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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서 ‘말라깽이’ 모델 퇴출 확산…국내는?

등록 2015-06-22 10:59:50   최종수정 2016-12-28 15: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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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영국 광고윤리청(ASA)은 이브 생 로랑 광고지에 등장한 모델이 '건강하지 않게 저체중'으로 보인다며 광고 금지 판결을 내렸다. 이 광고는 엘르(Elle) 영국판에 게재됐다. 2015.06.04. (사진출처: BBC) 
【서울=뉴시스】최희정 기자 = #모델 지망생 이예분(가명·15)씨는 체중을 잴 때마다 한숨을 내쉰다. 키 175㎝에 55㎏으로 늘씬한 몸매를 가진 그녀지만, 자신은 항상 뚱뚱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다이어트를 해도 몸무게가 줄지 않다 보니 스트레스가 생겨 최근에는 폭식 습관도 생겼다. ‘좀 더 슬림한 몸매를 갖고싶은데…’라며 전날 저녁 폭식한 것을 후회했던 이씨는 당분간 굶기로 마음을 먹었다.

 모델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다수 모델은 이씨 체형보다 마른 편이다. 국내 최대 모델 에이전시 에스팀 관계자는 “국내 모델계에서는 키 175~176㎝에 몸무게 55~56㎏이면 뚱뚱한 편에 속한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175㎝, 55㎏은 체질량지수(BMI) 18에 해당, 세계보건기구(WHO)가 규정한 정상체형에 살짝 미달하는 수치다.

 BMI는 체중을 신장의 제곱으로 나눠 산출하는데 WHO는 18.5~24.5 정도를 정상으로 본다. 17 정도는 엄청나게 마른 편, 16은 심각한 기아 상태로 판정한다. 모델의 키가 170㎝일 때는 체중이 최소 54㎏ 이상, 175㎝일 때 57㎏ 이상 돼야 한다는 의미다. 해외 톱모델의 BMI는 대개 16~18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유럽에서는 BMI를 기준으로 마른 모델이 패션쇼 런웨이에 설 수 없도록 입법화 하는 추세다. 앞서 지난 2007년 스페인은 법으로 BMI 18.5 이하 모델을 퇴출했다. 이탈리아는 BMI 기준 대신 건강증명서 제출을 의무화 했다. 2013년 이스라엘은 BMI 18.5 이하 모델의 광고 출연을 금지하는 한편, 신문·잡지 등에 보정한 사진을 게재할 경우 이같은 사실을 명시하도록 했다.

◇해외선 ‘마른 모델’ 퇴출 분위기

 이달 초 영국 광고심의위원회(ASA)는 패션잡지 엘르(Elle) 영국판에 게재된 ‘비쩍 마른’ 모델이 등장하는 패션 브랜드 ‘생 로랑’의 광고를 금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앙상한 갈비뼈에 종아리와 허벅지 굵기가 똑같은 저체중 모델을 이용한 광고는 무책임하다”는 이유에서였다. BBC 등 외신에 따르면, 최근 들어 영국에서 깡마른 모델을 쓰는 것은 단속 대상이 돼왔다. 비현실적이고 건강치 못한 환상을 심어 여성들의 신체에 대한 자신감을 손상시킬 수 있다는 비판이 쏟아진 탓이다. 생 로랑은 광고 속 모델이 건강하지 않게 말랐다는데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으나, 구체적인 답변은 하지 않았다고 위원회는 전했다.

 지난 4월 패션의 본고장 프랑스에서는 지나치게 마른 몸매를 지닌 모델을 활동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뉴욕타임즈 등 다수 외신은 프랑스 하원이 심하게 마른 모델을 쓰거나 모델에게 이런 몸매를 강요하는 패션업계 관행을 금지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BMI가 일정 수준 이하인 모델은 런웨이에 설 수 없으며, 이를 위반하는 업체는 최대 징역 6개월 또는 7만5000유로(약 94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한다.

 프랑스가 이처럼 ‘말라깽이 모델’에 강력 제동을 건 것은 젊은 여성들 사이에 거식증 등 섭식장애 환자가 증가한 것과 관련이 있다. 2010년에는 모델 이사벨 카로가 거식증을 앓다 영양실조로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거식증 주의보가 확산됐다. 프랑스 내 거식증 환자는 4만여 명으로 유럽 국가 가운데 가장 많다. 특히 환자의 90%가 10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런던정치경제대가 2011년 유럽 주요 16개국을 대상으로 조사·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영국, 덴마크, 이탈리아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 15세 이상 여성의 거식증 비율은 1%대에 머물렀으나 프랑스에서는 3.66%를 기록했다. 또 15~24세 여성 중 거식증 환자 비율은 5.14%나 됐다.

