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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진단①]“아직도 할 수 있다”…노인들의 사랑과 성

등록 2015-04-29 09:32:05   최종수정 2016-12-28 14:5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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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상회, 영화
【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우리 그냥 사랑하게 해주세요.”

 양가 부모의 반대에 부닥친 청춘 남녀의 하소연이 아니다. 황혼의 나이에 늦깎이 사랑에 빠진 어르신들의 사연이다.

 최근 ‘B.C’, 즉 ‘복지관 커플(Bokjikwan Couple)’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65세 이상 나이에 새롭게 사랑을 시작하는 어르신들이 급증하고 있다.

 과거 어르신들보다 평균 수명이 늘어난 데다 체력이 향상되고 건강해지면서 정신적 여유를 찾으려는 욕구가 커졌고, 그런 것들이 이성에 대한 관심으로 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황혼의 사랑이 아름답고 순수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자극적인 대중문화의 영향 등으로 성적 욕구가 감퇴하지 않은 어르신들이 많아지면서 배우자가 없는 어르신 중 일부는 ‘박카스 아줌마’로 대표되는 성매매를 하거나 더 나아가 아동·장애인·홀몸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상대로  성폭력 범죄를 일으키는 경우까지 생겨나고 있다.  

 더불어 평균 수명이 말 그대로 100세가 됐지만, ‘백년해로(百年偕老)’ 대신 ‘황혼이혼’을 선택하는 어르신들도 점점 많아져 또 다른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실버세대의 사랑, 그 명(明)과 암(暗)을 조명해본다.  

 # “나 김성칠이요.”

  “금님이라고 해요.”

 일흔 살 심통꾸러기 홀몸 할아버지 ‘성칠’의 앞집에 이혼한 딸, 손녀와 함께 사는 60대 후반 예쁜 할머니 ‘금님’이 이사 온다.

 금님은 성칠이 혼자 사는 탓에 끼니를 거르지 않을까 걱정하다 마트에 일을 나간 성칠의 집을 여러 차례 몰래 찾아 밥을 해놓고 사라진다.

 그러던 어느날 금님은 그만 성칠에게 발각돼 그만 도둑으로 몰리고 만다.

 오해가 풀린 뒤, 금님은 성칠에게 사과의 의미로 저녁을 사라고 요구한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의 풋풋한 황혼 로맨스가 시작된다.

 성칠은 고급  레스토랑을 찾아 금님과 서툴지만 로맨틱한 저녁식사도 하고, 금님의 전화를 놓치지 않기 위해 스마트폰도 구입한다. 놀이공원에 가서 롤러코스터를 타며 즐거운 시간도 보내고, 문화센터에서 함께 왈츠를 배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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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뉴시스】강종민 기자 = 25일 오후 경기 안산문화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2015 노인사회활동지원사업단 발대식'에서 참석한 어르신들이 자부심을 갖고 맡은 일에 대해 책임을 다할것을 다짐하며 선서하고 있다. 2015.02.25  [email protected]
 성칠은 버스에서 운전기사가 금님에게 불친절하게 구는 데 분노해 말다툼까지 벌인다. 금님과의 연애가 잘되지 않자 성칠은 마트에서 다정히 장을 보는 또래 노부부에게 이유 없이 심술을 부리기도 하고, 금님의 집을 찾은 잘생긴 은발 노신사에게 묘한 질투를 느끼기도 한다.

 4월9일 개봉해 흥행 중인 영화 ‘장수상회’다. 장동건·원빈의 ‘태극기 휘날리며’(2004)로 1000만 관객을 모으고, 장동건(한국) 오다기리 죠(일본) 판빙빙(중국) 등 아시아 톱스타들을 기용해 한국, 중국, 러시아, 독일,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마이웨이’(2011)를 연출해 세계 무대를 노크했던 강제규 감독이 3년여 만에 선보인 신작은 거창한 담론을 담은 ‘대작’이 아니라 바로 우리 사회 어르신 얘기를 다룬 소박한 영화다.

