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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2만명 시대①]공급 과잉에 경쟁 심화

등록 2015-11-26 06:00:00   최종수정 2016-12-28 15:5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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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신정원 기자 =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동네잔치가 벌어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 그 자체였다. 소수가 강력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던 그 시절, 법조인이 된다는 것은 부와 명예, 권력을 한꺼번에 거머쥐는 특권층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변호사 2만 명 시대에 들어서면서 이 공식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2004년 이후 사시 선발 인원이 매년 1000명을 넘어선 데다 2012년 로스쿨 출신 변호사시험 합격자까지 가세하면서 변호사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변호사 수 증가는 국민에게 '합리적인 가격'에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시도였다. 하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급증하면서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았다.

 특히 변호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사무실 임대료조차 내지 못하는 변호사가 생겨났다. 공익성과 윤리성을 지향하던 '선비' 변호사는 사건을 하나라도 더 수임하기 위해 품위를 저버리는 '상인' 변호사로 변질하고 있다. '덤핑 수임' 등 출혈 경쟁, 낮아진 수임료는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지는 실정이다. 일각에선 변호사 시장 '포화'를 운운하며 '레드 오션'을 넘어 '데드 오션'이 됐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당분간 해마다 변호사 1500여 명이 새로 시장에 유입될 전망이다. 변호사 수를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대체로 공감하지만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채 비대해지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혹독한 과도기를 겪고 있는 변호사 시장의 현재를 짚어본다.

 ◇1만 명까지 102년…2만 명 돌파엔 불과 7년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에 등록된 변호사는 2011년 1만2607명, 2012년 1만4534명, 2013년 1만6604명, 지난해 1만8708명, 올해 10월31일 현재 2만133명으로 해마다 증가 추세다.

 국내 변호사는 1906년 3명에서 시작해 점차 늘어났다. 수십 년간 두 자릿수에 그쳤던 법조인 선발 인원은 1981년 본격적으로 세 자릿수로 확대됐고, 한동안 300명 안팎을 유지했다. 이후 1999년 500명대(529명)에서 매년 100여 명씩 추가됐고, 2004년부턴 1000명 남짓한 법조인력이 배출됐다.

 변호사 수가 1만 명을 넘어선 것은 2008년이다. 3명에서 1만 명까지 늘어나는데 102년이 걸렸다. 그러다 다시 7년 만에 2만 명을 돌파했다. 여기엔 2009년 도입된 로스쿨 출신 변호사시험 합격자가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배출된 것도 한몫한다.

 변호사 수 확대는 '수요자 중심 법률서비스'라는 고민에서 출발한다. 국민이 '합리적인 가격'에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혹자는 변호사가 공인중개사만큼 늘어나 국민에게 더욱 친근한 존재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업계에선 변호사 시장이 사실상 '포화상태'라고 말한다. 수요는 늘지 않았는데 공급이 급증하면서 생존을 위협받는 변호사까지 등장했다는 주장이다. 일부 고위 판·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가 '도장 값'으로 억대 수임료를 받는 것과 달리 나머지 대부분의 변호사는 사건 수임은 물론 수임료를 챙기는 것마저 예전 같지 않다고 항변한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휴·폐업하는 변호사가 늘어나는 것은 변호사들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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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임 건수 월평균 1.9건…단독·소액 증가는 '긍정'

 서울변호사협회(서울변회)에 따르면, 변호사 1인당 연평균 수임 건수는 1997년~2000년 50건에서 40건대로 내려갔다. 이는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다 2011~2013년 30건에서 20건대로 떨어졌다. 변호사 한 명당 매월 사건 1.9건을 수임하는 셈이다.

 수임료도 낮아졌다. 변호사업계 관계자는 "불구속 사건의 경우 건당 500만원 정도 하던 것이 200만~300만원, 적게는 100만원 정도로 낮아졌다"고 전했다.

 긍정적인 변화도 있다. 과거 낮은 수임료 때문에 변호사들이 기피했던 단독·소액 사건 선임률이 높아진 것이다. 단독 사건의 경우 30%대에서 2006년 52.7%까지 늘었다가 완만하게 줄었는데 2010년 이후엔 40%대를 유지하고 있다. 10% 미만이던 소액 사건 역시 2006년 31.1%를 찍은 뒤 2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변환봉(사법연수원 36기) 서울변회 총무이사는 "예전에는 변호사의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단독 사건과 소액 사건의 선임 건수와 선임비율이 완만하게 증가한 것은 긍정적인 측면"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다만 선임 건수가 줄었는데도 단독·소액 사건 건수가 증가한 것은 변호사들의 재정 악화를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변 변호사는 "변호사 1인당 평균 수임 건수가 지속해서 낮아지고 있는 가운데 단독·소액 사건이 주를 이룬다면 이는 곧 변호사 업무의 재정 구조가 악화하고 있다는 뜻"이라며 "당장 생계유지에 급급한 변호사들이 많아지면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변호사 수는 꾸준히 늘어날 전망이다. 사법시험은 2017년 폐지되지만, 변호사시험을 통해 매년 1500여 명의 법조인이 배출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민(연수원 36기) 대한변협 기획이사는 "매년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1500명, 변호사 은퇴 시점을 75세로 가정하면 변호사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2050년 7만2952명이 되고, 2072년 8만6419명 수준에서 안정될 것으로 예측된다"며 "사법시험이 예정대로 폐지된다면 사시 출신 변호사는 2056년까지 활동하다 은퇴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실질 국내총생산(GDP)과 변호사업 총매출액과의 연관성을 토대로 산정해 보면 변호사 1인당 연간 순수익은 지난해 4344만원에서 2050년 1521만원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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