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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이 뭐길래…서울, 13년째 특수학교 설립 '스톱'

등록 2015-10-12 13:24:10   최종수정 2016-12-28 15:4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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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최동준 기자 = 서울장애인부모회, 장애인 관련 사회단체 회원들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민원실 앞에서 특수교육예산 일괄삭감 항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중증학생 위한 특수학교 설립, 특수교육 5개년 계획 이행 촉구 등을 주장했다. 2014.10.23.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은 기자 = 서울 시내에서 특수학교가 13년째 신설되지 못하고 있다. '장애학생의 우발적인 행동이 무섭다' '집값이 내려간다' 등의 이유로 특수학교 설립 사업이 번번이 무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일반학생보다 더 긴 거리를 통학하며 속앓이를 하는 상황이다.

 ◇서울 특수학교, 1만3146명 필요한데…정원은 4600명

 12일 교육부에 따르면, 현재 서울 시내 특수교육 대상 학생 수는 1만3146명이나 특수학교 정원은 4600여 명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2002년 '경운학교'가 개교한 이래 13년 동안 서울 지역에 특수학교가 신설되지 않았다.

 현재 서울시 특수학교는 29개다. 25개 자치구 중 8곳(양천·금천·영등포·용산·중구·성동·동대문·중랑)에는 특수학교가 없는 상태다.

 결국 이들 지역 거주 장애학생들은 다른 지역 특수학교까지 원거리 통학을 해야 한다. 이마저도 정원이 초과한 학교가 많다. 서울 시내에서 특수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장애 학생 8500여 명은 일반 학교 특수학급이나, 아예 일반학급에 다니는 실정이다.

 특수학교에 입학했다고 해도 고생인 것은 마찬가지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서울 시내 특수학교 학생의 약 45%인 2081명이 왕복 1~4시간 동안 통학하고 있다. 일반학생이 대부분 주거지에서 왕복 1시간 이내 거리에 있는 학교에 다니는 것과 비교해 최대 4배 넘게 멀리 다니는 셈이다. 

 실제 주부 정모(47·서울 중랑구 신내동)씨는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아들 동하(가명·15)군을 특수학교가 있는 광진구까지 매일 1시간 넘게 통학시키고 있다. 동하군처럼 중랑구에 사는 장애학생 150여 명은 각각 가깝게는 노원구, 멀게는 강남구까지 무려 6~28㎞ 거리에 있는 학교에 재학 중이다. 

 정씨는 "매일 2시간이 넘게 등하교를 시키고 있는데 아이도 힘들어하고 지켜보는 부모도 가슴 아프다"면서 "우리 지역에 특수학교가 없으니 다른 지역에 가서 아이를 받아달라고 사정해야 하는 상황도 속상하다"고 하소연했다.

 전국특수학교학부모협의회 관계자는 "시각·지체·정신 장애를 가진 학생이 원거리 통학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며 "최소한 자치구마다 특수학교 하나씩은 설립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취지 좋아도 우리 동네는 안돼" 지역주민들 반발  

 특수학교 신설이 어려운 이유는 지역 주민의 반대 때문이다. 주민 대부분은 특수학교를 혐오시설이자 집값을 떨어뜨리는 주범처럼 취급하고 있다. 특히 일부 주민은 장애학생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고, "특수학교 설립을 쓰레기 소각장 설립과 같다"며 반발한다. 

 실제로 지난 5일 기자가 중랑구와 강서구에서 만난 특수학교 설립 반대 주민들은 "장애학생들의 우발적인 행동이 걱정된다" 등의 주장을 서슴없이 펼쳤다.  

 중랑구의 경우 교육청이 신내동에 있는 공터에 지적장애 학생들을 위한 특수학교 설립을 추진했으나 주민 반대에 부딪혀 보류된 상태다.

