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립 잡기노트]왜 서울아리랑은 없지? 그래서…
노래 제목으로서의 ‘아리랑’은 1894년 일본 우편호치 신문이 처음 기록했다. 국내 첫 오선 채보곡집인 ‘조선 속곡집’(1914)에 오른 강원도아리랑은 지명을 쓴 아리랑의 시초다. 1926년 9월 밀양아리랑이 실린 음반 이후 아리랑은 으레 지역명을 달고 출현하는 것으로 굳었다. 2012년 ‘아리랑, 한국의 서정민요’의 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인류 구전 및 무형 유산 걸작) 등재 신청서에는 정선·진도·밀양·문경새재·영남·청주·공주 아리랑과 태백 아라리 등이 지역 전승 대상에 포함됐다. 지역 이름이 붙은 아리랑은 이 밖에도 잔뜩이다. 아리랑 앞의 지명은 변별의 필요성에서 비롯됐다. 해당 지역에서는 그저 아리랑이라고 불리지만, 다른 지역의 아리랑들과 구별하려면 지역명을 붙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변별의 주체가 바로 서울이었다. 음반 발매와 공연, 방송 등을 위한 단순 식별용으로는 물론, 상업적으로도 변별은 요구됐다. 이 모든 것이 서울에서 이뤄졌다. 서울아리랑에 ‘서울’이 없는 이유다. 대신 출현 순서와 형태상의 식별 기호가 따르게 됐다. 1894년 H B 헐버트 채보 아리랑은 ‘서울’이 아니라 ‘구(舊)’ 또는 ‘잦은’ 아리랑, 이후 등장한 것은 ‘긴’, ‘신(新)’ 아리랑으로 통용됐다.
아르랑(구아리랑·서울잦은아리랑), 긴아리랑, 서울아리랑(영화 ‘아리랑’ 주제가), 강원도아리랑, 밀양아리랑, 한오백년, 김옥심제정선아리랑에 대한 인식 부족 탓이다. 서울 지역을 기반으로 형성된 아리랑은 서울아리랑 또는 서울의 아리랑인데도 이 역사적 맥락을 간과해 왔다. 그러다 기어코 올 것이 왔다. 서울아리랑보존회(arirang.seoul.kr)가 16일 서울시 문화재과에 사단법인 설립허가를 신청했다. 세계인이 부르는 아리랑, 남북이 단일팀 단가로 합의한 아리랑, FIFA 월드컵 광장응원에서 불려진 아리랑과 이를 생성시킨 서울 지역의 아리랑을 보존, 전승, 향유하는 커뮤니티다. 실기인 중심의 회원 30여명을 확보했다. 아리랑을 활용한 ‘아리랑 자연치유학’을 10여년째 전파하고 있는 유명옥 박사(57·음악치유학)가 임시 이사장을 맡았다. 유 이사장은 “서울아리랑의 개념 규정과 학술적 토대 마련, 서울아리랑 사설집 발간, 단성사·아리랑고개·헐버트 등 서울아리랑 유적과 인물 발굴·보존, 서울아리랑축제와 경창대회 개최, 서울아리랑을 통한 수도서울 상징화 사업 등을 추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서울아리랑은 없나?’라고 한 번도 묻지 않았다는 자책감을 벗겨 주기를 기대한다. 편집부국장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