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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자,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연극 '길 떠나기 좋은 날'

등록 2015-10-13 15:24:11   최종수정 2016-12-28 15:4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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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12일 오후 서울 중구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연극 '길떠나기 좋은 날' 제작 발표회에 참석한 김혜자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5.10.12.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배우 김혜자(74)가 눈시울을 붉혔다. 초연을 앞둔 연극 '길 떠나기 좋은 날'의 극본을 읽었을 뿐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 '서진', 마을 아저씨 '중길', 딸 '고은'의 회상 속에만 등장하는 상상 속 인물이다. 늙고 병들어 자신에게서 멀어지려고 하는 '소정'을 그리워하는 서진의 회상 속 그녀는 애절하고 안타깝다.

 김혜자는 12일 '길 떠나기 좋은 날' 제작발표회에서 "연극의 매력은 끝날 때까지 어제 몰랐던 것을 오늘 알 수 있어서 좋다는 것"이라며 눈을 반짝였다.  

 1963년 KBS 탤런트 1기로 연기를 시작해 올해로 데뷔 52주년을 맞았음에도 "공부하는 것 같다"는 자세다.  

 "교과서로 하는 공부는 싫은데 연극은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한다. 근데 오늘 알았다고 깨달으면 어제 온 관객에게 미안하다"고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길 떠나기 좋은 날'은 착하게 사는 노부부 이야기다. 아내가 불치병에 걸리면서 삶의 지난함도 맛보지만 그녀는 오히려 희망 전도사가 된다.  

 연출을 맡은 극단 로뎀의 하상길 대표가 김혜자에게 헌정하는 작품이다. 특히 소정의 캐릭터는 김혜자를 떠올리며 만들었다. 약 4년 전 김혜자에게 이 역을 제안했으나 그녀가 거절했고 수정을 거듭한 끝에 그녀가 허락하면서 연극 제작이 이뤄졌다.

 하 연출은 김혜자의 열렬한 팬이다. 연극학도이던 1969년 그녀가 출연한 극단 실험극장의 '유다여 닭이 울기 전에'(극작 오태석·연출 허규)를 보고 배우 김혜자에게 반해 그녀와 작업하는 꿈을 꿨다. 1991년 '우리의 브로드웨이 마마'로 마침내 꿈을 이뤘고, 2001년 연극 '셜리 발렌타인'으로 두 번째로 작업했다. '길 떠나기 좋은 날'이 세 번째 작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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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12일 오후 서울 중구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연극 '길떠나기 좋은 날' 제작 발표회에 참석한 김혜자가 취재진을 바라보고 있다. 2015.10.12.  [email protected]
 하 연출은 "'유다여 닭이 울기 전에'를 봤을 당시 (연기를 너무 잘해) '저런 괴물이 다 있나'라는 생각을 했다"면서 "제가 선생님의 능력을 끌어내지는 못할 수 있지만 연기를 잘 해낼 거란 기대는 꺾지 않는다"며 웃었다.  

 지난해까지 1인11역을 소화해야 하는 모노극 '오스카 신에게 보내는 편지'에 출연한 김혜자는 "이 작품을 끝으로 연극에 더 이상 출연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최선을 다해서 연기했고, 나를 다 바쳐서 한 연극인 만큼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 선생님이 예전보다 대본을 여러번 고쳐줘서 전에 읽은 것과 느낌이 틀리더라. 우리나라 말의 아름다움도 느껴서 출연을 결정했다"고 알렸다.

 하 연출이 '우리말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연극을 꼭 한 번 만들고싶다'느 바람을 담은 작품인 만큼 시적이고 은유적인 대사가 넘친다.

 김혜자는 이런 부분에 유의하고자 했다. "실생활 대사 같지 않아 등장인물이 땅바닥을 짚고 서 있지 않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말이지만 살아 있는 사람처럼 표현을 해야 하니, 그 부분이 가장 힘들었다."

 소정은 소녀와 어머니의 마음을 동시에 표현해야 하는 캐릭터다. 함께 활약하는 배우들 중 소녀의 이미지와 '국민 어머니'의 이미지를 동시에 간직한 이가 김혜자다.  

 "예전에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잘못하면 소녀 같은 면만 부각될 것 같아 작품 선택이 흐지부지됐었다. 소정이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니 사람의 모습이 다 있다. 소녀의 모습과 어머니 모습, 두 개 다 가져가야 한다. 딸이 아주 가난한 나라의 외국인과 결혼하려고 할 때 아빠는 반대하는데 소정이는 사랑하는 마음을 이야기한다. 너를 사랑하는 마음 그 자체가 가장 소중하고 아름답다고 말하며 엄마로서의 역할을 한다. 또 햇살이 좋다고 신나할 때는 소녀 같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 어떤 모습만 부각이 되면 안 돼서 조심해서 연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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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12일 오후 서울 중구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연극 '길떠나기 좋은 날' 제작 발표회에 참석한 김혜자가 1막 끝장면을 연기한 뒤 생각에 잠겨 있다. 2015.10.12.  [email protected]
 예전에는 연기가 잘 안 되면 집에 가서 눈물을 흘린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다. 최근에도 "울 정도는 아니지만 연극 연습이 잘 안 되면 돌아갈 때 마음이 무겁다"고 인정했다.  

 "특히 마음이 상하는 건 TV 연기를 할 때다. 후다닥 촬영을 하니 내가 연기가 잘 안 됐다고 다시 하자고 할 수도 없다. 집에 가서 답답한데, 다른 가족에게 폐 끼치기 싫으니 나 혼자 방에 들어가서 울고.(웃음)"

 그런데 현재 가장 겁나는 것은 "그런 열정이 사라지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안 되면 울고 펄펄뛰고 살아 있어야 하는데 '안 되면 할 수 없지'라는 생각이 들까봐 두렵다"는 것이다.

 두 가지 작업을 동시에 못한다는 김혜자는 "작품이 주는 영향을 생각해서 고른다"고 했다. "내 역을 통해서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이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가져갔으면 한다. 내가 죽는 역이라도 못되게 구는 역이라도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작품을 보면서 저기서 빛이 들어오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면 한다."

 극단 미추의 창단 멤버로 한국뮤지컬대상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송용태가 서진을 맡아 30여년 만에 연극 무대로 복귀한다. 탤런트 임동진의 딸이자 배우로 활동 중인 임예원이 딸 고은을 맡아 연극 무대로 데뷔한다.

 11월4일부터 12월20일까지 이화여고100주년기념관 화암홀. 러닝타임 100분(인터미션 없음). 3만5000~5만원. 조은컴퍼니. 02-922-7200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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