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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립 잡기노트]한자 가르치지 말자는 사람들

등록 2015-05-19 08:03:00   최종수정 2016-12-28 15: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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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신동립의 ‘잡기노트’ <518>

 한자 교육 활성화를 위해 2~3년 내에 초·중·고 학교급별로 적정한 한자 수를 제시하고, 교과서에 한자 병기를 확대하는 것을 교육부가 검토 중이다. 초등 3학년 이상 교과서에 병기될 한자는 400~500자다.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국어교사모임, 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평등교육실현을위한전국학부모회, 국어문화운동실천협의회,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한글자치연대, 한글학회, 한글문화연대,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 외솔회, 한글사랑운동본부, 겨레말살리는이들,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한글재단, 어린이문화연대, 어린이문학협의회들은 “교과서 한자 병기 방침은 한자 사교육을 부추기고 학생들의 학습 부담만 늘릴 뿐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이나 학습 부담 줄이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근거는 크게 다섯이다.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이며 세계의 어떠한 말이든지 표기할 수 있다. 한 가지 말에는 한 가지 문자여야 가장 간편하다. 한글은 우리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며 희망임을 깨닫고 한자 병기의 망령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자 종주국인 중국에서도 한자가 어려워 간체자를 만들어 쓰는데, 우리나라에서만 옛 한자를 쓴다는 것은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것이다.

 1970년부터 초등 교과서에서 한자를 없애고 한글 만으로 교육을 한 지 46년이 지났다. 교육부가 일관되게 성공적으로 수행해 온 교육 정책이며 한글 전용의 교육 덕분에 독해력과 저술, 창의력 발휘로 우리나라가 반세기 만에 선진국과 어깨를 겨눌만큼 발전했다.  

 영어의 50%, 프랑스어의 80%가 라틴어에서 온 낱말이지만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라틴말을 의무적으로 교육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알기 위해 그 나라 문자를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分數(분수)를 알아야 분수를 배우는 것도, 奉事(봉사)를 알아야 봉사를 많이 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의 학습부담이 늘고 학부모의 사교육비까지 증가된다. 특히 초등학생들부터 한자교육을 해서는 안 될 것이고, 중·고등학교에서는 한문이라는 독립교과로 따로 배우기 때문에 초·중·고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교육부는 ‘초·중등학교 교과용 도서 편찬상의 유의점 및 검정기준’에 한자 병기 허용 지침이 수록돼 있어 교과서 한자 병기는 새로운 것이 아니며 현 방침 만으로도 한자 병기가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반대연대는 “이 검정기준에서 한자 병기를 허용한 이유는 ‘의미의 정확한 전달을 위해 교육목적상 필요한 경우 괄호 안에 한자나 외국 문자를 병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한자교육의 강화’를 위해서 한자 병기를 하겠다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우리는 ‘의미의 정확한 전달을 위하여’ 최소한의 한자 병기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한자교육의 강화’를 위해 한자 병기를 확대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자세다.

 이들 단체 중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는 “우리말에서 한자말이 70% 넘게 차지한다는 말은 거짓말”이라며 “우리 배달겨레가 쓰는 우리말 사전에는 배달말이요 토박이말인 우리말 낱말보다 더 많은 남의 말 낱말이 들어 차 있다. 참 안타깝고 기막힌 일이다. 우리말 사전에 올라와 있다고 남의 말 한자말이 우리말 토박이 말이라 할 수는 없다. 하루 빨리 배달말이요 토박이말을 올림말로 삼고, 우리 토박이말에 없는 들온말만 올린 우리말 사전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말의 우수성도 새삼 강조한다. “한자말로는 ‘모래나 자갈 퍼 담는 것’이나 ‘나물 캐는 것’을 통틀어서 ‘채취’라고 한다. ‘산나물 채취’라고 하면 아무 느낌이나 맛이 없지만, 우리말로 쓰면 쑥은 ‘캐고’ 돌나물은 ‘걷고’, 도라지도 ‘캐고’, 고사리는 ‘꺾고’ 하니까, 얼마나 여러 가지 맛이 나고 향긋한 느낌이 드는가. 버스 타면 ‘안전띠 착용’이라는 말을 보게 되는데, ‘착용’이라니 얼마나 딱딱한가. 이 말도 우리말로 쓰면, 안전띠는 ‘매고’, 옷은 ‘입고’, 신은 ‘신고’, 이름표는 ‘달고’, 모자는 ‘쓰고’, 넥타이는 ‘매고’, 그러니까 얼마나 부드러운가.”

 교육부는 “정책 연구를 통해 다양한 의견 수렴 절차 등을 거쳐 한자 교육 활성화 방안을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3년 전 ‘신동립 잡기노트’는 한자 교육의 필요성도 짚었다. 아래 <  >는 당시 글이다.

 <‘두발용’이라고 적힌 헤어젤을 양발에 바르련다는 어린이를 봤다. 이 딱한 초등학생에게는 ‘내복약’도 고민거리다. 개그라고 비웃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문정책정상화추진회(회장 이한동)가 내놓은 보기들을 살피면 긴장하게 된다.