 실제 75세 박근형과 70세 윤여정 두 원로배우를 남녀 주연으로 내세운 이 영화는 어느덧 ‘100세 시대’를 살게 된 우리 시대 어르신들의 늦깎이 사랑을 다뤄 노년을 앞둔 중장년층은 물론, 젊은 층에게까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강제규 감독은 이 영화를 연출하게 된 이유로 “세대가 교감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젊은 세대가 어르신 세대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이다.

◇외로운 ‘신중년’에게 가장 큰 복지는 ‘이성친구’

 지역(노인) 복지관은 지역사회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글교실, 외국어교실, 교양교실, 정보화교육, 역사교실, 예비노인은퇴준비 프로그램 등 평생교육 지원사업을 비롯해 음악(노래교실, 민요・풍물교실, 댄스교실 등), 미술(서예, 수공예, 풍선아트), 원예, 다도교실, 연극, 레크리에이션, 운동, 바둑장기, 당구, 탁구 등 취미 여가 지원사업, 물리치료, 양·한방진료, 작업치료,운동재활, ADL훈련, 건강교육, 건강상담, 건강교실(건강체조, 기체조, 요가 등), 이·미용, 노인 건강 운동 등 건강 생활 지원사업 등을 펼친다.

 노인 문제 전문가들에 따르면, 최근 급증한 ‘신중년(新中年)’이라 불리는 만 65세 이상 어르신들은 여가 선용과 건강 증진을 위해 복지관이 운영하는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성과 만나는 일이 많아지면서 ‘노-노(老-老) 커플’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들을 대학가의 ‘C.C(캠퍼스 커플·Campus Couple)’처럼 ‘B.C’라고 부른다.

 한국노인상담센터 이호선(숭실사이버대 교수) 센터장은 “복지관이 요즘 신중년 연애의 메카”라며 “복지관은 경로당과 달리 건강하고 의욕 넘치는 60~70대 어르신들이 모여드는 곳인 데다 온종일 운동과 취미 활동을 함께하면서 연애 감정이 싹튼다”고 설명했다.

 복지관을 무대로 하는 ‘황혼 연애’가 보편화하면서 어르신들 사이에서 젊은 세대를 방불케 하는 사건들이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한 할머니를 두고 할아버지들끼리 경쟁하다 주먹다짐으로 비화하기도 하고, 70대 중반 할머니와 60대 후반 할아버지 사이에 연상연하 커플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젊은 시절 ‘카사노바’로 이름을 날렸던 할아버지가 제 버릇을 못 버리고 여러 할머니들을 기웃대다 분란을 일으켜 출입금지를 당하는 일도 있으며, 심지어 홀몸 노인 행사를 하며 복지관에서 만난 할머니와 연애를 하던 70대 할아버지가 결국 부인에게 발각돼 황혼이혼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복지관만큼 뜨는곳이 콜라텍이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디스코테크나 나이트클럽을 출입할 수 없는 청소년들이 콜라 한 병을 마시고 춤과 함께 학업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곳이었지만, 이제는 최소한 오후 2~5시만큼은 할아버지·할머니 전용 공간으로 탈바꿈한지 오래다. 서울 시내만 50여 곳이 성업 중이다.

 어르신이 입장료 2000원을 내고 이곳에 들어가면 이성과 어울려 각종 사교댄스를 마음껏 출 수 있다. 콜라텍 내에서 음주를 할 수 없지만, 사실상 같은 공간이나 다름 없는 바로 옆 식당에서 1만원이면 반주를 곁들여 식사도 할 수 있어 흥겨운 분위기를 끊임 없이 이어갈 수 있다.

 어르신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그들이 젊은 시절 ‘고고장’을 한창 찾던 이유와 비슷하다. 마음에 드는 이성과 만남을 갖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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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어르신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2014.05.07.  [email protected]
 ‘목적 의식’을 가진 어르신들이 워낙 많이 몰리다 보니 나이트클럽처럼 ‘부킹’이라는 문화가 정착할 수 밖에 없다. 어르신 웨이터들이 나서 스테이지 주변을 겉도는 남녀 손님들을 서로 연결해준다.