 신내동에서 만난 40대 주민은 "부모 입장에서는 지적장애 학생들이 우리 아이에게 성추행, 폭행 등 우발적인 행동을 할까 염려된다"면서 "집값 평균화 측면에서도 강남구 등 부자동네에 설립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50대 주민은 "근처에 임대주택, 요양병원이 있는 상황에서 특수학교까지 들어오면 우리 동네가 기피시설 타운처럼 비칠까 걱정된다"며 "굳이 중랑구에 특수학교를 세워야 한다면 중랑숲 등 아직 개발되지 않는 동네에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60대 주민은 "장애학생을 위한 학교를 세운다는 취지는 좋으나 왜 하필 우리 동네에 세우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특수학교가 들어오면 동네 발전에 악영향을 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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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은 기자 = 교육청은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위치한 폐교인 공진초등학교 부지에 특수학교 설립을 추진하려 했으나 지역 주민들의 반대에 보류된 상태다. 현재 김성태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이 부지에 국립한방의료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2015.10.06 [email protected]
 강서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특수학교인 '교남학교'가 있지만, 이미 특수교육법에 따른 학급당 기준 정원을 초과했다. 이에 교육청은 가양동의 폐교인 공진초등학교에 특수학교를 세우려 했으나 인근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힌 상태다. 주민들은 지난해 반대 서명을 진행하며 특수학교 설립을 가로막았다.

 가양동에 사는 30대 주민은 "공진초 부지에 국립한방의료원 설립이 확정된 것으로 안다"면서 "사실 (그곳에)특수학교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집값이 내려가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털어놓았다.

 50대 주민은 "장애인의 입장도 중요하지만, 강서구에는 유독 장애인을 위한 배려 시설이 많아 특수학교까지 설립되는 건 꺼림칙하다"면서 "이 동네가 허준박물관, 한의사협회도 있는 허준테마거리이니 한방의료원이 어울린다"고 전했다.

 ◇특수학교 설립하면 정말 집값 하락하나…강남 '밀알학교' 상생 사례  

 지역주민들이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크게 '집값 하락'과 '장애학생들에 대한 편견' 등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역주민들의 우려는 사실에 가까운 것일까.

 교육부가 지난 10년간 특수학교 주변 아파트 가격을 분석한 결과 영향이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수학교 설립이 집값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또 특수학교 학생 대부분이 부모 차량으로 통학하고, 실내 활동을 주로 하므로 지역주민들과 직접 접촉할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이 교육부의 설명이다.

 오히려 특수학교 설립 이후 지역사회와 상생하는 사례도 있다. 서울 강남구 일원동 '밀알학교'가 대표적이다. 이 학교 역시 1997년 설립 당시에만 해도 주민들이 통학버스 출입로를 봉쇄하는 등 반대가 극심했다.

 그러나 개교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장애학생, 학부모와 주민이 함께 어울리면서 지내고 있다.

 개교 후 밀알학교는 교내에 카페를 마련하고, 주민들을 상대로 장애학생들이 커피를 내려 판매하는 등 직업훈련을 하고 있다. 또 음악당에서는 지역주민과 장애인들을 위한 공연을 수시로 연다. 또 장애학생들이나 유명 작가의 다양한 작품을 전시하는 미술관도 개설해 주민들이 무료로 관람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 같은 밀알학교의 활동은 장애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더 나아가 주민들은 장애학생들을 위한 자원봉사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주민 두 명이 장애학생 한 명을 담당해 교육보조를 하는데 자원봉사 신청이 끊이지 않을 정도다.  

 밀알학교 관계자는 "설립 당시 주민 반대가 심했지만, 지금은 밀알학교 카페를 찾고, 자원봉사를 지원하는 주민이 많다"며 "장애학생과 지역주민이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수학교 설립문제에 관해 서울장애인부모회 관계자는 "일부 주민들이 특수학교를 혐오시설이라면서 반대하고 있는데, 우리 아이들이 전염병자도 아니고 범죄자도 아닌데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특수학교를 혐오시설이 아니라 공공시설로 인식해 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교육청 관계자는“특수학교는 수요에 맞춰 지속적으로 늘려야 하지만 일부 지역주민 반대가 심해서 추진하기가 어렵다"면서 "특수학교를 일반학교와 다르지 않게 생각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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