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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미래다③]'학교폭력' 가해자서 파수꾼으로

등록 2015-12-29 09:33:54   최종수정 2016-12-28 16: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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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이 '듣고 싶은 말'과 '듣기 싫은 말' (사진=광주 시영종합사회복지관 제공)
【서울=뉴시스】오동현 기자 = "장난이라는 생각으로 친구를 때리고는 했어요. 그런데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그것이 폭력인 것을 알았어요. 친구가 나로 인해 상처받았다는 것도 깨달았고요."

 재현(가명·16)이는 광주 시영종합사회복지관이 실시하는 '학교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가해·피해 학생 역량 강화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처음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당시만 해도 재현이는 어른들에 대한 불신이 상당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은 사회복지사들도 컨트롤하기 어려웠다.

 재현이가 바뀔 수 있었던 것은 프로그램을 지도하던 사회복지사들이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준 덕이다. 도망가면 잡아오고, 딴짓하면 같이 하자고 했다. 반항적인 말투로 대답하면 지금 기분이 어떤지 물어보고, 말하기 싫다고 하면 말하고 싶을 때 알려달라고 했다.

 1년 가까이 그렇게 하자 재현이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둘 털어놓기 시작했다. 재현이는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인해 상당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자살 징후까지 나타나 시설에 격리된 적도 있었다.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며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게 된 재현이는 아버지의 가정폭력과 자신의 행동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때부터 학교폭력 파수꾼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반 친구들이 한 아이를 괴롭히는 것을 보게 됐어요. 당하는 아이는 겁에 질려 있었고, 반 친구들은 웃고 있더라고요. 예전의 제 모습이 떠올라 말리게 됐습니다."

 재현이는 프로그램이 종료한 뒤에도 종종 복지관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며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재현이를 지도한 김진태 사회복지사는 "보통 가정폭력을 겪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가해자가 되는 경향이 있다"며 "가해 학생들은 자신의 행동이 피해 학생들에게 어떤 상처가 될지 모른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현이는) 처음에는 '고맙다' '감사하다' 같은 말을 하지 않았을 정도로 어른들에 대해 적개심이 강한 아이였는데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많이 바뀌었다. 한 번은 내가 5분 정도 늦었는데, '왜 이제 왔느냐?' '기다렸다'는 말도 하더라"며 흡족해했다.

 ◇끊어지지 않는 학교폭력의 고리

 교육부가 전국 초등학교 4학년~고등학교 2학년생 390만명을 대상으로 올 3~9월 '2015년도 2차 학교 폭력 실태'를 조사한 결과, 3만4000명(0.9%)이 "학교 폭력 피해를 본 적 있다"고 응답했다.

 학교급별로는 초등학생 1만9000명(1.4%), 중학생 1만명(0.7%), 고등학생 5000명(0.5%) 순으로 초등학생 피해가 심각했다.

 피해 유형별로는 언어 폭력이 35.3%로 가장 많았다. 이어 집단 따돌림(16.9%), 신체 폭행(11.8%), 스토킹(11.0%), 사이버 괴롭힘(9.7%), 금품 갈취(7.1%), 강제 추행(4.3%), 강제 심부름(4.0%) 순이었다.

 가해자는 같은 학교·같은 학년이 71.4%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다음으로는 같은 학교·다른 학년 (7.8%), 모르는 사람(7.5%), 다른 학교 학생(3.0%), 학교에 다니지 않는 또래(1.8%)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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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광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으로 시영종합사회복지관이 실시하는 '학교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가해·피해 학생 역량 강화 프로그램'에 참가한 아이들. (사진=광주 시영종합사회복지관 제공)
 문제는 상당수 학생이 학교 폭력을 당하고도 아무런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 지난해 초등학교 4학년∼고등학교 2학년생 6153명을 대상으로 벌인 '2013년 전국 학교 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10명 중 5명(49.2%)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특히 학교 폭력을 목격한 학생 중 절반 이상(52.6%)은 '모른 척했다'고 응답했다.

 학교 폭력이 사회 문제로 대두한 이후 정부가 관련 대책을 쏟아내고 있으나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피해 학생은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기보다 상황을 피할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더욱이 가해 학생 중에는 과거 피해 학생이었던 경우가 적지 않다. 학교폭력 피해자에서 벗어나려고 가해자 무리에 합류, 자신보다 약한 학생을 괴롭히는 경우도 허다하다. 학교 폭력의 고리가 쉽게 끊어지지 않는 이유다.

 ◇우리 아이가 학교 폭력 피해자라면?

 만약 자녀가 학교 폭력을 당하고 있다면 가장 먼저 학교에 전화해 자녀 보호를 요청해야 한다. 이후 학교에 객관적인 조사를 요구해야 한다.

 학교 차원의 학교 폭력 사건 처리 기구는 피해 학생 보호 조치 및 가해 학생에 대한 선도·징계 조치를 결정하고, 분쟁 조정을 담당하는 '학교 폭력 대책 자치 위원회'와 학교 폭력 실태조사와 예방 프로그램을 구성·실시하는 '학교 폭력 전담기구'가 있다.

 폭행 등 물리적인 가해 행위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강제적인 심부름을 요구하거나 따돌림 행위가 발생하는 경우도 학교 폭력에 해당한다. '학교 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의해 징계 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  

 학교 폭력을 담당하는 외부 전문기관으로는 학교 폭력 사안을 종합적으로 접수·신고받아 처리하는 '117 학교 폭력 신고센터', 경미한 사안에 대해 피해 학생 상담과 조사를 수행하는 '학교 폭력 원스톱 지원센터'가 있다. 

 각 시·도 교육청 산하에는 지역 내 학교 폭력 예방대책 수립 및 상담기관 지정 등 업무를 수행하는 '학교 폭력 대책 지역 위원회'를 두고 있으며, 해당 시·군·구 교육청의 청소년 보호업무 담당관 및 지역의회 의원, 경찰, 교사 등이 참여해 기관별 업무협력을 추진하는 '학교 폭력 대책 지역 협의회'가 있다.

 우지완 경찰청 청소년계장은 "자녀가 대화를 피하거나 갑자기 안 하던 행동을 할 경우 학교폭력을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117 학교폭력 신고센터'와 스마트폰 앱 '117챗' 등을 통해 상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 계장은 "이후 학교폭력 사실이 밝혀지면 학교 전담 경찰관과 직접 상담해 적극적으로 상황을 해결하는 것만이 피해 학생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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