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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2만명 시대③]변호사시험 변천사…3명에서 2만명까지

등록 2015-11-26 06:00:00   최종수정 2016-12-28 15:5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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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신정원 기자 = 국내 최초 변호사법은 1905년 11월8일(광무 9년) 대한제국 법률 제5호로 공포된 '광무변호사법'이다. '율사''대언인'을 넘어 법률 전문직인 '변호사' 제도가 만들어진 것도 이때부터다.

 광무변호사법은 변호사가 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호사시험에 합격하거나 변호사시험위원을 겸한 자, 평리원(현 고등법원)이나 한성재판소에서 만 2년 이상 판·검사로 재직한 자로 한정했는데 이듬해 변호사 등록을 한 홍재기, 이면우, 정명섭 등 3명이 국내 변호사 1, 2, 3호로 기록되고 있다.

 변호사시험이 처음 치러진 것은 2년이 지난 1907년(광무11년) 6월24일이다. 대한제국 법부가 실시한 첫 시험에서 이항종, 장택환, 허헌, 옥동규, 계명기, 이종성 등 합격자 6명이 배출됐다.

 1945년 8월15일 해방 직후부터 1948년 5월25일까지 18차례에 걸쳐 미국인 259명, 한국인 66명에게 변호사 자격이 주어진다. 이어 1947년 3월29일엔 사법부령 제3호로 '조선변호사시험령'이 공포됐고, 그해 10월 제1회 시험이 시행됐다.

 법조인 선발 시험과 인원은 시대에 따라 계속 변해왔다.

 1895년부터 1908년까지는 법관양성소에서 법조인을 양성했다. 그러다 1907년~1908년 대한제국변호사시험, 1909년 대한제국 사법시험이 공식적으로 치러진다. 해방 이후인 1947년부터 3년 동안은 조선변호사시험, 1949년~1963년은 고등고시 사법과가 시행된다.

 지금의 사법시험은 1963년부터 시행돼 올해로 57번째 치러졌다. 법관양성소, 대한제국변호사시험, 대한제국 사법시험을 통해 선발된 인원은 모두 227명이다. 이후 조선변호사시험과 고등고시 사법과를 통해 매년 평균 수십 명씩 선발했다.

 사법시험 선발 인원은 1980년까지 매년 100명이 채 되지 않는다(1970년 제외, 이하 사법연수원 수료 기준). 1981년부터 3년 동안은 100명대, 이후엔 300명 안팎이 배출됐다.
 
 법조인의 양적 확대는 '수요자 중심 법률서비스'를 고민하던 문민정부 때 본격화한다. 문민정부 '세계화추진위원회'는 사시 선발 인원을 500명으로 늘렸고, 국민의 정부에선 1000명으로 확대했다. 이로써 1999년 529명을 시작으로 매년 100여 명씩 늘어났고, 2004년부턴 매년(2006, 2009, 2012, 2013년 제외) 1000명이 넘는 인원이 배출됐다.

 그러다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도입됐고 2012년 첫번째 변호사시험이 실시됐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된 변호사 수는 올 10월 현재 2만133명이다. 변호사 2만 명 시대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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