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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시 읽기' 어렵지 않아요…'시를 잊은 그대에게' 외 2권

등록 2015-11-30 07:00:00   최종수정 2016-12-28 15:5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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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윤시내 기자 = ‘시(詩)’라고 하면 “어렵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은유적이고 함축적이다 보니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고, 소설처럼 기승전결이 있는 것도 아니라 지루하다’는 선입견 탓이다. 그래서 학창시절 어쭙잖게 배운 이후로 시를 아예 놓은 사람도 많다.

 최근 이런 고정관념에 반기를 들어, 자신을 ‘시 팔이’라고 칭하며 ‘쉬운 시’를 전파하는 하상욱 시인이 인기를 끄는 등 변화의 조짐이 있긴 하다. 하지만 여전히 현대문학으로서의 시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시를 모르는 사람도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새로운 ‘시 읽기’를 제시하는 책들을 모았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정재찬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300쪽/ 1만5000원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노래’ 중)

 등단 후 10여 년간 절필했던 시인 신경림이 1973년 발표한 이 시는 중학교 교과서에 수록돼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가 이 시에 관해 기억하는 것은 “주제는 ‘따뜻한 인간애’ 또는 ‘인간적 진실의 따뜻함과 아름다움’”, “‘청각의 시각화’가 시험문제로 자주 출제됨” 등 국어 수업시간에 달달 외웠던 내용이다.

 하지만 이 시를 찬찬히 다시 읽으면 새로운 것들이 보인다. ‘가난’ 때문에 사랑을 버려야 하는 한 연인의 애처로움과 안타까움이 담겼다. 이 책의 저자인 정재찬 교수는 ‘자조적 분노’까지 느낀다고 말한다.

 “영화 ‘시월애’(2000)에서 ‘은주’(전지현)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에겐 숨길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는데, 바로 기침과 가난과 사랑이라고. … 그렇다면 ‘가난’한 ‘사랑’의 운명은 어찌될 것인가. 가난도 못 숨기고 사랑도 못 숨긴다. 그런데 가난도 못 참고 사랑도 못 참는다. 그런데 가난을 못 숨기기 때문에 사랑을 참아야 한다. 사랑을 못 숨기기 때문에 가난 따위야 참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을 숨길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사랑마저 버려야 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건 너무 분하고 슬프다.”(29쪽)

 그래서 저자는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라는 시 구절 뒤에 욕설 하나를 슬쩍 붙여서 읽어 보기도 한다”고 고백한다. “아무리 보아도 이 시의 초점은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든 이 현실을 향한 것으로 보아야 옳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이 책은 우리의 통념을 벗어난 시 읽기 방법을 알려준다. 저자가 이공계 학생에게 강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집필했다. 문학과 거리가 있는 공대생을 대상으로 한 만큼, 시 읽기가 낯선 일반인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시 46편을 영화, 소설, 대중가요, 그림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들을 동원해 색다른 시각으로 본다.

 영화 ‘라디오스타’(2006)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밤’을 통해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읽고,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가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1987)·‘편지’(1997)·‘8월의 크리스마스’(1998)의 공통점이라고 말하며 신승훈의 노래 ‘보이지 않는 사랑’과 연관 짓는 식이다. 또 시인 개인의 삶이 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뒷이야기도 다룬다.

 물론 이 책이 알려주는 방법이 꼭 정답은 아니다. 하지만 기존의 시 교육에 ‘딴지’를 거는 시도를 계속하다 보면 자신만의 시 읽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이 시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면 “유행하는 가수만 아는 것이 아니라 시를 가지고 대화하는 것이 오글거리지 않고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사회가 되면 좋겠다”는 저자의 꿈이 언젠가는 실현될 수 있지 않을까.

◇우물에서 하늘 보기…황현산 지음/ 삼인 펴냄/ 272쪽/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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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이 세상을 낯선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갑자기 낯선 것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위해 예술이 있다.”(131쪽)

 평론가 황현산이 지난해 일간지에 연재한 시와 관련한 글 27개를 모아 시화집을 출간했다. 시를 통해 우리의 세상살이를 바라본 글들이다. 우물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이 좁고 편협하다면, 그가 시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넓고 여유로우며 다양하되 처연하다.

 책에는 이육사를 필두로 한용운, 윤극영, 서정주, 백석, 유치환, 김종삼, 김수영, 보들레르, 진이정, 최승자 등의 시편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그뿐만 아니라 영화 ‘베티블루’ ‘동사서독’, ‘임을 위한 행진곡’ ‘클레멘타인’ 같은 노래, 이중섭의 그림 ‘길 떠나는 가족’ 등 장르를 불문한 다양한 예술작품을 시와 엮어 우리네 인생을 이야기한다.

 지난해 우리를 침통에 빠트린 세월호의 비극을 바라본 당시의 참담한 시선도 그대로 담겨 있다.

 “언어의 무능함과 마음의 무능함이 대낮에 두 눈을 뜨고 그 수많은 생명들을 잃어버린 한 나라의 무능함과 같다. 잘 가라, 아니 잘 가지 말라. 이렇게 쓰는 만사가 참으로 무능하다.”(111~112쪽)

 경악하고 울분을 토했지만, 결국엔 그저 위로의 손길을 건넬 수밖에 없는 원로 문학자의 비통한 심경이 느껴진다.

 그는 “시는 늘 우리에게 이 세상의 시간이 아닌 것 같은 다른 시간을 경험하게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시가 가진 힘이다. 그래서 그가 시로 바라본 세상은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언어로 세운 집…이어령 지음/ 아르테 펴냄/ 392쪽/ 1만8000원

 우리는 꽤 많은 시를 배우고 익혔다. 하지만 과연 그 시를 제대로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전 문화부 장관이자 문학비평계 거목인 이어령 교수가 1996년 일간지에 10개월간 연재한 ‘다시 읽는 한국시’를 다듬어 20년 만에 책으로 냈다. 저자의 완벽주의적인 고집에 신문사의 기록과 사람들의 희미한 기억 속에만 전설로 남은 글이다.

 김소월의 ‘진달래꽃’, 박목월의 ‘나그네’, 이육사의 ‘청포도’, 이상의 ‘오감도’ 등 이어령이 직접 읽고 선정한 한국인의 애송시 32편이 담겼다.

 이 책은 그저 시에 대한 주관적 감상평을 나열한 해설서가 아니다. 시의 시대적 배경이나 시인의 전기적 배경에 치우쳐 시를 외우기만 한 사람들에게 시어 하나하나의 깊은 의미를 일깨운다. 문학 텍스트 속에 숨겨진 상징을 기호학으로 분석함으로써 일상의 평범한 언어에 감춰진 시의 아름다움을 파헤친다. 시를 읽어도 시를 모르는 ‘시맹(詩盲)’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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