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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진단①]‘나에게’ 선물하는 사람들…가치소비 늘어난다

등록 2015-04-13 11:05:09   최종수정 2016-12-28 14: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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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뉴시스】하경민 기자 = 최근 경기불황 속에서도 프리미엄 제품을 구입하길 원하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작은 사치’는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 지난 2월26일 부산 롯데호텔 3층 크리스탈볼룸에서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주최로 열린 ‘제12회 해외 명품대전’ 행사장을 찾은 고객들이 진열상품을 둘러보고 있다. 2015-04-13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최희정 기자 = 밥보다 비싼 스타벅스 커피를 즐기는 젊은 여성을 싸잡아 ‘된장녀’라고 부르며 곱지 못한 시선을 보내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1인 가구와 싱글족 급증으로 소비 패턴이 ‘나’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사회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편의점에서 김밥으로 대충 끼니를 때워도 1만~2만원대 와플이나 아이스크림을 꼭 사 먹는 20대 아르바이트생, 옷은 할인매장에서 사 입어도 오디오나 헤드폰은 프리미엄 제품을 고수하는 40대 직장인, 생필품은 1000원만 비싸도 안사지만 수십만원대 ‘니치 향수’를 살 때는 가격을 전혀 개의치 않는 30대 주부.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필요에 따른 소비가 아니라 기호에 따른 소비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자기만족을 위해서라면 소비 여력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주저하지 않고 지갑을 연다.

 ‘작은 사치’는 사치스러운 느낌이 들지만, 과하게 비싸지 않아 소비자가 감당할 만한 가격 수준의 제품을 소비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경기불황 속에서도 프리미엄 제품을 구매하고 싶어 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작은 사치’는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 단순히 과시하기 위해 명품을 사들이는 것이 아니라 개인 취향에 따른 소비를 통해 즐거움을 얻고자 하므로 개념 있는 소비가 될 것 같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작은 사치의 빛과 그림자를 살펴보자.

 ◇한국서 유행하는 ‘파리 살롱문화’

 #1. 서울 소재 IT 관련 중소기업에 다니는 30대 싱글남 이모씨. 지난주 그는 70만원대 해외 유명 브랜드 런닝화를 한 켤레 샀다. 마라톤이나 조깅을 즐겨서가 아니다. 단지 맘에 드는 운동화를 사 신는 것이 좋았기 때문. 평소 패션 운동화에 관심이 많은 이모씨는 수십만원짜리 운동화를 십 수 켤레 소장하고 있다. 하지만 운동화 구입에 들어가는 비용 지출이 많다 보니 주중에 사 먹는 점심값을 포함, 먹는 데 돈을 쓰는 것은 인색하다

 #2. 경기도 일산에 사는 30대 주부 김모씨. 직장에 다닐 때만 해도 주말마다 맛집을 찾아다녔지만, 결혼 후 아이가 생기고 일을 관두면서 이마저도 쉽지 않게 됐다. 대신 그녀는 이웃집 아이 엄마들과 함께 백화점 쇼핑이 끝난 뒤 아이스크림이나 마카롱을 먹으러 간다. 커피까지 곁들이면 보통 1만원은 훌쩍 넘지만, 이 정도 가격에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한다.

 #3. 서울 신촌 인근 대학에 다니기 위해 부산에서 올라온 20대 대학생 강모씨는 ‘니치 향수’에 관심이 많다. 틈새 향수라는 뜻의 니치향수는 ‘소수를 위한 고급향수’ 제품으로 일반 향수보다 가격이 2~3배 높다. 강모씨는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 고시원 생활을 하고 있지만, 자신한테 맞는 향수를 발견하면 지르기를 서슴지 않는다. 남들이 쓰는 대중적인 향보다는 자신만의 독특한 향을 찾는다는 강모씨는 최근 백화점에 입점한 니치 향수브랜드 20만원대 신제품을 시향하고 바로 구매했다.

 경기불황에도 ‘작은 사치’를 누리려는 사람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내수 침체는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으나 밥값보다 비싼 커피나 아이스크림, 한 줄에 5000원이 넘는 프리미엄 김밥, 수십만원짜리 니치 향수, 수백만원에 달하는 오디오 기기 및 수십만원대 헤드폰 등 자신의 취미나 기호에 맞는 상품을 찾는 소비자들은 급증했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자사의 디저트 매출 신장률이 매년 두 자릿수를 기록하면서 식품 전체 매출 신장률을 뛰어넘고 있다.

