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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국적'②] "독이 든 자본, 미국도 내친다"…열건 열고 지킬건 지켜야

등록 2015-07-13 07:46:00   최종수정 2016-12-28 15: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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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자본 유치 필요하지만,  국가안보와 기술유출 위험도 고려해 선별 접근해야   '글로벌 스탠다드' 강조하는 미국 유럽, 오히려 외국자본에 '국익우선' 잣대 적용   국내에서도 '외국인 투자 촉진법개정안' 등 변화 바람, 이런 움직임 확산시켜야

【서울=뉴시스】이근홍 기자 = 글로벌 통신장비 업체인 중국 화웨이는 자본주의의 본고장인 미국시장 진출을 위해 6년간 끝임없이 노크했지만 2013년 결국 백기를 들어야 했다.

 화웨이는 2008년부터 글로벌 사업 확장을 위해 미국시장 진출을 추진했지만 '안보상의 이유'로 줄곧 내침을 당했다.  2008년 미국 통신장비 회사 3컴(3COM)과의 합작회사 설립에 실패했고, 2010년에는 미국 3대 통신사 스프린트넥스텔의 무선망 사업 입찰에서도 고배를 마셨다. 모두 미국 정부의 반대 때문이다.

 당시 쉬즈쥔 화웨이 부회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큰 미국시장을 포기하는 것은 미국과 중국 간의 사이버 안보 논란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전인 2005년에는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가 미국 에너지업체 유노칼을 인수하려다 미국 의회의 반대에 부딪혀 발길을 돌렸다.  

 외국인 투자 촉진을 위해선 외국 자본에 대한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알려져 있다. 개방된 나라에서 '자본의 국적'을 내세우는 건 편협한 국수주의적 행태로 결코 국익에 도움이 안된다는 것도 상식처럼 굳어져 왔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안보상의 이유"로, "기간산업"이기 때문 등 각종 비경제적 이유를 들어 자국의 알토란 같은 기업에 대한 외국 자본의 인수를 막는 건 개도국이나 후진국이 아니다. 중국 기업에 대한 미국의 예에서 보듯 주로 서방 선진국들이다.

 역설적으로 자본시장이 더 발달돼 있는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외국 자본에 대해서는 더욱 까다로운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지난 해 미국의 제네럴일렉트릭(GE)이 어려움 끝에 프랑스 중공업체 알스톰 에너지 사업부문을 인수하는 과정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GE는 지난해 알스톰 에너지 사업부문 인수에 나섰지만 프랑스 정부는 '외국 기업이 에너지와 운송, 통신 등 프랑스 주요 기업을 인수하려 할 때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법을 앞세워 방어전을 펼쳤다. 헐값매각, 기술 유출, 구조조정 등이 주요 논리였다.

 6개월 넘게 지속되던 양측의 공방전은 프랑스 정부가 인수 승인 결정을 내리며 일단락됐다. 단 유럽연합(EU)은 GE가 알스톰 에너지부문을 사들이면 관련 분야 시장 경쟁을 제약할 수 있다며 여전히 조사를 벌이고 있다.

 같은 서방 나라들간에도 이처럼 외국자본이 자국 기업을 인수하냐, 아니냐는 중요한 문제다.

 물론 한국도 쓰라인 경험이 있다. 지난 1996년 대우그룹은 프랑스 방위산업의 대표적인 공기업인 톰슨사의 가전소그룹 톰슨멀티미디어를 단돈 1달러에 매입하기로 했었다.

 톰슨은 과도한 부실로 더 이상 버티기 힘겨운 상황이었고, 유럽시장을 공략하고자 했던 대우그룹은 현지 인지도·판매망 등 거점이 필요했다. 양측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계약은 매끄럽게 진행됐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국내 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우려가 있다'며 대우와의 거래를 마지막 순간 백지화시켰다. 아시아 국가에 공기업을 넘기는 것은 프랑스의 자존심을 파는 것과 같다며 반발한 국민 여론도 정부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프랑스 정부는 1년 후인 1997년, 톰슨사 민영화 원칙으로 '인수 기업은 프랑스 기업으로 제한한다'는 기준까지 만들었다. 당시 톰슨사 인수에 관심을 보이던 영국 기업들까지 응찰 자격을 얻지 못해 '프랑스의 외국기업 차별 문제'가 국제사회의 이슈로 떠오를 정도였다.

 최근 삼성물산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 간의 분쟁으로 인해 무분별한 외국 자본 유치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외국자본을 무조건 거부하는 국수주의적 시각도 문제이지만,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명목으로 외국자본에 대해 근거없이 관대한 태도도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개방할 건 개방하되, 외국 자본이 지닌 위험성도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쉽게 빠져나갈 수 있고, 국가 안보나 정보 등이 함께 유출될 수도 있다. 유럽과 미국 등이 암묵적으로 '국내 자본 지키기'를 고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국내에도 최근 엘리엇의 삼성 공격을 계기로 글로벌 스탠다드 및 외국 자본에 대한 인식도 변하고 있다. 개방적 태도를 유지하되, 지킬 건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의원은 지난 6일 국내 경제의 원활한 운영을 저해할 가능성이 큰 외국인 투자를 사전에 차단, 국내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강화하는 내용의 외국인 투자 촉진법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재벌 저격수로 이름 높은 박의원이 국내 기업경영권 방어의 백기사로 나선 셈이다.

 '대한민국 경제의 원활한 운영을 현저히 저해하는 경우' 외국인 투자를 막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골자다. 또 외국인투자위원회가 특정 외국인 투자가 외촉법상 제한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심사하도록 규정했다.

 박 의원은 "외국투자가들이 우리나라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국내기업에 대한 합병·취득·인수 시도를 할 경우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해 투자를 제한, 국내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해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법안은 적대적인 외국인 투자에 대해 포이즌 필·차등의결권 같은 제도 도입 없이 국가 차원에서 한국 경제와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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