 복지관에서 만난 남녀 어르신들이 오랜 시간 동안 상대를 관찰하며 서서히 가까워지는 것과 달리 콜라텍에서 만난 남녀 어르신들은 ‘진도’가 훨씬 빠르다.

 콜라텍에서 부킹을 통해 만난 뒤 연락처를 주고 받고 다른 날 밖에서 ‘애프터’를 하는 경우도 많지만, 일부 어르신들은 그날 함께 나가서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신 뒤 여관 등으로 가 ‘원나잇 스탠드’를 하기도 한다.  

◇노인의 이상형

 연애하는 어르신, 연애하려고 하는 어르신들이 많아지다 보니 ‘이성 선호도’도 자연스럽게 생길 수 밖에 없다.

 케이블채널 웨딩 TV와 결혼정보회사 선우가 최근 전국의 홀몸 노인 300명(남 140명, 여 160명)을 대상으로 “이성친구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남녀 어르신의 약 90%(남 125명, 여 148명)가 ‘건강’을 첫 손에 꼽았다. 이어 약 85%(남 116명, 여 139명)가 ‘성격’을 중요하게 봤다. 그 다음은 엇갈리는 데 할아버지(95명)는 할머니의 ‘외모(피부)’를, 할머니(112명)는할아버지의 ‘경제력’을 중시한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어르신들이 이성의 건강을 가장 먼저 꼽은 이유로 복지관에서 홀몸 어르신들 중 상당수가 배우자와 사별한 경우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그 어느 세대보다 새로 만나게 된 이성의 건강 문제를 챙기지 않을 수 없는 이유라는 설명이다.

 이성의 성격은 이들이 이미 결혼 생활을 오랫동안 경험한 뒤이기 때문으로 봤다. 젊은 시절 배우자를 택할 때 상대방 성격을 다른 조건 보다 뒤에 놓았던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결혼 생활을 거치는 사이 깨달은 어르신들이 생애 두 번째 선택의 기로에서 이성의 성격을 신중하게 생각한다는 얘기다.

 흥미로운 것은 셋째 조건이다. 어르신이나 젊은 세대나 여전히 여성에게는 외모가, 남성에게는 경제력이 강력한 경쟁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매 대통령’으로 통하는 선우 이웅진 대표는 “일생의 3분의 2를 이미 사신 어르신들은 처음 선택에서 자신이 충족하지 못했던 부분을 채우고 싶어하는 보상 심리가 크다”며 “이성에게 호기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남녀 어르신들은 사별이나 이혼 등 인생의 아픔을 겪은 분들이다. 그런 분들인 만큼 이성의 건강과 성격을 중시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그 다음 조건이 여성에게는 외모, 남성에게는 경제력이라는 것은 나이와 상관없이 변함없는 이성 선택의 조건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면서 “앞으로 실버세대가 더욱 늘어나고 평균 수명이 점점 길어질수록 여성 어르신은 미모를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지, 남성 어르신은 금전적인 여유를 얼마만큼 많이, 어느 정도 오래 이성에게 제공해줄 수 있는지가 점점 중요해질 것이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들 할아버지·할머니의 사랑이 실제 결혼까지 이어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젊은 세대의 사랑에는 부모의 반대가 걸림돌이었던 것과 반대로 이들의 사랑은 자녀들에 의해 방해 받기 때문이다. 자녀들은 타계한 아버지(또는 어머니)를 거론하면서 어머니(또는 아버지)의 새로운 사랑에 반대한다. 특히 재산 상속 문제가 걸려 있는 경우 자녀들이 반대의 강도가 더욱 거세질 수 밖에 없다.  

 다마 최근 들어 자녀의 반대에도 다소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이호선 센터장은 “최근 아버지나 어머니를 자신이 부양하는 대신 새로운 반려자에게 맡기겠다는 자녀들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또한 어르신들이 생전에 서로 의지하며 지내다 어느 한 분이 타계해도 상속 문제가 전혀 발생하지 않는 주혼(走婚)이나 사실혼이 재혼의 대안으로 등장하고 있다”며 “남은 생을 함께할 반려자를 찾으려는 어르신들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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