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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한국은 왜 '헬조선'이 되었는가…'한국인은 미쳤다' 외 3권

등록 2015-10-12 07:00:00   최종수정 2016-12-28 15:4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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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윤시내 기자 = 최근 ‘헬조선’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헬조선은 지옥을 의미하는 영단어 ‘헬(hell)’과 대한민국을 의미하는 ‘조선’을 합친 신조어로, ‘지옥 같은 대한민국’이란 뜻이다.

 주로 극심한 양극화 현상, 만연한 부패, 상류층의 갑질, 노동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분위기 등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현실을 자조적으로 말할 때 쓰인다.

 ‘삼포’(연애·결혼·출산)를 넘어 인간관계·내 집 마련을 포기한 ‘오포’, 여기에 꿈과 희망까지 포기한 ‘칠포’세대라 불리는 요즘 청년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자신이 태어난 조국에까지 화살을 돌리는 것이다.

 어쩌다 대한민국은 ‘지옥’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을까.

 프랑스인 저자 에리크 쉬르데주가 쓴 도발적인 제목의 책 ‘한국인은 미쳤다’를 보면 그 이유 중 하나가 보이는 듯하다.

 쉬르데주는 필립스, 소니, 도시바 등 당대 최고의 전자기업에서 25년간 근무하다 2003년 LG전자 프랑스 법인에 영업마케팅책임자로 합류했다. 2006년에는 상무로 승진해 LG그룹 최초의 외국인 임원진이 되고, 2009년 법인장에 올라 LG전자의 프랑스 사업을 총괄했다.

 그런 그가 10년간 한국회사에서 일하며 경악하다고 느끼던 기업 문화와 경영 방식을 이 책을 통해 낱낱이 파헤쳤다. 한국인은 당연하게 느끼지만, 외국인의 눈에는 냉혹하고 비인간적으로 비치는 우리의 현실을 담았다.

 쉬르데주는 한국기업에 처음 출근했던 날부터 이상 기류를 감지한다. 당시 한국인이었던 현지 법인장은 다른 한국인 직원에게 욕설 섞인 고성을 지르며 화를 낸다.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그 화는 고성에서 끝나지 않는다. 법인장은 화를 내다 못해 직원에게 서류를 내던진다.

 이 일화를 들은 한국 사람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인 쉬르데주에게는 그야말로 문화충격이었다. 그는 이 일을 이렇게 회상한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프랑스, 독일, 일본 기업에서 오래 일해 봐서 회의가 말싸움으로 변하거나 엄청난 언쟁이 회사의 전설로 남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표가 사원의 머리에 서류를 던지는 광경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상적인 듯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는 것은 더더욱 상상할 수 없었다.”(9쪽)

 협력사를 파트너가 아닌 갑을관계로 대하는 태도, 직원들을 ‘실적’으로만 줄 세우는 평가방식, 사생활도 없이 일에만 몰두하는 삶 등 그가 놀란 점은 한둘이 아니다.

 “나는 여러 차례 법인장과 간부들에게 서양에서는 도움을 받으면 보답을 해야 하고 협력업체들을 그렇게 일방적으로 대할 수 없다고 설득했다. 하지만 그들은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 실적이 그저 그런 사원은 그 이전 사업에서 아무리 좋은 성과를 냈더라도 징계를 받거나 가차 없이 해고당했다. 오로지 팩트와 결과만이 중요했다. 이것이 한국 기업의 대표적인 경영 방식이다.”(23~24쪽)

 “그의 삶은 기업에 바쳐져 있다. 회사 밖에서는 그 어떤 형태의 자아실현도 상상할 수 없다. … 한국인은 하루에 시간 근무하면서도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 또는 오후까지 출근해서 일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다.”(62~65쪽)

