼 정도로 웃기는 포복절도 코미디와 눈물·콧물까지 사정없이 끌어내며 울리는 한국적 코미디의 특성을 그대로 살렸다. ‘가문의 영광’ 시리즈로 한국을 웃긴 코미디 영화의 지존 김수미와 아버지 다른 두 아들 ‘승현’과 ‘정현’을 나눠 맡은 충무로 최고의 씬 스틸러 정만식·김정태의 명연기가 명불허전이다. 야하거나 폭력적인 장면도 없고, ‘가족애’ ‘용서’ ‘화해’를 그렸지만,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이 영화에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매길 수 없게 만든 적나라한 욕들이 안방에서도 통할지가 관건이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