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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일상에 숨어 있는 '성(性) 차별'…'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외 3권

등록 2015-06-29 09:55:58   최종수정 2016-12-28 15: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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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윤시내 최희정 기자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창비 펴냄/ 240쪽/ 1만4000원

 인기 개그맨 장동민은 과거 팟캐스트에서 “여자들은 멍청해서 남자들에게 머리가 안 된다”는 등 여성비하 발언을 일삼은 것이 밝혀져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는 이후 ‘삼풍백화점 피해 여성 비하’ 발언까지 알려지자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했다.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끈 할리우드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감독 조지 밀러)는 지난 5월14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 자리에서 한 기자가 주인공 ‘퓨리오사’를 맡은 배우 샬리즈 시어런에게 “(여자의 몸으로)어떻게 분노 연기를 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시어런은 “놀랍죠? 여자도 분노할 수 있어요”라고 재치있게 답변했다.

 이 같은 사례는 모두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주체로 보지 않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거보다 여성 인권이 신장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여성은 일상에서 보이지 않는 벽을 맞닥뜨리곤 한다.

 미국의 저명한 문화·예술평론가이자 역사가인 리베카 솔닛도 마찬가지였다. 솔닛은 파티에서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나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는 중요한 책이 있다며 솔닛에게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그 책은 솔닛이 쓴 것이었다. 보다 못한 친구가 “그게 바로 이 친구 책입니다”라고 말했지만, 그는 자기 말을 계속할 뿐이었다. 친구가 서너 번쯤 말을 반복하고 나서야 말귀를 알아들은 그는 잠시 할 말을 잃었지만, 이내 다시 장광설을 펼치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남자는 그 책을 읽어 본 것도 아니었으며, 그저 신문 기사를 통해 접했을 뿐이었다.

 한 번 웃고 지나갈 수 있는 일화지만, 솔닛이 웹사이트에 이 같은 내용의 글을 게재하자 미국 여성들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맨스플레인(mansplain)’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맨스플레인은 남자(man)와 설명하다(explain)을 합한 것으로, 대체로 남자가 여자에게 잘난 체하며 아랫사람 대하듯 설명하는 것을 말한다. 이 단어는 2010년 뉴욕타임스의 ‘올해의 단어’로 선정됐고, 지난해에는 ‘옥스퍼드 온라인 영어사전’에도 실렸다. 그만큼 이에 공감한 여성이 많았다는 뜻이다.

 솔닛은 이 현상에서 발언할 권리를 잃은 여성을 떠올린다. 사람들은 같은 내용의 발언이더라도, 화자가 남성일 경우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여성은 남성보다 ‘못하다’는 시각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발언은 동등하지만, 현실적으로 여성의 발언은 지워진다.

 “여자가 무언가 남자를 힐책하는 말을 하면, 특히 그것이 기득권의 핵심에 놓인 남자에 대한 말이라면, 사람들은 그 발언의 진실성을 의심할 뿐 아니라 그녀에게 그렇게 말할 능력이 있는가, 심지어 권리가 있는가 의심하는 반응을 보인다. … 내가 흥미롭게 느끼는 문제는 왜 사람들이 여성의 말을 일축하려는 충동을 느끼는가, 그리고 그런 비난이 왜 그렇게 자주 여성은 대단히 부조리하거나 히스테릭하다는 비난으로 빠지는가 하는 점이다.” (154쪽)

 이는 곧 여성의 자유와 권리를 박탈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지는 것으로 확장된다.

 “내가 지금보다 젊었을 때, 드넓은 대학 캠퍼스에서 여학생들이 강간을 당하자 대학 측은 모든 여학생에게 해가 지면 밖에 나가지 말라고, 아니면 아예 나돌아다니지 말라고 일렀다. 그러자 웬 장난꾸러기들이 다른 처방법을 주장하는 포스터를 내붙였다. 해가 진 뒤에는 캠퍼스에서 남자를 몽땅 몰아내자는 처방이었다. 그것은 똑같이 논리적인 해법이었지만, 남자들은 겨우 한 남자의 폭력 때문에 모든 남자더러 사라지라는, 이동과 참여의 자유를 포기하라는 말을 들은 데 대해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111쪽)

 단순히 여성이 사회에서 겪는 사소한 괴로움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솔닛은 이것이 가정폭력·성범죄 등에도 같은 패턴으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남성의 강력범죄는 여성을 자신과 동등한 주체로 보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또한 피해여성에게 ‘문란한 여성’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증언의 신뢰도를 훼손하거나 원인제공을 했다고 몰아가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것들이 여성의 발언을 가치 없다고 보는 태도에서 발현한 것이다.

