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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립 잡기노트]아몰랑 아리랑

등록 2015-06-24 08:03:00   최종수정 2016-12-28 1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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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아리랑 악보와 영어 가사를 넣은 스카프(공군박물관 소장)
【서울=뉴시스】신동립의 ‘잡기노트’ <528>

 한국을 상징하는 노래 ‘아리랑’, 도대체 무슨 뜻인가. 국립국어원도 모른다.

 “‘나는 사랑하는 님을 떠난다’는 뜻의 ‘아리랑(我離娘)’에서 유래했다는 설, 나라가 어수선해 백성들이 괴로운 소리만 듣게 되니 차라리 귀가 먹었으면 좋겠다고 한 ‘아이롱(我耳聾)’에서 나왔다는 설, ‘아랑’이라는 아가씨의 억울한 죽음을 기리는 전설에 붙인 노래라는 설 등이 전해지지만 그 어느 것도 확실하지는 않고 그저 혼잣말로 하던 푸념을 읊조리듯 자연적으로 생겨났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외래 종교를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신앙은 각자의 교리와 신비에 맞춰 아전인수 격으로 아리랑을 해석하고 있기도 하다.

 암호와도 같은 아리랑의 의미를 외국인도 궁금해했다. 주변에 물어도 명쾌한 답이 오지 않으니 스스로 연구했다. 1896년 2월 미국 선교사 호머 B 헐버트는 ‘조선유기’(朝鮮遺記·Korea Repository)에 아리랑 악보를 실었다. 그리고 ‘한국의 성악’(Korean Vocal Music) 항목에서 아리랑의 어원 두 가지를 언급했다. “어떤 이가 내게 넌지시 ‘아르렁’의 ‘아르’는 이 나라 미래 운명과 연결된 것이라고 한 바가 있는데, ‘아르’가 러시아를 이르는 발음 ‘아라사’를 뜻한다는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아르렁’을 한자와 연결지어 ‘사랑하는 내 낭군, 사랑하는 내 낭군, 난 내 낭군을 몹시도 사랑하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1954년부터 20년 간 이땅에 머문 영국 신부 리처드 러트는 ‘풍류한국’에 아리랑의 9가지 어원을 기록했다. 경남 밀양 부사의 딸 아랑(阿娘)이 아리랑이라는 설,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부인 알영(閼英)이 아리랑이라는 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때 억지로 끌려온 잡역부들이 ‘내 귀는 먹었오’라며 ‘아이롱(我耳聾)’이라 한 데서 유래했다는 설, 역시 그들이 ‘내가 여기서 고생이오’(我多苦)라고 노래한 데서 비롯됐다는 설, 그 가운데 한 명이 집에 두고 온 아내를 그리워하며 ‘내 마음 속의 낭자’(我裏娘)이라 한 데서 나왔다는 설, 한국 피리의 장전타음(長前打音)을 흉내낸 의성이라는 설, 낙랑(樂浪)의 중국식 발음이라는 설, 고개의 이름이라는 설, ‘트랄라’ 같이 아무 의미도 없는 후렴이라는 설들이다.

 서지학자 김연갑의 해석은 탁견이다. 아리랑 연구의 태두인 그는 ‘아리’에 특히 주목한다. 

 A-ra-rung a-ra-rung a-ra-ri-o a-ra-rung ol-sa pai ddio-ra(헐버트 채보 아르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본조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오(정선 아라리),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낳)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낳)네(진도 아리랑), 아리당닥 쓰리당닥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어절씨구 잘 넘어간다(밀양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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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호머 B 헐버트(왼쪽),리처드 러트
 이처럼 아리랑의 후렴에는 대개 ‘아리’ 혹은 ‘아라리’가 있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낳)네’라는 후렴은 아라리가 아리랑을 났(낳)다고 한다. 아리랑의 어원을 일단 ‘아리’로 추정할 수 있는 근거다.

 아라리는 청동기 후기 육로와 해로를 통해 소금길이 열린 백두대간 강원·경북 일대에 예·맥·한족의 결합 종족이 정착해 살기 시작하면서 단조로운 몇 마디 말을 단순한 리듬에 얹어 반복적으로 되풀이하다가 리듬을 형성하고, 주술성과 신호성을 담아 부르면서 형성된 노래다. 곧 산의 반향음인 ‘메(山)아리’로서 산신(山神)의 화답으로 인식해 확산되며 불렸다. ‘아~리~’ 또는 ‘아~라~리’를 되풀이한 것이고 이 ‘아리’ 또는 ‘아라리’는 원초적이고 단순한 ‘소리’, ‘노래’, ‘말’이라는 의의였다.

 이를 방증할 보기는 여럿이다. 옹+아리(어린이 말 배우는 ‘소리’), 벙+어리(‘말’하지 못하는 사람), 뫼(메)+아리(산+‘반향음’), 아니리(‘말’로 하는 판소리 형식) 등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한국인이 좋아하는ㅏ·l·ㄹ 음에 o(ŋ) 음이 첨가됐고, 롱·렁·성·랑 등과 아리 또는 아라리가 결합해 오늘의 아리랑이 됐다는 이론이다. 아라리는 17세기 전 명칭이다. 김연갑은 “홍경래의 난 때는 땅에 묻은 항아리 안에 들어가 적의 먼 발자국 소리를 크게 들었다고 한다. 소리를 담는 것이 바로 항아리”라고 부연했다.

 강원·경상 지역의 음악적 특징은 ‘메나리토리’다. 메나리는 강원·경상의 김매기 소리다. 구성음은 상행 선율에서는 미·라·도·레·미, 하행 선율에서는 미·레·도·라·솔·미다. 선율의 골격음은 미·라·도 3음이다. 결국 ①김매기 소리 곡명 ‘메나리’→②강원·경상 ‘아라리’→③아라리의 통속화로 ‘아리랑’이 됐다고 본다. 견고한 기층성으로 오늘날 그 경과적 명칭이 확인되는 것이다.

 24일 오후 4시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태화관 터에 있는 태화빌딩에서 ‘아리랑의 시원(始原)과 어원(語原)론’ 학술회의가 열린다. 연구자 6인이 저마다의 이론을 펴고 토론하는 멋진 지적 사치의 자리다. 아리랑남북교류협의회와 서울아리랑보존회를 이끌고 있는 유명옥 박사(음악치유학)가 멍석을 깔아준다.

 편집부국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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