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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현실로 다가온 '바이러스 공포'…'28' 외 3권

등록 2015-06-22 10:24:54   최종수정 2016-12-28 15: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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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윤시내 최희정 기자

 ◇28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펴냄/ 496쪽/ 1만4500원

 지난달 20일, 한국에서 최초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감염자가 발생했다. 한달이 지난 지금(22일 오전 9시 기준) 국내 메르스 감염자는 172명, 사망자는 27명이다.

 지난주부터 환자 발생률이 줄어들면서 메르스 사태가 진정 국면에 들어선 것이 아니냐는 예측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지만, 그와 별개로 사태 초기 정부의 미흡한 대응은 계속 도마 위에 올라있다. 안일한 대처가 메르스 확산에 일조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보건당국은 낙타와 접촉하지 말라는 예방법을 내놓고, 의심환자를 제대로 추적하지 못하거나, 음성 판정을 내린 환자가 양성으로 판명되는 등 헛발질(?)을 계속하고 있다.

 또 확진환자가 격리병동을 탈출하거나, 자가 격리 대상자가 골프를 치기 위해 외출하는 등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사람도 부지기수로 출몰했다.

 이런 상황을 보며 떠오르는 책이 있다.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 등을 쓴 정유정 작가가 지난 2013년 발간한 소설 ‘28’이다. 이 책은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빨간 눈’이라는 원인 모를 전염병이 퍼지면서 벌어지는 28일간의 참극을 다룬다.

 수도권 인근에 위치한 인구 29만명의 작은 도시 화양. 어느 날 개 번식사업을 하던 한 중년 남자가 눈이 빨갛게 붓고 온몸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채로 발견된다. 119구조대원들이 급하게 응급실로 옮기지만 그는 피를 쏟아내며 사망한다. 이후 119구조대원들과 응급실 의사·간호사들도 ‘빨간 눈’ 증상을 보이다 돌연사한다.

 한편 한국인 최초로 알래스카 개썰매 레이스 ‘아이디타로드’에 참여했던 재형은 눈 폭풍 속에서 굶주린 늑대 떼를 만나 가족처럼 기르던 개들을 미끼로 살아남은 과거가 있다. 이 일로 트라우마가 생긴 그는 화양으로 돌아와 수의사가 돼 산속에서 유기견 구조센터 ‘드림랜드’를 운영한다. 그의 선행을 다룬 TV 프로그램으로 유명세를 타지만, 곧 과거 일을 폭로한 기사로 인해 위기에 처한다. 재형의 폭로 기사를 쓴 사회부 기자 윤주는 기사 제보자의 목적이 순수하지 않았음을 눈치 채고 화양을 찾는다.

 이런 와중에 ‘빨간 눈’ 환자가 급격히 증가하고 사망자도 늘어난다. 개가 사람에게 ‘빨간 눈’을 옮길 수 있다는 윤주의 기사에 사람들은 공포에 빠지고, 정부는 유기견과 애완견을 가리지 않고 살처분한다. 하지만 병은 잡히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확산된다. 병이 다른 곳으로 퍼질 것을 우려한 정부는 급기야 군대를 동원해 화양을 봉쇄한다. 화양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사람들은 급격한 혼돈에 빠지는데….

 책에는 수의사 ‘재형’, 기자 ‘윤주’, 119구조대원 ‘기준’, 간호사 ‘수진’, 재형에 적대적인  ‘동해’ 등 다섯 사람과 최초 발병자가 키우던 개 ‘링고’가 등장해 돌아가며 이야기를 진행한다.

 책은 3인칭 시점으로 시종일관 무덤덤하게 서술되지만, 다루는 내용은 잔인하고 참혹하다. 정부는 원인 파악보다 도시를 통제하는데 힘쓰고, 사람들은 이성을 잃고 이기적으로 군다. 그렇지만 화양 밖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돌아간다. 외지인을 수용한 캠프에서 한 여성이 여자 아이돌이 출연한 TV 프로그램을 보며 욕설을 내뱉는 장면에선, 현실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비극을 외면하는 우리의 모습이 떠오른다. 또 후반부에 등장하는 화양시민들의 저항에선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연상되기도 한다.

