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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어서는 사람들⑤]'심장이식' 성악가 임해철의 희망노래

등록 2016-01-01 06:00:00   최종수정 2016-12-28 16: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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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심장이식 수술을 받고 제2의 삶을 사는 성악가 임해철(59)씨. <사진=서울아산병원 제공>
[편집자 주] 2016년 병신(丙申)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뉴시스는 신년 기획으로 역경을 딛고 일어선, 우리 사회의 진정한 ‘위인’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들은 TV 드라마 주인공처럼 나락을 벗어나 장엄하게 부활하지도, 화려하게 복귀하지도 않았습니다. 아직 신발 끈을 동여매고 있는 이도 있고, 이제 간신히 첫걸음을 뗀 이도 있습니다.

 억대 연봉자(2014년 소득 기준)가 52만6000명이라는는 지난해 12월30일 국세청 발표에서 여실히 드러났듯 성공한 사람, 업적을 쌓은 인물이 수두룩한 우리 사회에서 낙오됐던 그들이 뜻을 이룰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뉴시스는 절망 속에서 움트는 희망이야말로 소중하고, 숭고하다고 믿기에 과감히 지면을 할애하려 합니다. 그들의 가쁜 숨소리, 진한 땀내 속으로 들어가 보시죠. 

【서울=뉴시스】오동현 기자 = "다시 눈을 떴을 때, 제 두 번째 삶이 시작됐습니다."

 성악가 임해철(59)씨는 지난 2011년 8월 서울아산병원에서 심장이식수술을 받고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그는 성악가로서 더할 나위 없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이탈리아 로마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을 졸업하고, 한국인 최초로 로마 오페라 무대에 '라보엠'으로 데뷔했다. 

 귀국해 국립오페라단, 서울시립오페라단, KBS 1TV '열린음악회' 등에서 활발한 무대 활동을 이어갔다. 서른셋 젊은 나이에 호남신학대 음악학과 교수로 부임할 만큼 촉망받았다.

 40대부터는 음악행정가로서 광주오페라단 단장, 광주국제공연예술제 부 집행위원장 등을 맡으며, 한국 음악계를 이끌었다. 그야말로 탄탄대로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병마가 찾아왔다. 지난 2009년 4월 호흡곤란으로 병원을 갔다 '확장성 심근병증'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이듬해 동료 교수들과 프로젝트를 준비하던 중 심장정지로 쓰러졌다. 응급실에서 100여 차례 전기충격을 받고 나서야 겨우 죽을 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그의 심장 상태는 건강한 사람의 25%에 불과했다.

 심장 이식만이 살 길이었다. 얼마 뒤 교단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기는커녕 계단을 오르기조차 힘들어지자 결국 심장 이식 대기자로 등록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은 또 다른 고통이었다. 심장을 이식받으려면 기증자와 혈액형뿐만 아니라 몸무게도 비슷해야 한다. 그는 보통의 성악가처럼 덩치가 컸기 때문에 몸에 꼭 맞는 뇌사 기증자가 나타날지 미지수였다.

 한 번은 기증자의 심장 상태가 나빠져 수술실 문 앞에서 수술이 취소되는 일도 있었다. 게다가 수술을 받더라도 그 과정에서 성대를 다칠 경우 다시 노래를 부를 수 없을 것이라는 걱정에 머릿속은 늘 복잡했다.

 그를 지탱해준 건 주치의인 김재중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였다. 그의 궁금증을 일일이 풀어주고, 이식을 받으면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줬다. 서울아산병원이 국내 심장 이식의 60~70%를 책임진 병원이란 점도 큰 위안이 됐다.

 임씨는 "심장 이식을 하겠다고 결정했지만 '오늘일까' '내일일까'하며 기다리는 과정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의료진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설명, 특히 심장 수술을 받고 건강해진 사람들의 경험담이 큰 힘이 됐다"고 회상했다.

 2011년 8월 4일 저녁, 드디어 뇌사 기증자가 나타났다는 고마운 소식이 들려왔다. 임씨가 심장 이식 대기자로 등록한 지 6개월 만이었다.

 그날 밤 수술실에 들어간 그는 다음날 점심 무렵에서야 회복실로 돌아왔다. 무려 13시간에 걸친 대수술이었다. 윤태진 심장외과 교수팀이 집도했고, 성공적이었다.

 수술 당시 의료진에 따르면 임씨는 자신의 기도에 관을 삽입하려 하자 "저는 성악가입니다. 성대를 조금만 다쳐도 다시 무대에 설 수 없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마취에서 깨어난 그의 목소리는 예전만 못했다. 이전에 낼 수 있던 소리에 한참 못 미쳤다. 결국 그는 불안한 마음에 이비인후과 협진을 요청했다.

 다행히 진료를 본 의사는 6개월 정도 지나면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고, 한 달 정도 지나자 목소리가 조금씩 돌아왔다.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하면서 마지막 남은 불안감마저 사그라졌다.

 그리고 수술 100일 만에 다시 무대에 섰다. 객석 바닥부터 쌓이는 목소리가 무대 전체에 울려 퍼지자 다시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걱정했던 그도, 관객도 울음을 터뜨렸다.

 임씨는 "로마 오페라 데뷔 무대보다 강렬했다"면서 "다시 무대를 선다고 하는 건 꿈이었다. 그때 감격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의 메인 무대는 더는 화려한 오페라가 아니다. 그동안 찾지 않았던 병원, 교도소, 복지시설 등이 새로운 무대다. 지난 4월에는 '관상동맥 중재 시술 국제학술회의' 20주년을 맞아 심장 환자와 가족들 1000여 명 앞에서 노래로 희망을 전했다.

 최근에는 첫 독집 음반 '아모르'를 냈다. 건강했을 때는 더 완숙해지면 녹음하리라 미루던 일이었다. '사랑아' '초혼' '산노을' 등 우리 가곡 12곡을 담았다. 음반 수익금은 어려운 환자들을 돕는 봉사단체에 기부할 계획이다.

 그는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르려고 하면 '새 인생을 이렇게 사는구나'하는 생각에 눈물이 나온다. 특히 심장을 준 기증자와 어려운 결정을 내려준 그분 가족, 의료진에게 고마워 울컥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제게 격려를 받은 분들이 또다시 다른 분들을 격려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따뜻한 정을 나누며 사는 삶이 무척 감사하다"면서 "더불어 사는 희망의 삶을 살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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