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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내서 집 산 '하우스푸어' 벼랑끝 내몰리나

등록 2015-07-26 14:03:14   최종수정 2016-12-28 15: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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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인준 기자 = #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40대 가장 박용현(가명)씨는 부동산 거품이 한창이던 지난 2007년 1억원의 빚을 내 아파트를 구입했다. 억대의 빚이 부담스러웠지만 자고나면 뛰는 집값을 위안 삼았던 그는 글로벌 금융 위기로 집값이 폭락하고 이자부담 커지자 한동안 발을 동동 굴려야 했다.

 2~3년간의 거치기간이 끝나면 조금이라도 싼 이자를 찾아 여러 은행을 전전하며 갈아타기를 거듭하기를 몇 년, 사상 초유의 1%대 저금리 시대가 찾아오면서 박씨는 겨우 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박씨의 버티기는 이제 한계에 달했다. 이자만 내면서 집값이 오르기를 기다리던 시대가 막을 내리기 때문이다. 당장 내년 3월에 변동금리대출 거치기간이 끝나는 박씨는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아나가면 모자라는 생활비를 어떻게 충당해야할지 막막한 상태다.

 정부가 가계부채 속도조절에 나서면서 '하우스푸어'들이 벼량 끝으로 내몰릴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은 낮으면서,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전세난과 역대 최저 기준금리에 떠밀리듯 집을 산 젊은층들도 곤경에 처할 것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정부는 22일 '가계부채 종합관리방안'을 통해 가계부채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변동·만기일시상환 대출을 고정·분할상환 대출로 전환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변동·만기일시상환 신규 대출은 시장에서 종적을 감추고, 기존 대출자도 만기가 도래 전까지 고정·분할상환 대출로 갈아탈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가계빚으로 위축된 이들의 생활고도 더욱 팍팍해질 수밖에 없게 될 전망이다.

 문제는 올해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전세난이 가중되고 사상 초유의 저금리로 주택 매매시장에 실수요 중심의 신혼부부 등 젊은층이 대거 진입하면서 20·30대 젊은층의 가계빚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영무 LG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최근 내 집 마련에 나선 청년 임금 근로자의 가계부채 증가속도가 가팔라 가계부채 문제의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젊은 층의 경우에는 사회초년생이 많아 사실상 대출 상환여력이 다른 계층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의 가계부채 종합관리방안이 내년 1월부터 시행되면 젊은층의 신규 대출을 억제하는 효과는 있겠지만 이미 집을 산 젊은층을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은 마땅치가 않다.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득에 맞춰 대출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시행 초기 1, 2년은 가계의 부담이 매우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김 연구위원은 "분할상환 대출의 경우 만기일시상환 대출에 비해 총액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때문에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 상호금융을 포함한 제2금융권으로 대출 수요가 옮겨가는 이른바 '풍선효과'를 막기 위해 9월부터 상호금융권의 토지·상가담보대출에 대한 담보인정 한도를 현행 60%에서 50%로 줄이기로 하면서 사실상 퇴로도 차단됐다.

 일단 정부는 유한책임대출(비소구대출)을 도입해 취약계층의 부실 문제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비소구대출은 부도 발생시 채무자의 상환 책임을 해당 담보물로 한정하는 제도로, 집을 팔아도 대출금을 갚을 수 없다면 집을 포기하는 대신 대출금을 갚지 않아도 되는 제도다.

 하지만 이 방안은 정부가 하우스푸어를 지원한다며 내놓았다가 슬그머니 사라진 '서민주거안정을 위한 주택시장 종합대책'의 전철을 밟은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주택소유권'에 대한 대출자들의 애착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13년 4월 '지분매각제도'를 도입해 하우스푸어를 돕기로 했다. 지분매각제는 원리금상환이 어렵거나 장기연체된 주택담보대출을 금융 공기업이 매입해 채무조정을 해주는 제도다.

 3개월 이상 연체된 대출을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사들이는 방식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까지 내걸었던 이 방안은 하지만 이미 용도폐기된 상태다.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금융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캠코의 지분매입프로그램의 경우 실적이 전무해 시행 1년만에 아예 폐지됐고 채권매입실적 역시 상담건수의 10%에도 못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우스푸어들이 정부의 지원책을 외면한 것은 이 프로그램을 이용할 경우 주택 소유권을 캠코에 넘겨야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하우스푸어들이 빚을 내 집을 산 것은 무리를 해서라도 주택을 소유하려는 이유인데 소유권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제도가 먹힐리 없었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내놓은 이번 가계부채 문제 해법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방향성은 맞다'면서도 실제 효과면에서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정부가 부동산 경기에 부담을 주지 않는 수준으로 대책을 만들다보니 정작 가계부채 부실을 키운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은 손도 대지 못했다는 점이 한계라는 지적이다.

 정부는 작년 8월 경기 회복세를 이끌어내기 위해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완화하는 부동산 경기 부양책을 내놨고, 이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네 차례나 인하해 사상 최저인 1.50%까지 낮춰 은행권 대출금리도 따라 내려가면서 가계부채 폭증의 빌미를 제공했다.

 결국 정부는 가계부채가 1100조원을 돌파하면서 부실 위험이 손댈 수 없을만큼 커지고, 올 하반기 미국의 금리 인상이 국내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치면 변동금리 대출자들부터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자 뒤늦게 대책을 내놨다는 평가다.

 정부가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취약계층을 볼모로 잡고도 효과를 보지 못한다면 오히려 정부 비난 여론만 들끓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이제라도 가계부채 구조를 분석해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금융연구원 김 연구위원은 "현재 가계부채 문제에서 우려되는 부분은 특정 시점에 대출자들의 만기가 쏠려있을 경우 갑자기 대출 전환 수요가 몰려 시장에 충격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이라며 "정부가 현재 가계부채의 구조에 대해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 이근태 연구위원은 앞으로 상황을 봐야겠지만 가계부채가 그래도 빠르게 늘어난다면 LTV, DTI를 손봐야 문제가 해결된다"며 "대출심사는 계속 강화하는 게 맞고, 비소구 대출도 조금씩 늘려가야 나중에 리스크가 커지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현재 고령층 가계부채 문제의 경우 노후대비가 안 돼 있어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빌리게 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며 "노후 보장을 위한 사회적 복지 시스템 등과 맞물려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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