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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수첩]전문가의 인정과 통제

등록 2015-05-18 09:44:39   최종수정 2016-12-28 15: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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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민주주의는 권력의 주인이 민(民)이라는 것인데, 민은 왕, 귀족, 관료나 군대에 대립되는 개념일 것이다. 민의 뜻은 선거를 통해 표현되므로 결국 민주주의는 선거주의와 같다. 선거구도는 경쟁적이므로 그 결과는 대부분 포퓰리즘으로 귀착된다. 민주정치는 본질적으로 포퓰리즘이다. 현대의 민주정치는 유럽에서 수백년간 있어온 정치투쟁의 결과인데, 유럽세력의 세계정복과 미국의 2차대전 승리로 각국에 이식되었다. 

 이 민주정치가 근래 제대로 기능을 못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70년대 민주화에 성공한 남유럽국가들이 경제난으로 퇴행의 조짐을 보인다. 민주주의의 본산이라는 미국도 양당대립으로 정부폐쇄라는 극한 상황이  나타나고, 사회 저변의 뿌리 깊은 인종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일본도 ‘잃어버린 20년’의 책임을 대부분 정치에 돌리고 우경화의 길을 가고 있다. 한국도 양극화, 노령화, 저성장에 대응할 정치개혁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민주정치를 제대로 한다는 나라는 이제 어디에 있는가?

 얼마 전 타계한 리콴유 싱가포르 전 총리는 권위주의적 시장경제라는 모델로 싱가포르의 고도성장을 이루었고, 중국은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를 추구하면 민주화의 진통 없이 경제성장을 지속한다고 주장하며 서구식 민주정치를 부정하고 있다. 정치는 공공의 문제를 결정하는 시스템인데, 인류는 전통적으로 이 문제를 무력으로 결정해오다 왕정으로 정착했다. 동양에서는 과거제를 통한 현인(賢人)정치가 19세기까지 이어져왔다. 어떻든 현재는 대부분의 공공의 문제를 선거로 결정한다. 선거로 권력자를 정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는 공공의 문제이지만 선거로 결정하기 어려운 영역이 있는데, 전문가의 영역이다. 관료제도, 사법제도, 의료제도와 군사제도가 그렇고, 별도의 독립규제위원회도 있다. 대학교수, 건축기술자, 비행기 조종사, 영양사, 청소부도 공공의 일을 한다. 공공분야를 포함해서 세상은 선거로 해결하지 않는 분야가 사실은 대부분이다. 선거는 우리 사회의 아주 일부에서만 적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에너지위원회나 원자력안전위원회나 해외자원개발위원회도 그런 전문가의 영역을 존중해서  만든 제도다. 이런 공공의 일을 결정하는 위원회의 설치는 전세계적으로 공통적인데, 선거로 의사를 결정함이 적절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가에너지계획, 전력수급계획,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발전소와 원전의 건설 및 가동, 송전선의 건설, 해외자원개발, 사용후 핵연료의 처리 등이 이 범주에 들어간다.

 1987년 이후 한국에서는 이런 영역들이 선거로 성립된 정치의 개입을 광범위하게 받고 있어 사실상 무력증에 빠져있다. 정치가 전문영역을 압도하는 것인데, 에너지의 문제는 대부분 선거에 의존하는 정치에 어울리지 않는다. 유가가 절반이하로 하락했는데, 해외유전 투자는 사실상 중지되고 있다. 선거와 여론이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전문가가 결정할 원전가동은 계속 미루어지는데, 민중이 불안해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전문가집단의 인사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타협적인 전문가 집단은 선거와 여론에 부담되는 장기정책을 사실상 포기한다. 미국도 최근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건설을 포기했다.  

 현대사회는 민중이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적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핸드폰의 작동을 제대로 이해하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 컴퓨터, 자동차, 지하철, 발전소, 항공기, 고층건물, 식약품, 물품 구매계약과 보험계약의 내용을 민중이 이해하고 천성 혹은 반대하기 어렵다. 전문가가 판단하고 설명하게 해야 한다.

 에너지정책도 전문가에 판단을 온전히 맡겨야 한다. 민중은 전문가가 흔히 빠지는 집단이기주의를 제어할 특별한 장치를 별도로 고안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한국에너지재단 염명천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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