 직원을 회사의 부품으로만 여기는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한 직원이 마감 기간에 맞추기 위해 닷새 연속 회사를 떠나지 않고 냉동식품으로 끼니를 때우며 일하다 결국 급성 궤양으로 병원에 실려 가 수술을 받는다. 그런데 수술이 끝나자 한국인 직원이 의사에게 물은 말은 “언제 다시 복귀할 수 있을까요?”였다. 이를 본 쉬르데주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인은 아마 죽음의 문턱에서도 업무의 바퀴에 짓눌릴 것이다. 업무를 벗어나면 그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66쪽)

 물론 그 역시 한국기업의 효율성 추구와 뚜렷한 목적의식이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룩한 원동력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이 방식이 ‘창의성’이 중요한 지금도 유효한지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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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제시하는 프랑스식 방식이 무조건적인 해답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짚은 이방인의 뼈아픈 지적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권지현 옮김, 북하우스 펴냄, 180쪽, 1만2000원.



◇한국에서 살아남기…이영노 지음/ 산눈 펴냄/ 200쪽/ 1만1000원

 제목부터 의미심장한 책이다. 그 이면에는 마치 “한국에서 ‘생존’하는 것은 어렵다”는 뜻이 숨어있는 듯하다.

 물론 저자는 진짜 죽고 사는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에 대한 비판을 쏟아낸다. ‘집단·연고주의’ ‘물질주의’ ‘획일화’ ‘권위주의’ ‘민족주의’ ‘무한경쟁’ ‘교육열’ ‘군대식 문화’ ‘여성혐오’ 등 9개 키워드를 통해 경제적으로는 잘살게 됐는데 점점 더 불행해지는 현재의 모순이 무엇 때문에 발생하는지를 시니컬하게 조명한다.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낸, 과감하고 통렬한 비판에 언짢아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너는 한국사람이 아니냐”는 반응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저자는 “나는 한국인이고, 한국이 좀 더 좋은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고 저술의도를 밝혔다. 저자의 말처럼 반성 없이는 발전도 없다.

◇갑질사회…최환석 지음/ 참돌 펴냄/ 368쪽/ 1만4800원

 ‘땅콩회항’을 기억하는가. 지난해 12월 대한항공 부사장이던 조현아씨가 기내서비스를 문제 삼아 이륙 준비를 하던 여객기를 회항시킨 희대의 사건이다.

 연이어 아파트 경비원 폭행사건, 백화점 아르바이트생 모욕 사건 등이 터지며, 권력 우위에 있는 ‘갑(甲)’이 약자인 ‘을(乙‘)’에게 부당한 권리행사를 하는 ‘갑질’이 사회문제로 대두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저자는 바로 이 불평등과 그로 인한 차별이 한국 사회 특유의 갑질을 만들었다고 지적하며, 그 뒤에 숨어있는 사람들의 심리기전을 파헤친다. 신라의 삼국통일과 베네수엘라·필리핀의 경제 추락을 갑질과 연관시키는 등 신선한 시각이 엿보인다

.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와 ‘흙수저’로 인생이 결정되고, 학벌·재력에 의해 등급이 매겨지는 극심한 불평등 사회를 어떻게 타개해야 하는지에 관한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다.

◇배제, 무시, 물화…김원식 지음/ 사월의책 펴냄/ 304쪽/ 1만7000원

 빈부갈등, 세대갈등, 남녀갈등 등 수많은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지만 어떻게 그것을 진단하고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보편적 합의가 전혀 없다. 애초에 이 문제를 바라보는 공통의 ‘틀’이 부재한 까닭이다. 저자는 복잡한 갈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분배 불평등, 경제적 복지 등 기존의 진보관을 넘어선 사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제시하는 것이 배제와 양극화 현상으로 나타나는 ‘분배 문제’, 사회적 무시와 모욕을 둘러싼 ‘인정 문제’, 인격 및 자유로운 삶과 관련되는 ‘물화 문제’라는 세 가지 틀이다. 이 틀에 맞춰 사회갈등 영역을 구분해 분석한다. 한국 사회의 양극화 및 시장화 문제에 관한 비판적 진단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실천적 대안까지 모색한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선정한 ‘2015 우수출판콘텐츠’로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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