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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에도 '국적' 있다①]더 센 '놈들' 몰려온다…론스타·칼라일 능가 '포식자'들

등록 2015-07-13 07:45:00   최종수정 2016-12-28 15: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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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등 '행동주의' 헤지펀드, 치밀한 연구 끝에 한국 시장 본격 상륙, 국내 대기업들 초긴장  론스타·칼라일 등 기존 '먹튀' 투기자본은 오히려 양반, 이들은 더욱 공격적이고 냉혹한 펀드들  "골든타임 놓친 지배구조 개선" 빌미 제공 측면도, 재계 '포이즌필' 등 방어책 마련해야 한목소리

【서울=뉴시스】강세훈 기자 조현아 기자 허지연 인턴기자 = "론스타 10년, 외환은행은 껍데기만 남았어요."

 2012년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을 인수, 현재 하나은행과 통합작업을 진행 중인 하나금융지주 고위 관계자는 론스타가 떠난 외환은행의 현 상황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론스타가 10년동안 단기수익을 추구하면서 직원 재교육 등 사람이나, 인프라 등 외환은행에 전혀 투자를 하지 않고, 불만이 쌓인 노조 달래기에만 급급했다"고 말했다.

 헤지펀드의 일종인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에 손을 댄 건 2003년 외환은행 지분 2조1500억원을 사들이고 나서부터다.

 이후 론스타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고배당, 매각 대금 회수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4조6000억원의 이익을 챙기고 떠나 '먹튀 논란'을 남겼다. 하지만 론스타는 떠나는 뒷모습마저 곱지 않았다.

 되레 우리 정부의 불합리한 과세로 손해를 봤다며 지난 2012년 5조원대의 투자자·국가간 소송(ISD)을 제기했다.  ISD의 최종 변론은 내년 1월 예정돼 있다.

 10년이 지나도록 론스타의 그늘이 쉽게 걷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론스타의 쓰라린 경험은 단지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1997년말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들의 지배구조가 취약해진 틈을 타 공격하기 시작해온 해외 투자자본들의 사례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영국계 사모펀드 BIH는 1998년 3월 대유증권(현 골든브릿지증권)을 1100억 원에 인수한 뒤 이익잉여금의 70%에 달하는 고율배당으로 인수 1년 만에 투자금을 회수했다.

 이듬해 미국계 뉴브리지캐피털은 5000억 원에 제일은행을 사들인 뒤 5년 뒤 영국 스탠다드차타드(SC)그룹에 재매각해 1조2000억 원의 차익을 챙겼다. 당시 수백 명의 제일은행 노동자들은 직장을 잃어야 했다. 2000년에도 미국계 칼라일이 약 4000억 원에 인수한 한미은행을 4년 뒤 씨티그룹에 재매각해 6600억 원의 차익을 실현했다.

 그런데 최근 다시 국내 기업들에 외국 헤지펀드 비상령이 내려졌다. 론스타나 칼라일 등보다 더욱 센 '기업 사냥꾼'이 국내 기업들에 대한 본격 공격을 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행동주의 헤지펀드'에 속하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삼성물산 공격이 대표적이다. 

 사실 기업을 인수해 가치를 높인 뒤 되파는 사모펀드들은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에 비하면 오히려 양반축에 속한다. 글로벌 헤지펀드의 약 5%를 차지하는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은 먹이에 굶주린 맹수처럼 훨씬 거칠고 공격적이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군사작전을 펼치듯 주도면밀하고 일사불란하게 단계적 압박 공세와 언론을 통한 여론몰이를 펼치며 기업의 숨통을 조여 들어간다.  

  다시 말해 주로 비효율적인 재무구조나 인색한 배당, 취약한 지배구조 등 개선 여지가 큰 기업들의 틈새를 파고들어 경영권을 뒤흔들어 주가를 띄워 배를 채운 뒤 떠나는 식이다. 때문에 기업 가치를 높이는 데는 안중에도 없고 돈 되는 자산을 팔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기존 이사진들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교체해 단기 차익을 극대화하는데 총력을 기울인다. 

 2006년 칼 아이칸 펀드의 KT&G 공격도 그 중에 하나.  칼 아이칸은 이사회에서 자회사 매각을 요구해 1년 정도가 지나 1500억원의 차익을 남기고 떠났다. 그보다 앞서 2003년 SK그룹을 공격한 소버린 펀드도 2년 반 정도 동안 투자해 9000억원대의 차익을 거둬들였다.

