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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후]"알바비 입급할테니 체크카드·비번 주세요"…알고 보니 '대포통장' 유통

등록 2015-10-31 11:45:03   최종수정 2016-12-28 15: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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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카드만 있으면 계좌번호 확인 가능해  계좌 명의자도 피의자로 분류

【서울=뉴시스】최성욱 기자 = 강릉에 사는 대학생 이모(20)씨는 지난 7월에 교차로 신문을 보다 '전자담배 조립 알바'를 발견했다. 돈벌이가 쏠쏠할 것으로 생각해 서슴없이 신문에 나온 070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연결되자 상대방은 친절한 목소리로 "조립품을 보내주면 물건만 받고 도망가는 친구들이 있다. 체크카드와 비밀번호를 적어 보내면 알바비를 입금해 일이 끝나면 다시 돌려보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일감은 오지 않았다. 이씨는 몇 번이나 전화했지만 그 때마다 "조금만 기다려라 곧 (일감을)보내겠다"는 말을 듣고 한참을 기다렸다. 그러다 이씨는 은행을 갔다가 지급정지 신청으로 계좌 거래가 중단된 사실을 알았다. 예금액은 얼마 안 됐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경찰에 신고를 했고, 그제서야 본인 계좌가 대포통장으로 유통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사이 보이스피싱 조직은 이씨 통장으로 다른 피해자에게 사기친 대금을 송금받아 인출했다. 일명 '장집'이라고 불리는 (통)장업자들에게 속은 사례다. 돈을 송금하거나 계좌에서 돈을 빼가는 것과는 또 다른 보이스피싱 피해 사례다.

 경찰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조직으로 계좌가 흘러들어가기 전에 일명 '장집'이라고 불리는 (통)장업자들이 이런 방식으로 계좌를 모아 건당 40~50만원을 받고 통장모집책에 넘기는데, 여기에 속은 것"이라며 "요즘은 체크카드만 있으면 금융자동화기기(ATM)에서 계좌번호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통장은 필요없다"고 설명했다.

 국내에 단속이 강화되면서 몇년 전부터는 해외에 콜센터를 차려 놓고 국내로 전화를 걸어 돈을 빼가는 보이스피싱 범죄가 늘고 있다.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의 근거지는 중국에서 시작해 최근에는 필리핀, 베트남 등지로 퍼져나가고 있다. 날로 진화하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범행 수법과 함께 경찰의 대응도 강화되고 있다.

 하지만 보이스피싱을 검거했다는 소식만큼이나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피해도 끊이질 않고 있다. 날로 그 수법이 다양화되고 진화해 이제는 멀쩡한 젊은이들까지도 속아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 이면에는 대포통장이 존재한다. 이들이 범죄수익금을 대포통장을 통해 인출한 뒤 환전해 해외로 빼돌리기 때문에 조직을 소탕하고도  범죄수익금을 환수하기 어렵다.

 최근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보이스피싱 조직과 공모해 전문적으로 대포통장을 배송해온 대포통장 전문배송업체 대표 염모(39)씨와 중국 통장모집 총책 중국인 오모(34·여)씨 등 4명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하고, 환전업자 이모(43)씨 등 8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지난 2013년 5월경부터 대포통장 배송 전문 퀵서비스 업체를 운영해온 염씨는 통장모집 총책 오씨 등 보이스피싱 조직과 공모해 전문적으로 대포통장을 배송해왔다. 전국에서 불법으로 수집한 대포통장을 고속버스 화물을 이용해 터미널로 모은 뒤 퀵서비스를 이용해 통장모집책이나 지하철 보관함에 맡기는 방식으로 거래했다.

 이를 통해 보이스피싱 업체는 33억원을 해외로 빼돌릴 수 있었다. 피해자들은 '취직하려면 통장이 필요하다', '저리로 대출해 주겠다'는 말에 속은 대학생, 직장인 등 920명에 달했다. 이번 사건에서 이들이 거래한 대포통장이 300개 이상 확인됐고,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이미 신원이 확보된 계좌명의자는 대부분 벌금 등의 처벌을 받았다.

 대포통장은 대포차, 대포폰과 함께 범죄에 악용되는 3대악(惡)으로 꼽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유통된 대포통장은 4만여건에 달한다. 대부분이 이씨 같은 경우다. 보이스피싱 범죄 초창기 급전이 필요해 스스로 파는 경우가 흔했지만 이제 고의성을 갖고 자신의 통장을 보이스피싱 조직에 넘기는 사례는 거의 없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계좌명의자는 피해자라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수사기관에서는 피의자로 분류된다.

 경찰 관계자는 "계좌명의자들 중에는 학생, 고령자가 상당수이지만 계좌를 타인에게 넘기는 행위도 또 다른 범죄로 인식해 스스로 주의해야 한다"며 "인터넷 구직사이트를 통해 부업, 자택알바 등을 구하면서 전화로 이력서와 함께 체크카드를 함께 보내라고 하면 100% 보이스피싱이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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