 물론 모든 남성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래서 이런 내용에 불편함을 느끼는 남성도 많을 것이다. 솔닛은 그들에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전개된 ‘#여자들은다겪는다(YesAllWomen)’ 해시태그 운동을 소개하며 일침을 가한다. 이 운동은 2014년 한 여성 혐오자가 일으킨 총기 난사 사건을 ‘여성 혐오’보다 총기 규제와 정신질환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자 발발했다. 여자들이 억압에 관해 이야기하면 남자들이 “모든 남자가 다 그렇진 않아”라고 반응하는 것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자들은 늘 강간과 살해를 두려워하면서 산다. 때로는 그런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남자들의 안락함을 보호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 물론 모든 남자가 다 여성 혐오자나 강간범은 아니다. 그러나 요점은 그게 아니다. 요점은 모든 여자는 다 그런 남자를 두려워하면서 살아간다는 점이다.” (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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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들은 다 겪는다 운동에는 많은 남성이 방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국내에서도 한 남성 칼럼니스트가 쓴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라는 칼럼이 논란이 되자 남녀를 불문하고 많은 SNS 사용자가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 운동을 펼쳤다. ‘여성 혐오’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를 좀먹는 심각한 문제라고 여기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솔닛도 “인종주의와 마찬가지로, 여성 혐오는 피해자들만 나서서는 제대로 처리할 수 없다. 이 점을 이해한 남자들은 페미니즘이 남성의 권리를 빼앗으려는 계략이 아니라 모두를 해방하려는 운동이라는 점도 이해한다”(225쪽)고 말한다. 여성은 물론이고, 남성이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발레하는 남자, 권투하는 여자 임옥희 지음/ 어진선 그림/ 풀빛 펴냄/ 324쪽/ 1만5000원

 여성 대통령, 여성 최고경영자(CEO), 여성 대법원판사, 여성 장군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여성이 하지 못할 일은 없다. 그러나 놀랍게도 지난해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한 한국의 양성평등지수는 142개국 중 117위를 기록, 하위권을 맴돌았다. 이 책은 우리가 도달했다고 믿는 양성평등 수준과 사회 현실 사이에 커다란 틈이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또한 우리의 고정된 상식 안에 자리 잡은 양성불평등 수준은 매우 견고하게 높은데도 이를 부정하려는 무의식 속 작용은 그보다 훨씬 더 견고하다는 것을 지적한다. ‘백설공주’ ‘제인 에어’ ‘춘향전’ ‘인형의 집’ ‘순수의 시대’ 등 고전동화와 명작소설에 무의식적으로 내재한 성차별을 분석한다. 저자 임옥희는 경희대 영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현재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인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여성문화이론지 ‘여/성이론’을 발행하는 등 페미니즘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

◇빨래하는 페미니즘 스테퍼니 스탈 지음/ 정희진 서문·고빛샘 옮김/ 민음사 펴냄/ 444쪽/ 1만9500원

 저자 스테퍼니 스탈은 미국 명문 여대 바너드대 학부와 컬럼비아대 석사과정을 마친 뒤 신문 기자로 활약하던 소위 ‘잘나가는 여성’이었다. 하지만 스탈은 예상치 못한 임신과 출산으로 어쩔 수 없이 프리랜서 기자로 전업한다. 그녀는 자신의 꿈과 장래를 까맣게 잊은 채 수년 동안 커리어우먼, 한 남자의 아내, 한 아이의 엄마로서 바쁘게 생활한다. 그러다 불현듯 자기가 오래도록 잊고 살아온 ‘여성으로서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때 저자는 학창 시절에 배웠던 ‘페미니즘 고전’을 떠올리고 자신의 인생이 과거에 생각했던 방향과 어긋나 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금 ‘페미니즘’을 공부하기로 한다. 페미니즘 고전에서 답을 찾기로 한 것이다. 이 책은 2년에 걸친 저자의 페미니즘 수업 청강기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여성의 권리 옹호’,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 케이트 밀렛의 ‘성의 정치학’ 등을 저자의 삶과 함께 버무려져 소개한다.

◇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 크리스티안 자이델 지음/ 배명자 옮김/ 지식너머 펴냄/ 308쪽/ 1만3000원

 이 책은 저자 크리스티안 자이델이 1년 넘게 여자로 직접 살아보면서 경험한 모든 것을 생생하게 담았다. 성공한 방송제작자 출신에 안정적인 일을 하면서 아내와 행복한 삶을 꾸려가던 그가 어떻게 이런 실험을 시작하게 됐는지 그 동기부터 시작해 여장을 하면서 알게 된 여성들의 섬세한 감정 및 일상, 자신의 신체적·정신적·사회적 변화들까지 수많은 에피소드를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풀어냈다. 여자들이 외출했을 때 겪는 일들, 충격적인 산부인과 검사, 여성이나 소수자, 약자에게 쉽게 가해지는 폭력 등 남자들은 감히 상상하지 못하는 다양한 경험들을 알려준다. 여기에 남자 혹은 여자라서 금기시되는 것에 대한 진지한 사유와 통찰이 더해지면서 여성성과 남성성, 고정된 성 역할에 대한 의문을 우리 사회에 던진다. 마지막으로 남자들에게도 여성성이 있으며(여자들에게는 남성성)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 인간으로서 자유롭고 진정한 ‘나’로 살 길을 모색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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