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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표현의 자유, 안녕하십니까②]외신도 검열…"Really?"

등록 2015-12-17 06:00:00   최종수정 2016-12-28 16: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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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신정원 기자 =  “한국, 독재자의 딸이 노동자를 탄압하다(In South Korea, a Dictator's Daughter Cracks Down on Labor)”

 최근 미국 주간지 ‘더 네이션’에 실린 기사가 한반도를 강타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제1차 민중총궐기를 다룬 이 기사는 “박근혜 대통령이 독재자였던 아버지(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를 닮아간다”며 정부의 과잉진압을 비판한 내용이다.

 애초 외국 군소 언론사의 ‘치기 어린’ 보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정부가 외교부를 통해 해당 언론사에 항의하면서 파장을 키웠다.

 그러잖아도 박근혜 대통령이 시위대를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에 비유한 것에 대한 비판과 한국의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는 외신 보도가 잇따르던 때였다. 일각에선 정부가 국제적 망신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외신 “韓 정부, 시위대 탄압” 잇달아 보도

 민중총궐기에 대한 외국 언론의 관심은 뜨거웠다. 국내 언론이 주로 시위대의 폭력시위와 경찰의 과잉진압을 나란히 배치해 보도한 것과 달리 외신은 물대포와 최루액, 농민 백남기씨의 부상 소식을 집중적으로 전했다.

 미국 UPI 통신은 “한국에서 몇 년 만에 13만 명이나 모이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며 “18년간 독재한 박정희 대통령의 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반대 시위다”고 했다. 캐나다 CTV 뉴스는 “경찰이 시민에게 최루액과 물대포를 난사했다. 69세 농민 백모씨가 물대포를 직사로 맞고 응급실로 긴급 후송됐으며 중태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백씨에 대해 자세히 전했다. 특히 “경찰이 백씨를 구조하려는 다른 시위대에게도 계속 물대포를 쐈는데 당시 백씨는 응급수술이 어려울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에 대해선 “1960년대와 1970년대 한국을 통치했고 성공적인 경제 전략가, 혹독한 억압으로 얼룩진 군부독재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고 적었다.

 뉴욕타임스는 이례적으로 박 대통령 비판 기사와 사설, 반론보도문을 연달아 내보냈다. 총궐기 당일 집회 분위기를 보도한 데 이어 닷새 뒤엔 ‘한국 정부, 비판자들을 겨냥하다(South Korea targets dissent)’ 제하의 사설을 통해 “한국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려고 하는 것이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23일 자에서는 ‘한국 정부의 끔찍한 실수, 한국 국민 반기들고 일어나야’라는 제목의 구세웅 예일대 한국학 연구원 강사의 기고문에 달린 댓글을 소개하기도 했다.

 외국 유력 언론들은 지난 5일 제2차 총궐기에 대해서도 복면금지법에 반발한 시위대가 각양각색의 복면을 쓰고 거리로 나섰다고 타전했다.

 ◇복면금지-교과서 국정화, “Really?”

 이런 가운데 박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국무회의에서 복면금지의 필요성을 피력하며 “"복면시위는 못 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IS도 그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얼굴을 감추고서”라고 발언해 한국의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는 외신 보도에 기름을 끼얹었다.

 알라스테어 게일 월스트리트저널(WSJ) 서울지국장은 자신의 트위터에 ‘한국 대통령이 자국 시위대를 IS에 비교했다. 정말로.’(South Korea's President compares local protestors in masks to ISIS. Really)라는 글을 올렸다.

 게일 지국장이 마지막에 붙인 단어 ‘Really’가 주는 울림은 깊었다. 도저히 믿기 힘든 상황이 현실로 드러났다는 의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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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공영방송 BBC도 ‘한국은 왜 역사교과서를 고쳐 쓰는가(Why South Korea is rewriting its history books)’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역사란 국가에 충성하도록 만드는 도구인가, 아니면 그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비판적 시민을 양산하기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의 움직임이 일제시대 일본군의 만행을 외면하려는 일본 보수파와 비슷하다”고 비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한국의 한 가게에 박 대통령을 풍자한 포스터가 붙어있다는 이유로 경찰들이 대거 출동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하기도 했다.

 ◇“韓정부 항의, 우호적 기사 쓰라는 위협”

 박 대통령을 독재자의 딸이라고 지칭한 더네이션의 팀 샤록 기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미국이 개입한 사실을 폭로한 미국 탐사전문 기자다. 미 정부가 전두환 정권의 12·12 군사반란을 묵인·방조했던 사실과 광주 민주화운동 때 광주로의 군 이동을 승인했다는 내용이다. 1996년 미국 국무부 비밀 해제 문건인 이른바 ‘체로키(Cherokee) 파일’을 입수해 보도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5월엔 광주명예시민증을 받았다.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지켜본 그는 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행동은 1961~1979년 철권통치를 했던 그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기억을 되살렸다”고 밝혔다. 또 “박정희 정권은 노동환경 개선 및 최저임금을 위해 싸운 학생·노동자를 야만적으로 탄압했다. 박근혜 정권의 노조 탄압도 세계 각국 노동운동가들의 공분을 샀다”며 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을 비판했다.

 더네이션 측은 기사가 나간 뒤 한국뉴욕총영사관 관계자에게 수차례 항의 전화와 e-메일을 받았다. 샤록 기자는 “사실관계가 틀렸다거나 수정을 요구하지 않은 채 ‘한국이 지난 40년 동안 엄청난 발전을 이뤘다’는 말을 반복했다”며 “만일 내가 한국에서 조그만 잡지에 기사를 썼는데 미국 정부가 편집장에게 전화를 걸어 불평하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나. 언론사를 겁주기 위한 조잡한 시도였던 것 같다”고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뉴욕타임스에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기고문을 실었던 구씨 역시 외교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며 “국내 표현의 자유 상황에 대한 음울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토로했다.

 한국 정부가 외신의 비판적인 보도에 항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국 정부는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의 부재에 대해 ‘7시간 의혹’을 제기한 산케이 신문 기자를 고소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로 인해 일본은 외무성 홈페이지에 올린 ‘한국은 자유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이란 글에서 ‘가치 공유’ 부분을 뺐고 아베 신조 총리는 지난 한·일 정상회담 때 산케이 신문에 대해 언급했다.

 이즈음 한국 정부를 비판한 독일 유력 언론사(Zeit) 기자에게 한국 외교관이 새벽에 전화해 “제목을 바꿔달라”고 항의한 사건도 있었다.

 언론계 관계자는 “정부의 과잉대응은 국내를 넘어 외국 언론까지 통제하려 한 부끄러운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며 “이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언론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로 대한민국 국격을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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