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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풀릴까]최저임금 인상만으로 'D의 공포' 사라지나

등록 2015-04-05 06:00:00   최종수정 2016-12-28 14:4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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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주연 기자 = #1. 20대 후반 A씨는 취업을 포기했다. 집 근처 편의점이나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한 달에 80여만원을 받는다. 부모님 집에 얹혀살며 소비를 최소화하고 영화, 소설 등을 인터넷으로 다운로드받아 보며 문화생활을 한다. 친구들과는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고, 결혼은 물론 포기했다.

 #. 30대 중반 직장인 B씨는 대기업 직원이다. 월급은 세후 400만원 정도다. 하지만 외벌이인데다 아파트를 사며 받은 대출 이자를 갚고, 아이까지 키우려니 버겁기만 하다. B씨는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최근 해외직구를 즐겨한다. 같은 제품이라도 해외직구를 하면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 60대 중반 C씨는 요즘 허리띠를 조여매고 산다. 대기업을 다니다 5년 전 퇴직했지만 지난해 아들이 결혼할 때 결혼자금을 보탰고, 최근 금리가 떨어지면서 이자수익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집값도 뚝 떨어져 노후가 불안하기만 하다. 친구들이 가끔 얼굴을 보자고 부르지만 부담스러워 나가기도 싫다. C씨의 취미는 TV보기와 산책하기다.

 소비심리가 얼어붙었다. '내수침체', 'D(디플레이션)의 공포'가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지난달 초 전국의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소비자 심리조사 결과, 응답자의 48.4%가 올해 소비를 지난해보다 줄일 것이라고 응답했다.

 내수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정부와 정치권도 대책마련에 분주하다. 대기업의 저배당정책과 유보금 축적을 죄악시하며 '최저임금 상승'과 '고소득층 소비유도'를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최저임금만 올리면 한국사회를 덮친 'D의 공포'를 해소할 수 있을까.  

 최저임금 인상론의 배경은 내수 부진→투자 위축→고용 악화→소득 감소→내수 부진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자는 것이다.

 하지만 내수부진은 소득 감소 외에도 저출산·고령화라는 인구구조적 요인, 부동산 시장 침체, 대-중소기업간 양극화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기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만으로 문제를 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시각이 대다수다.

 ◇소비주체의 양극화 …88% 중기 근로자 월급 200만원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는 대기업 근로자와 중소기업 근로자간의 소득 양극화를 불러왔다.

 전체 근로자의 88%에 달하는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평균 200만원대의 월급을 받고 있다. 대다수의 소상공인과 아르바이트를 하는 젊은이들은 이보다 더 적은 돈으로 한 달을 살아간다. 당연히 소비여력이 없을 수 밖에 없다. 

 지난 2월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사업체 규모별 임금 및 근로조건 비교' 보고서(김복순 책임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중소기업(300인 미만 사업체 기준) 직원의 월평균 임금은 대기업(300인 이상 사업체 기준) 직원의 56.7%에 그쳤다. 대기업 직원이 100만원을 받을 때 중소기업 직원은 56만7000원을 받는다는 의미다. 

 시간당 임금이 가장 높은 근로자는 대기업 정규직(시간당 2만1568원), 대기업 비정규직(1만4257원), 중소기업 정규직(1만2828원), 중소기업 비정규직(8779원)의 차례였다. 마트, 편의점 등에서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최저임금은 5580원이다.

 월 근로시간 209시간을 월급으로 환산하면 대기업 정규직은 평균 450만원, 대기업 비정규직은 297만원, 중소기업 정규직은 268만원,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183만원을 받는 셈이다.

 중소임금 비정규직 평균에 미치는 월 최저임금 116만6220원(209시간 기준)을 받는 최저임금 적용대상자도 지난해 기준 256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와 정치권은 '최저임금 인상'을 해법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최저임금 인상 여력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소비자들의 반란'…내수 주는데 해외직구는 급팽창

 저임금 근로자들이 돈이 없어 소비를 못하고 있는 가운데 고임금 근로자들은 해외직접구매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해외직구'의 급팽창은 수출위주 경제정책이 빚어낸 그림자다. 해외 소비자들에 비해 역차별에 분노한 국내소비자들이 결국 '해외직구'를 택한 것이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카드 구매실적은 처음으로 10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와 비교해 22.7% 증가한 추세다. 소득정체로 내수가 급격하게 위축됐다고 하지만 해외직구시장은 급팽창한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 김창배 연구위원은 "내수부진 속에서 해외직구가 급팽창하는 것은 눈여겨봐야 할 현상"이라며 "정부와 국내 기업들이 오랫동안 수출 중심의 가격정책 등을 펴다보니 소비자들이 해외직구를 선택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연구위원은 "국내 소비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 만큼 내수시장의 질을 높이고 가격을 합리화하면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며 "직구 수요를 국내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내수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년실신'시대…빚에 얽매여 소비위축

 '청년실신'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청년층이 실업자와 신용불량자로 몰려 실신상태라는 의미다.

 열심히 돈을 벌고, 소비해야 할 청년층이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고 취업마저 못하면서 시들어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월 청년실업률은 11.1%로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취업포기자를 감안한 체감실업률은 12.5%에 달했다.

 기업들이 고용을 계속 줄이고 있는 것이 문제다.

 대기업들은 2년 연속 신규채용을 줄이고 있다. 심지어 올 상반기의 경우 49개 대기업 중 28곳이 "신규채용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중소기업들은 채용을 늘릴 여력이 없다.

 정부는 국회에 계류 중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통과되면 청년일자리 35만개가 창출될 것이라고 하지만 청년들은 이를 신빙성 있게 보지 않는다.

 취업을 했다고 해도 빚이 소비의 발목을 잡는다. 학교에 다니며 쓴 학자금 대출, 결혼하며 쓴 전세자금 대출, 집 사며 쓴 주택담보대출 등 10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는 소비를 위축시키는 주범이다.

 ◇전문가들 '최저임금'만으로는 안돼…투자유도가 '우선'

 전문가들은 '최저임금'으로만 내수부진을 해결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이 투자를 하게 유도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 김창배 연구위원은 "내수가 살아나려면 기업이 투자하고 가계가 소비해야 하는데 기업이 투자하기에는 너무 경기가 안좋고 가계는 소비할 돈이 없는 것이 문제"라며 "기업이 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주축이 돼야 하고, 정부는 기업의 투자여건을 개선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 이근태 연구위원은 "최저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데 인위적으로 조정하면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며 "자영업자들의 타격이 심할 것이고 한계기업, 영세 중소기업들은 벼랑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내부수진을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대기업에 편중된 정부 정책을 중소기업 중심으로 바꾸고,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와 하청업체 단가 후려치기를 근절시켜 88%의 중소기업 직원의 소득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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