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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립 잡기노트]인류 어린시절, 신화찾는 사람들

등록 2015-06-08 11:53:45   최종수정 2016-12-28 15: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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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세계신화연구소의 정체성을 나타낸 이 그림은 지혜를 탐한다.
【서울=뉴시스】신동립의 ‘잡기노트’ <522>

 그리스 신화에는 전쟁의 신이 둘이다. 아레스(남)는 살육·파괴·폭력, 아테나(여)는 전략·전술·정의를 담당한다. 아테나의 어머니는 지혜의 신 메티스다. 제우스는 줄곧 메티스에게 마음을 두고 있다가 신들의 왕이 된 뒤 그녀를 첫 왕비로 맞아들인다. 이후 제우스는 무서운 신탁을 듣는다. 메티스가 첫째는 딸, 둘째는 아들을 낳는데 아들이 나중에 자신의 권력을 찬탈한다는 것이다. 임신한 메티스를 제우스가 조그맣게 만들어 집어삼켜 버린 이유다. 10개월이 흐르자 제우스는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고통을 참다 못한 제우스는 아들인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를 불러 도끼로 머리를 치도록 했다. 쪼개진 제우스의 머리에서 아테나가 완전무장 상태로 나왔다. 제우스의 머리가 인큐베이터로 사용된 셈이다. 제우스는 아테나에게 지혜와 전쟁을 관장토록 했다.

 이 신화로 만든 것이 세계신화연구소의 로고다. 아테나가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나는 장면을 담았다. 도끼를 든 헤파이스토스, 분만의 신 에일레이티이아도 보인다.

 로고 그대로, 지혜의 보물창고가 되련다는 세계신화연구소가 엊그제 창립모임을 열었다. 각국의 신화를 연구하고 대중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중국신화전문가 김선자 박사, 서양미술사학자 노성두 박사,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석만 교수, KB금융지주 양종희 부사장, 제주 그리스신화박물관 전선권 대표, 이비인후과 전문의 장근호 원장 등 100여명이 우선 참여했다.  

 그리스·로마신화 연구자인 김원익(55) 박사가 소장이다. 13년 전부터 여러 대학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 ‘게르만 신화’, ‘신화 구조론’, ‘그리스 로마 문화의 이해’ 등을 강의하고 있는 김 소장은 “신화는 인문학의 뿌리”라고 강조했다. “신화를 아직도 서자 취급하는 한국 대학의 현실은 대중과의 불통을 불러왔고, 이는 곧 인문학의 위기로 이어졌다. 신화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와 보급을 통해 인문학이 세상에 유효한 역할을 담당하는 데 일조할 것이다.”

 세계 신화를 테마로 정기 심포지엄 개최, 신화 전문학술지 발간, 인문학 아카데미 설립, 국내외 신화 유적지 답사를 한다. 특정 국가의 신화가 아니라 세계의 신화를 연구한다. 각 나라의 신화를 연구하는 국내 신화학자들의 힘을 결집해 세계 신화 아카이브를 구축한다. 세계 신화 스콜라를 설립해 인문학적 갈증을 채워준다. 세계 신화를 활용한 국내 콘텐츠 개발사업에 핵심 아이디어와 자료를 제공하고, 대중 또한 그것을 보고 즐길 수 있는 멀티미디어 세계 신화 파크도 운용한다.

 김 소장은 미국의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1904~1987)을 인용했다. “캠벨은 신화를 알에서 갓 깨어난 병아리의 행동으로 설명했다. 햇병아리에게 나무로 만든 매의 모형을 보여주자 금세 은신처를 찾아 몸을 숨겼다. 그러나 참새의 모형을 보여주자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미 닭으로부터 아무 것도 배운 적이 없는 병아리가 매의 모형에 대해 보인 반응은 햇병아리의 집단 무의식의 소산이다. 그리고 신화가 바로 인류의 집단 무의식이다. 그래서 신화가 지닌 의미는 실로 막대하다”는 설명이다.

 “신화에는 인류가 풀어낼 수 있는 모든 이야기의 씨앗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신화에 익숙해있다. 나중에 배워 알기보다는 DNA처럼 신화에 친밀한 유전인자를 갖고 태어난다. 왜 루벤스를 비롯한 수많은 미술가들이 신화를 소재로 그렇게 많은 그림을 그렸겠는가? 왜 프로이트를 비롯한 유명한 심리학자들이 신화 속 이야기를 통해 인간심리를 설명했겠는가? 왜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세계적으로 내로라는 작가들이 신화를 소재로 즐겨 작품을 썼겠는가? 바로 신화가 인간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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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단순화한 ‘비너스의 탄생’. 원 유화는 이탈리아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가 1485년께 그렸다.
 “신화를 만드는 것이 노스탤지어라면, 역사를 만드는 것은 유토피아적 욕망이다. 미래를 향하는 유토피아적 욕망과 달리 노스탤지어는 과거를 그리워하는, 존재하지 않는 근원, 잃어버린 고향을 그리워하는 무망(無望)의 울부짖음”이라는 영문학자 임철규 명예교수(연세대)의 설파와 일맥상통한다.

 김 소장은 “신화를 연구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다른 나라의 신화를 자국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신화를 학문적으로 깊이 연구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신화가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읽어내는 것이다. 세계신화연구소는 이런 세 가지 관점에서 신화를 읽어내면서 특히 세 번째 신화 연구에 주목할 것”이라고 밝혔다.

 ‘라그나로크 성전’ 등 게임용어의 원천은 북구 신화다. ‘반지의 전쟁’에 나오는 반지 모티브 역시 그곳에서 비롯됐다. ‘해리 포터’는 영국 전통문화의 결정체다. 신화와 민담, 인간의 삶을 촘촘히 엮어 세계인을 사로잡는 소설과 영화로 재탄생시켰다.

 그리스·로마 신화 속 전령의 신 메르쿠리우스(헤르메스)와 미의 신 아프로디테(비너스) 사이에 태어난 헤르마프로디토스는 암수한몸이다. 영화 ‘쥐라기 공원’, ‘스타 트렉: 뉴 프런티어’ 시리즈, ‘스타 워스’, 그리고 ‘링’ 등도 양성구유를 예시 또는 암시하고 있다.

 역사를 배우고, 역사 자격시험까지 치르는 역사를 좋아하는 이들의 지향점일 수 있다. 팩트에 픽션을 보탠 팩션은 국제적 추세다. 역사 전공을 폐지하고 역사 콘텐츠학과로 탈바꿈을 꾀하는 대학이 낯설지 않다. 이것들로 쓴 책, 즉 눈에 확 들어오는 콘텐츠는 발표 즉시 영상물로 둔갑하는 오늘이다.

 돈이 되는 영화나 게임의 콘텐츠 중에 그 중에 제일은 역사적 상상력이다. 작금의 블루오션이다. 출발은, 신화다.

 편집부국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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