 또 2008년 디저트 매출이 400억원 수준에서 2013년에는 900억여원으로 2배 넘게 늘어나고, 취급 브랜드도 100여종에 이르는 등 디저트 시장이 큰 폭의 확장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니치 향수도 눈에 띄게 매출이 성장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의 최근 3년간 향수 상품군의 신장률은 2012년 22%, 2013년 36%, 2014년 30%를 기록했다. 롯데백화점 측은 “불경기임에도 불구하고 향수 상품군이 매년 두 자릿수의 신장률을 보이는 등 지속해서 성장하고 있다”며 “일루미넘, 앳킨슨, 플로리스 등 올해는 보다 더 희소성이 있는 니치 향수 브랜드가 더욱 각광받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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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고범준 기자 =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모델들이 전기자전거 오토 싸이클(OTO Cycles)을 선보이고 있다. 오토 사이클은 프레임을 모두 수잡업으로 만들고 150년 전통의 영국 자전거안장 브랜드인 브룩스(Brooks)의 안장을 사용한 고급 전기자전거다. 2015-04-13  [email protected]
 이에 관해 삼성증권 박정우 연구원은 “지난해부터 불어 닥친 국내 스몰 럭셔리(luxury) 문화는 5000원짜리 밥 한 끼와 7000원짜리 케이크류로 대변된다”며 “디저트 숍으로 명명돼 있는 곳에서 마카롱을 즐기며 커피 한 잔을 마시는 파리 살롱문화의 한국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작은 사치가 기존의 해외 명품 등 사치재 구매와 다른 점은 상대적으로 적은 돈을 들여 자신에게 최대한 사치스러운 만족감을 선사할 수 있는 소비를 한다는 점이다. 혹자는 이를 ‘나에게 선물하기’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LG경제연구원의 황혜정 연구원은 “저성장이 고착되면서 불황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소비 여력 없이 절약하는 생활을 하다가 피로감을 느낀 소비자들이 위안을 얻고자 작은 사치를 부리는 것이다”며 “사람이 돈이 없다고 해서 소비하고자 하는 욕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눌려있는 상태가 지속하다가 작은 사치로 발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회 자체가 우울해지면서 대놓고 보이는 사치를 하는 것은 수용하기 힘들어졌다. 예전에는 보여주는 소비였다면, 지금은 자기만족을 위한 소비로 방향이 바뀌었다”고 부연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최근 들어 ‘나에게 선물하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20~30대 젊은층 중심의 ‘포미(FOR ME)족’이 대표적인 사례다. 포미는 건강(For health), 싱글족(One), 여가(Recreation), 편의(More convenient), 고가(Expensive)의 알파벳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용어로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등장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1인 가구가 늘면서 자신을 위해 지갑을 여는 포미족도 늘어나고 있다”며 “자기 위로 차원에서 본인에게 향수를 선물하거나, 혼자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이 증가했다”고 귀띔했다.

 ◇알고보면 너도나도 ‘된장녀’ ‘된장남’

 사실 이쯤 되면 작은 사치를 하는 사람이나 ‘된장 남녀’나 소비 측면에서는 다를 게 없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지만,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돈을 쓰는 점은 같기 때문이다.

 된장녀는 밥값보다 비싼 스타벅스 커피를 즐겨 마시는 허영심 많고 사치스러운 여성을 비하해 사용된 용어다. 된장녀 논란이 일기 시작한 2005년만 해도 밥값보다 비싼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것에 대해 못마땅해 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과시가 아닌 자기만족을 위해 커피를 마신다 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작은 사치식 소비 행태가 증가하면서 이제는 너도나도 된장녀·된장남이 된 듯한 모양새다.

 한국트렌드연구소 김경훈 소장은 “최근 사회 분위기는 절약을 통한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것보다 자기만족과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것을 가치 있는 소비로 여긴다”며 “가치 소비라고도 명명되는 작은 사치는 이번에 처음 나타난 것이 아니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에도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2000년대 중반부터 싱글 가구가 급증하면서 취향과 기호에 따른 소비가 본격화됐다”며 “커피를 비롯한 특정 품목들이 과다하게 소비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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