 의사이자 사회당 의원인 올리비에 베랑은 “모델 뿐 아니라 청소년을 거식증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며 법안을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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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거식증을 앓다 지난 2010년 숨진 프랑스 모델 이사벨 카로.
 그러나 프랑스 모델 업계는 해당 법안이 패션강국의 대외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프랑스모델에이전시 연합단체 ‘시남(Synam)’의 이자벨 세인트-펠릭스 사무국장은 “우리 모델의 90%가 외국인인 상황에서 자국에서만 해당 규정을 적용한다면 프랑스 모델 에이전시가 경쟁력이 있을지 의문이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국내 패션업계 “해외와 사정 달라”

 국내 모델업계는 최근 유럽에서 확산되고 있는 ‘마른 모델 퇴출’이란 분위기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듯한 모양새다. 거식증을 앓다가 사망한 모델의 사례가 크게 이슈화 된 적이 없는데다, 정부나 국회 차원에서 관심을 두고 입법 발의를 한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델 출신인 한국국제예술원 모델과 정유신 교수는 “국내에서는 거식증을 앓을 정도로 마른 모델은 거의 없다”며 “프랑스에서 한 때 유행했던 뼈만 앙상한 모델은 국내에서 활동하기 어렵다. 너무 마르면 런웨이에서 쓰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관련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모델은 선천적으로 마른 체형이 많다”며 “모델 교육시 선천적으로 살이 찌는 경우에는 피트니스 모델을 권유한다”고 설명했다.

 패션업계 역시 ‘마른 모델’을 선호하는 것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보이고 있다.

 장광효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 부회장)디자이너는 “모델은 ‘적당히 뼈가 가는 사람’이 한다. 뼈대가 굵어 살을 빼면 앙상해 보이는 사람은 에이전시에서 기용하지 않는다”며 “해외의 ‘마른 모델 퇴출’ 분위기는 국내 패션업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디자이너들은 (여기에)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비쩍 말라서 앙상한 것을 마른 몸매라고 한다”며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마른 모델은 안쓴다. 비전문가가 봤을 때, 마른 몸매라고 부르는 것인데 이는 단어 선택을 잘못한 것이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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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AP/뉴시스】지난 3월9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015-2016 가을/겨울 기성복 콜렉션 패션쇼’에서 모델들이 생 로랑 의상을 입고 무대 위를 걷고 있다.
 박윤수 (동양대 패션경영학과 석좌교수)디자이너도 “한국 모델은 잘 먹는 것 같다”며 이 같은 주장에 동조했다. 그 이유로는 한국 시장이 유럽시장과 다른 점을 꼽았다. 박 디자이너는 “유럽시장과 달리 아시아권에서는 마른 모델을 선호하지 않는다”며 “유럽의 경우 맞춤복 시장, 기성복 시장 등으로 세분화됐다. 모델 시장도 여기에 맞춰서 성장하기 때문에 다양한 모델이 있다”며 “반면 동양권에서는 이런 특성이 없다. 시장 환경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사진사들이 마른 모델을 선호하는 경우는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으로 보면 모델이 실물보다 더 크게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선호한다는 얘기다.

◇佛 ‘마른 모델’ 퇴출 법안, 국내서 갖는 의미

 그러나 이 같은 시각에 대해서는 모델들이 다이어트로 인한 스트레스와 후유증(생리불순 등)을 앓고 있는 것이 일상화 돼 있는 상황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해외와 정도 차이는 있지만, 국내 패션디자이너들이 ‘마른 모델’을 선호하는 경향 때문에 생겨난 문제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황재근 디자이너는 “1980~1990년대 초까진 글래머러스한 모델이 많이 있었는데 (2000년대부터) 줄어드는 추세다. 지금 트렌드는 ‘매니시’(남성풍)하고 ‘유니섹슈얼’(남녀구분 없는)하다 보니 전세계적으로 마른 모델을 선호한다”면서 “다만 뚱뚱한 것이 멋스러움의 일환이 돼서 유행한다면 국내에서도 마른 모델 선호현상이 바뀔 수는 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이탈리아 밀라노,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에서 트렌드가 시작되고, 우리나라 패션업계가 이를 따라간다”며 “예를 들어 샤넬의 칼 라거펠트 수석디자이너가 전부 ‘플러스 사이즈’ 모델을 쓴다면 의미가 크다. 디올이나 샤넬 등 메이저 마켓에서 다가오는 새 시즌에 그런 모델을 쓰는 움직임이 있으면 다 퍼진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프랑스에서 최근 마른 모델 퇴출 법안이 만들어지는 것은 의미가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 가디언은 최근 기사에서 “프랑스의 해당 법안이 자국에서만 적용될 지라도 패션업계에서 파리가 갖는 위상을 고려한다면 상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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