 이들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공통점은 주로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다음 주요 주주로 등재한 후 CEO 교체나 자산 매각, 사업 재편 등 적극적으로 경영에 개입해 주식 가치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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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이들 행동주의 헤지펀드 중에서도 가장 피도 눈물도 없는 곳으로 악명 높은 곳이 엘리엇이다. 엘리엇은 아르헨티나, 페루, 그리스 등이 국가 부도위기로 몰릴 즈음 정크로 폭락하는 채권을 끌어모아 소송을 걸어 기어코 원리금을 받아내는 냉혹함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지난 6월 4일 국내에서 첫 실체를 드러냈다. 삼성물산 지분 7.12%까지 사들인 후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그룹 승계작업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반기를 들고 나선 것. 삼성물산 합병 비율이 잘못됐다, 보유 주식(삼성전자)으로 현물배당을 하라로 요구했고, 비록 지긴 했지만 합병 주총 중지 등 벌써 두 건의 가처분 소송을 걸었다.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 불허지만 삼성을 상당기간 괴롭힐 것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또 다른 미국계 헤지펀드 메이슨캐피털도 최근 삼성물산 지분 2.2%를 매입한 상태다. 영국계 헤지펀드인 헤르메스는 지난 3일 삼성정밀화학 지분 5.02%를 보유 중이라고 공시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기업의 비효율성을 제거하고 소액주주의 가치를 증대시키는 순기능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으로 정상적 기업들이 경영활동에 타격을 입고, 더 나아가 한국경제 전반에 타격이 미치는 사태로 이어지게 된다.

 삼성물산 김신 사장도 "경영진들이 합병 성사를 위해 밖으로 다니는 일이 많아지니 실제 사업에 집중하기 힘들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런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은 국제적 저금리 상황에서 고수익을 노리며 지배구조가 취약한 국내 대기업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할 태세를 취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삼성 외에 다른 대기업들도 언제든 헤지펀드들의 먹잇감이 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외국인 투자자(투자법인)들이 지분 5% 이상 보유하고 있는 상장사가 285개로 나타나 '제2의 엘리엇'이 나타나는 것이 시간문제라는 평가도 나온다. 

 자본시장연구원 황세운 실장은 "우리 기업들의 지배구조의 불투명성, 취약성 때문에 글로벌 헤지펀드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며 "우리나라 기업들의 고질적인 문제가 오너들이 소수의 지분을 들고 그룹 전체의 경영권을 장악하고 의결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외국계 헤지펀드들이 지분율을 단기간에 상승시켜서 경영권을 위협하는 기초적인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우리 기업들이 계속되는 지적에도 지배구조 개선에 소극적이어서 헤지펀드들에게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없지 않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배구조의 취약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며 "재벌들은 필요성은 인식하면서도 많은 비용을 들여 고치려는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고, 그러다 외국계 헤지펀드들의 공격이 들어오면 부랴부랴 시정하는 노력을 보여왔다"고 지적했다.

 재계에서는 이번 기회에 경영권 방어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포이즌 필(신주인수선택권)이나 차등의결권(대주주에게는 1주 1의결권 원칙의 예외를 인정하는 것), 황금주 제도(지배주주에게 M&A 같은 주요 사안을 무산시킬 수 있는 거부권을 주는 것) 등이 대표적인 방안이다.

 한국상장사협의회 정우용 전무는 "외국은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들이 있는데 우리는 글로벌 시대라고 말하면서도 제도 자체는 옛날 제도 고집하고 있어 지금 자본의 속성을 못 따라가고 있다"며 "차등의결권제도, 포이즌필, 황금주 제도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재벌들의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친화적인 정책 노력이 전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차등의결권제도나 포이즌 필을 도입하는 것이 재벌들을 위한 특혜라는 지적이 많은 상황이다.

 황 실장은 "포이즌필, 차등의결권 도입은 주주친화적인 경영구조 정착과 더불어서 갈 때 가능할 것"이라며 "외국은 우리나라처럼 이런 지배구조들의 취약성 이슈들이 부각된 상황에서 도입된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경영권 분쟁의 소지가 있는 기업들이 이미 관찰이 되고 있어 제2의 엘리엇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은 굉장히 높아 보인다"며 "헤지펀드의 공격에 따른 경영권 분쟁이 시사 하는 바는 사후대응보단 사전예방이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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