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묻지마' 세계문화유산 등재 행보

등록 2015-06-01 09:56:48   최종수정 2016-12-28 15: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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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AP/뉴시스】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의 '묻지마' 식 세계문화유사 등재 행보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14일 아베 총리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5.05.28
【서울=뉴시스】김혜경 기자 = 일본의 근대 산업시설 23곳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등재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있는 시설물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해 보호한다는 취지만 생각하면, 일본 메이지 유신 산업시설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이웃 나라로서 축하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은 반응은 싸늘하다. 등재를 기다리는 23곳 중 7곳이 일제 시대 5만8000여명의 조선인들이 강제 징용된 시설이기 때문이다.

 조선인 강제 징용 시설의 대표적인 곳은 나가사키(長崎)현에서 19㎞ 떨어진 하시마(端島)섬이다. 하시마 섬은 원래 무인도였으나 1800년대 초 석탄 채굴이 이뤄지면서 섬 전체가 탄광으로 개발된 곳이다. 한번 들어가면 살아나오지 못한다고 해서 ‘지옥의 섬’이라고도 불렸다. 해저 1000m에 이르는 갱도 안은 30도가 넘는 온도에 높은 습도,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밀려드는 바닷물로 지옥 그 자체였다.

 이뿐 아니다. 나가사키 조선소에는 조선인 강제 징용자가 4700명, 다카시마(高島) 탄광에는 4만 명, 하시마 탄광은 600명, 미이케(三池) 탄광 및 미이케 항은 9200명, 야하타(八幡) 제철소에는 3400명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한국 정부는 조선인의 원혼이 서린 징용시설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막기 위해 강력 반발하고 있다.

 ◇독일은 ‘추모시설’ 세워 사죄

 지난 4월22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 양국 회담에서 한국 정부는 각 산업시설에 조선인 강제노동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반영되도록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할 것을 일본 측에 요구했다. 그러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은 “유네스코의 권고가 그대로 실현되기를 바란다”며 모르쇠로 일관해, 아베 정권의 ‘묻지마’ 세계문화유산 등재 행보는 멈추지 않고 있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에 더해 일본 정부는 ‘꼼수’도 부리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조선인과 중국인을 강제 징용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근대 산업시설의 세계 문화유산 지정 시기를 1850년에서 1910년까지로 한정해 신청한 것이다.

 이에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는 “유산이 산업혁명의 전체적인 면을 보여주지 못 한다”고 평가하면서도 “비서구권에서 처음으로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이끈 일본의 산업 유산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고려하는 게 타당하다”고 등재 권고 결정을 내렸다.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 권고가 내려진 것이 최종 회의에서 번복된 사례는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조선인 강제 징용시설을 포함한 메이지 산업 시설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초읽기에 들어갔다.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독일 본에서 열리는 회의에서 등재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근대시설물 탄광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탄광이 독일에도 있다. 독일 에센 지역에 위치한 졸버레인(Zollverein) 탄광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주인공 덕수가 파독 광부로 파견됐던 장면의 배경이 되기도 한 곳이다. 실제 한국이 헐벗고 가난했던 1960~11970년대 약 8000여 명의 한국인이 광부로 파견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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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일본 나가사키현 하시마섬은 일제 강점기 조선인들이 강제 징용된 곳이다. 일본 정부는 하시마 섬을 포함 메이지 산업시설 23곳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밀어붙이고 있다. 2015.05.28.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졸버레인 탄광은 나치 시절 수많은 사람들이 강제노역을 했다는 점에서 하시마섬과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 그러나 2001년 졸버레인 탄광은 주변국들의 반대 없이 오히려 축하 속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독일 정부가 졸버레인 탄광이 강제노역에 사용됐음을 정부 차원에서 적극 공개, 추모 시설을 건립하며 사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강제노역 사실을 인정하라는 한국 정부의 강한 비판에 모르쇠로 일관 요지부동의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 주변국 분노 묵살

 전문가들은 아베 내각의 이런 ‘묻지마 등재’ 움직임은 다 이유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로 일본은 문화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으며, 이는 미래의 먹거리와 국력으로 연결된다. 또한 세계문화유산은 관광객을 유입해 경제적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다. 이 외에도 국가적으로도 세계유산을 많이 보유할수록 국가의 품격이 높아진다고 여겨진다.

 아베 내각의 일관성 있는 우경화 행보 속 역사 왜곡에는 아베의 정치적 경제적 성공이 배경이 되고 있다. 아베 내각은 50% 안팎의 높은 지지율 속에 양원 과반 의석을 확보 ‘1인 권력’ 체제를 공고히 굳혔다. 여기에 아베가 숙원해 오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을 골자로 한 안보법제 개정안도 국회 심의에 들어간 상태다.

 아베의 활약은 경제면에서도 두드러진다. 과거 ‘돈만 찍어내는 정책’이라고 비판 받아온 아베노믹스는 엔저 효과와 지속적인 양적 완화 정책 등에 힘입어 올 1분기 일본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 대비 2.4% 성장,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배경 하에 주변국들의 공분을 무시한 채 아베는 ‘묻지마 세계문화유산 등재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덕이 있으면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德不孤 必有隣)”는 ‘논어’의 고사성어가 떠오른다. 일본에게 아직 기회는 있다. 조선인들과 중국인들이 메이지 산업시설에서 강제노역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한다면, 그들도 독일의 졸버레인 탄광이 주변국의 축하 속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처럼 얼마든지 축하받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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