 이 책에는 헐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영웅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평범했던 사람들이 절망과 분노 속에서도 생존의 희망을 놓지 않고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결국 살아남고자 하는 모든 것들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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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상의 도시에서 벌어진 가상의 이야기지만, 저자가 치밀하게 만든 서사는 현실적인 공포로 와 닿는다. 바이러스 전염 등 손쓸 수 없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 과연 우리 사회는 제대로 유지될 수 있을까.

 정부가 메르스 수습에 난항을 겪으면서 국가 재난관리 시스템의 허점이 드러났다. 이 책이 묘사한 극단적인 상황이 현실에서 재현되지 않기 위해선, 메르스 사태가 진정된 이후 우리가 이 허점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에 대한 진중한 고민이 필요하다.

 ◇탐정이 된 과학자들 마릴리 피터스 지음/ 지여울 옮김/ 이현숙 박사 감수/ 다른 펴냄/ 216쪽/ 1만2000원

 이 책은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강한 몰입감을 준다.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전염병의 비밀을 파헤친 ‘전염병 학자’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들이 최초 감염자인 ‘페이션트 제로’를 추적하고 그로부터 얻은 정보를 단서 삼아 전염병 발생 원인과 전염 경로, 대처법을 찾아내는 과정을 소설처럼 재구성한 논픽션이다. 인류사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 전염병 유행의 사례로 1665년 영국 런던의 페스트, 1854년 런던 소호의 콜레라, 1900년 쿠바의 황열병, 1906년 미국 뉴욕의 장티푸스, 1918년 스페인독감, 1976년 자이르(현 콩고)의 에볼라, 1980년 미국의 에이즈를 다룬다. 전염병이 유행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그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까지의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우리 역사 속에는 어떤 전염병이 유행했는지 살펴보는 글도 실렸다.

 ◇핫존:에볼라 바이러스 전쟁의 시작 리처드 프레스턴 지음/ 김하락 옮김/ 청어람 미디어 펴냄/ 440쪽/ 1만5000원

 아프리카와 미국 등에서 실제로 나타난 에볼라 바이러스 발병 사태를 SF 소설처럼 생생하게 그려낸 논픽션이다. 에볼라 바이러스와 사촌격인 마르부르크가 처음 발병한 1967년부터 미국 워싱턴 D.C.에 나타난 에볼라 레스턴까지 약 26년간 에볼라 바이러스와 싸운 이야기를 섬뜩할 만큼 적나라하고 생생하게 풀어냈다. 필로 바이러스과에 속하는 마르부르크, 에볼라 자이르, 에볼라 수단, 에볼라 레스턴 등 4가지 유형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람으로 옮겨졌는지를 과학적 데이터와 현지 조사에 기초해 썼다. 당시 의료진과 군 관계자, 감염 환자를 오랫동안 인터뷰하면서 감염 증상과 치료법, 바이러스 진압 과정까지 마치 독자가 역사적 현장에 있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묘사했다. 과학책이지만, 소설처럼 단숨에 읽힐 만큼 쉽고 흥미진진하다.

 ◇바이러스 예방습관 프레데릭 살드만, 프랑수아 브리케르 지음/ 전용희 옮김/ 펴냄/ 240쪽/ 1만2000원

 메르스, 에볼라, 조류인플루엔자 등 전 세계는 지금 진화하는 바이러스 공포에 떨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진화하는 바이러스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작은 생활 습관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21세기 대중의학계 슈바이처라 불리는 프레데릭 살드만과 프랑스 국립 피티에-살페트리에 병원 열대성·전염성 질병 센터 책임자인 프랑수와 브리케르가 공저했다. 이들은 접촉성 수인성 질병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손 씻기 운동’과 같은 작은 실천만으로도 병원균을 99퍼센트 제거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평소 꾸준히 지켜야 할 사항과 기본적인 위생 원칙을 소개해 일상에서 손쉽게 바이러스를 예방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바이러스별 특징을 설명하고, 질병 성격에 맞는 예방법을 조목조목 짚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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