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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립 잡기노트]“놔둬라, 분노 유족의 공격성”

등록 2015-04-16 08:03:00   최종수정 2016-12-28 14:5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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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신동립의 ‘잡기노트’ <510>

 가까운 사람을 사고로 잃은 유족은 제1단계 쇼크, 2단계 사망 사실의 부인, 3단계 분노, 4단계 회상과 우울 상태, 5단계 사별의 수용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1단계에서는 쇼크를 받고 흐트러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평정을 가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잘 보고 있으면 평정과 멍한 상태가 교대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언뜻 겉으로는 평정해 보여도 내면은 쇼크 상태라는 것을 알고 어린이를 감싸는 마음으로 따뜻하게 배려해야 한다. 이런저런 결정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사무적인 것은 주위에서 대신 해주고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는 “이렇게 하면 어떨까”하고 부드럽게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좋다.

 2단계에서는 상대가 죽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는 알지만 주관적으로는 아직 살아 있다는 상념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 이때 유족에게 격려를 한답시고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짓 기대를 품게 해서는 안 되며, 그렇다고 죽었다는 사실을 들이대면서 유족의 안타까운 마음을 부정해서도 안 된다. 유족 마음의 지평선에 내려가서 유족이 하는 말에 “그래요”라고 동감을 표현해 주는 것이 좋다.

 세 번째 분노의 단계에서는 공격적인 언동을 주위에서 수용해 줘야 한다. 때로는 화내는 것을 받아 주는 역할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분노를 밖으로 이끌어내 주는 것이다. 가해자에 대한 분노, 부당한 운명에 대한 분노가 표출되지 않으면 공격성이 방향을 바꿔 자기 파괴로 향하기 쉽다. 죽은 이를 뒤따라 죽을 생각을 하고, 굳이 위험으로 뛰어들려고 하거나,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을 스스로 억제하거나, 자신의 몸에 나타나는 위험한 증상을 일부러 방치한다.

 분노로부터 4기 우울 상태로 이행하는 시기에는 자기 파괴 충동이 특히 돌출하기 쉽다. 가만히 놓아두는 한편 2차적인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때때로 지켜봐야 한다.

 또 1~3기에는 자신이 무엇에 대해서 울고 있는지도 모르는 체 격하게 우는 것이 회복을 위해서는 오히려 좋다. 고인의 원통한 죽음에 대해서인지, 사랑하는 이를 사고로 빼앗긴 것에 대해서인지, 아니면 앞으로의 막막한 삶을 생각해서인지, 그 어느 것인지 모르는 채로 두문불출 울고 있는 사이에 슬픔이 형태를 이루기 시작한다.

 이렇게 해서 4기의 긴 회상과 우울의 시기를 통과하면 비로소 홀로 일어설 수 있게 된다. 이 시기에는 많은 시간을 혼자 있게 두다가 하루 중 어느 한때에 잠자코 곁에 있어 주면 좋다.

 각 단계의 정신 상태에 따라서 본인이 원할 경우 소량의 강력 정신안정제, 항우울제, 수면제를 복용케 해도 좋다.

 배상 교섭 같은 것은 제4기가 지나고 나서 해야 한다. 사별 후 유족에게 바로 배상 얘기를 꺼내는 것은 무지한 짓이다. 이 단계에서 배상 운운하게 되면 유족은 고인을 돈과 교환한다는 생각에 더욱 큰 죄책감에 빠진다. 또 변호사나 기타 교섭대리인이 유족의 감정 표출을 인정하지 않은 채 오직 많은 배상금을 받는 일만 강조하는 것은 유족의 분노나 우울증이 더 오래 지속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일본의 정신병리학자 노다 마사아키(71)는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를 통해 이렇게밝혔다. ‘대형 참사 유족의 슬픔에 대한 기록’, ‘어느날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한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슬픔의 치유학’ 책이다. 노다는 “나는 사실 이와 같은 일반화된 매뉴얼적인 배려에 대해서는 쓰고 싶지 않았다. 배려란 그런 문서화된 지식이 아니라 상대와 나 사이의 사적인 인간성의 교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매뉴얼을 소개하는 것은 요즘 사고에 관여하는 사람들, 즉 가해자 측, 경찰, 언론, 사장(社葬)을 권하는 사람, 친족 등으로 인해 유족의 상(喪)의 과정이 얼마나 심하게 왜곡되는지 알았으면 해서이다”고 적었다.

 편집부국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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