 ‘풍비박산(風飛雹散)’을 ‘풍지박산’, ‘희한(稀罕)’을 ‘히안’, ‘재실(齋室)’을 ‘제실(祭室)’, ‘(국기)게양’을 ‘계양’으로 잘못 쓰거나 ‘결제(決濟)와 결재(決裁)’, ‘호수(湖水)와 호소(湖沼)’ ‘산림(山林)과 삼림(森林)’ ‘개발(開發)과 계발(啓發)’을 혼동하는 남녀가 흔하기만 하다. 사당 ‘Chungjangsa-shrine(忠壯祠)’은 ‘Chungjangsa-temple(忠壯寺)’이라는 절이 돼버렸고, ‘항교(鄕校)’는 교량(橋梁) ‘bridge’로 표기했다. 어느 대학 영자신문은 주간(主幹) 교수 ‘advisor’를 주간(週刊) 교수 ‘weekly professor’로 둔갑시키기도 했다.

 “우리는 지난 2000여년 간 한자와 한글을 국자로 사용해 왔다. 그러나 1948년 한글전용법 제정과 2005년 국어기본법 제정 등 한글전용정책 시행으로 어문정책의 방향을 잃어 왔다. 이로 인해 우리는 초·중등학교의 국어교육은 물론 교육, 학술, 문화, 생활 등 다방면에서 언어와 문자의 표피화(表皮化)를 목격하고 있다”고 추진회가 개탄해도 딱히 반박하지 못할 실태다.

 추진회가 헌법소원 ‘국어기본법 등에 대한 심판청구서’를 냈다. “초·중·고등학교의 국어 교과에서 한자교육을 배제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구하겠다는 의지다. 한자어는 원칙적으로 한자라는 글자로 적고, 한자로 적힌 한자어를 한국어의 발음으로 읽어야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된다고 설득한다.

 한글은 안 되고, 한자만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한자혼용으로 의사를 전달하기 어렵거나 싫은 사람은 한글로 공문서를 작성해 국가기관에 제출토록 하고, 한자혼용 혹은 한자(한글)의 표현수단으로 의사를 전달코자 하는 사람에게는 선택권을 열어줘야 한다는 의견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담고 있는 기미독립선언서는 물론이고, 이 나라의 최고법인 헌법이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표현수단으로 한글·한자 혼용체를 건국 이후 현재까지 60여년 동안 사용해 오고 있는데도, 이러한 살아 있는 헌법의 언어가 우리말 국어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국어기본법은 그야말로 이 나라의 역사와 규범적 뿌리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고 이들은 판단한다.

 한글은 고유글자, 한자는 중국글자, 한글전용은 우리것을 존중하는 애국적 사고의 표현, 한자혼용은 사대주의의 발로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중대한 오류’라며 거부한다. 한국어가 한자어와 고유어로 이뤄졌다면, 한자어는 역사에서 형성된 고유한 문화이며, 한자어 표기수단인 한자 역시 문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한다. 한자어가 한국어의 주된 구성부분임에도 한자어의 표기수단인 한자를 ‘남의 것’으로 배척하는 것은 자기모순이요, 자기부정이라는 지적이다.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하면 한자어는 소리만 남고 그 의미는 사라져 버린다. 한자를 떠난 한자어는 언어가 아니다. 한자어를 한글로 표기해도 의미가 살아있다는 주장은 과거에 이미 한자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나 적용되는 이야기다. 한자를 배우지 않은 국민에게 한자어는 그 의미가 모호한 소리에 불과하다”며 문제 삼는다.

 상당부분 타당하다. 송기중 서울대 명예교수(국어국문학)는 “따지고 보면, ‘한글맞춤법’은 표음문자를 표의문자와 같이 쓰는 법”이라고 정의한다. 개별글자는 표음이지만 단어단위는 표의다. 현실발음을 표시하는 표기보다 의미를 표시하는 표기가 유리하기 때문에 비록 표음문자이지만 표의문자와 같은 표기가 정착된 것이라는 해석이다.

 추진회의 견해는 상식선이다. 한문이 아니라 한자를 가르치자고 호소한다. ‘鬱陵島’라고 쓰지는 못해도 읽을 줄은 알아야(울릉도) 한다. 한자란 쓰는 게 아니라 컴퓨터 키보드로 치고 마우스로 찍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므로 그렇게 타협해도 무방하다. 아예 모르는 것과 기억에 가물가물한 것은 천양지차다. 오기에 대한 경각심을 갖출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한글전용을 지지하는 층이 추진회에게 순순히 양보할 리는 없다. 이희승(혼용)과 최현배(전용)의 부활 양상이 빚어질 것이다. 최현배는 주시경 학설을 계승한 한글파, 이희승은 박승빈과 윤치호 중심의 정음파와 닿아있다. 특히 윤치호는 감정이 개입된 애국과 친일 논리의 격돌장을 제공할 개연성이 있는 인물이다.

 전문가 집단이 아닌 보통사람들 사이에서는 한글전용이 득세하게 마련이다. 인터넷 댓글이 여론처럼 수용되는 나라이므로 어쩔 수 없다. 피교육대상인 아직 젊고 어린 네티즌에게 한자습득이란 곧 학습과목 추가일 뿐이다>

 편집부국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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