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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이혼 '파탄주의'…대법원, 시기상조론으로 기울어

등록 2015-07-03 11:27:14   최종수정 2016-12-28 15: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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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공개변론후 12명 대법관들 '유책주의'에 무게  '파탄주의' 도입 원고측 참고인 설명듣고 '아이러니'  헌재 성매매특별법 공개변론서도 유사 현상 보여  위헌 쪽 참고인 김강자 전 총경 '합헌' 주장  

 

【서울=뉴시스】이현미 기자 = 지난달 대법원이 혼외자 이혼청구소송 공개변론을 실시한 후 양승태 대법원장 등 12명의 대법관들 사이에선 유책 배우자는 이혼을 요구할 수 없다는 ‘유책주의(有責主義)’ 기류가 더 강해진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따라 사실상 혼인관계가 파탄난 경우 부부 중 어느 한쪽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이혼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파탄주의(破綻主義)’로 판례를 변경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법원 고위 관계자는 3일 "지난달 하순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 사건 공개변론을 한 후 대법관들이 어쩌면 아직은 시기상조일 수 있겠다는 쪽으로 의견이 많이 기울었다"며 "더 아이러니한 것은 대법관들이 원고 측 참고인의 설명을 듣고 그 같은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당시 원고측 참고인 이화숙 연세대 명예교수는 "파탄주의로 전환할 수 있는 여건이 성숙되어 있다"며 원고 측 주장의 타당성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파탄주의 도입을 위해선 "약자 보호 장치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유책 배우자에 대한 제재가 없어지고 혼인 의무를 지킨 배우자가 보상 받을 길이 요원해지는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이 교수의 논거였다.

 따라서 이 교수는 당장 입법을 통해 보완장치를 마련할 수 없다면 판결문에서 파탄주의의 역기능을 막을 수 있는 기준이나 원칙을 제시해주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이상훈 대법관은 '(그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이라고 질문했고, 이에 대해 이 교수는 "그런 보완장치 없이 파탄주의로 가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대법관들이 이 순간 고개를 끄덕이며 파탄주의로 판례를 변경하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후문이다. 

 당초 대법원은 간통죄가 폐지되는 등 달라진 시대 흐름에 따라 유책주의에서 파탄주의로 판례를 변경하기에 적합한 사건을 1년간 찾았었다. 그러다 비록 혼외자를 낳은 유책 배우자이긴 하지만, 15년간 별거생활 중 자녀들의 학비를 부담하고 매월 생활비 100만원을 지급해온 사건을 찾아 공개변론을 열었다.

 다른 대법원 고위 관계자는 "부양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은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 사건을 1년만에 찾은 후 공개변론까지 열었던 것은 사실 판례 변경을 위한 과정으로 봐야 하는데 오히려 공개변론이 판례 변경을 어렵게 만든 상황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고위 관계자는 특히 "지난번 헌법재판소가 성매매특별법 공개변론을 열었을 때 해당 법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원고 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김강자 전 총경이 공개변론에서 '성매매특별법을 위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법원 내에선 대법관들이 한창 물밑 조율을 하고 있는 만큼 판례 변경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교수가 주장한 것처럼 파탄주의 역기능을 보완하는 안전장치를 판결문에 제시해서 판례를 변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최종 판단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 기류는 언제든 달라질 수 있다"며 "차분히 기다리면 곧 정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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