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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의 스크리닝]언론 대신 SNS가 정의 지키는영화들(기개봉작 스포일러 있음)

등록 2016-01-02 10:45:59   최종수정 2016-12-28 16:2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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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영화 ‘내부자들’(감독 우민호)의 한 장면.
【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이제 진실의 마지막 보루는 언론이 아니라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가….”

 최근 개봉한 영화 몇 편을 보고 난 뒤 갖게 된 기자로서의 자괴감이다.

 지난해 11월25일 개봉한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감독 정기훈)에서 한 스포츠지 연예부 기자 ‘도라희’(박보영)는 대형 연예기획사의 비리를 기사화하려 하지만, 경영진의 반대에 부딪힌다.

 그러자 연예부장 ‘하재관’(정재영)과 선후배 기자들은 기사를 보도하는 대신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려 진실을 밝히려 한다.

 같은 해 11월19일 개봉해 1일까지 약 706만 명이 본 ‘내부자들’(감독 우민호)에서 유력 종합일간지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은 정치인, 재벌, 폭력배 등의 ‘검은 커넥션’을 기획한다. 그는 판을 짰다 엎었다 하면서 자신이 세운 목표에 점점 다가선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했던가. 그 일간지의 한 기자는 족보 없는 검사 ‘우장훈’(조승우)에게 스폰서 기업인을 소개해주기도 하고, 이강희의 지시를 받아 심부름센터처럼 온갖 뒷조사도 다 해준다. 그 사이에서 자신의 잇속을 챙긴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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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영화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감독 정기훈)의 한 장면.
 결국 조폭 ‘안상구’(이병헌)와 우장훈은 커넥션이 장악하고 있는 언론을 통하지 않고, SNS를 통해 결정적인 증거를 알려 정의를 바로 세우려 한다.

 두 영화에서 모두 기자와 언론사가 등장하지만, 이들은 아무런 힘이 없거나 권력 또는 금력의 시녀에 지나지 않는다. 흙수저나 을은 금수저의 하수인이자 갑의 전유물로 전락한 기자와 언론을 외면한 채 인터넷과 SNS를 통해 국민 여론에 직접 호소한다. 

 이뿐만 아니다. 기자로서 용납하기 힘들 정도로 취재 윤리를 위반하는 기자들도 여럿 등장한다.

 그해 10월22일 개봉한 ‘특종: 량첸살인기’(감독 노덕)에서 케이블 방송사 기자 ‘허무혁’(조정석)은 자신이 따낸 특종이 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도 이를 은폐하는 것은 물론 거짓 기사를 계속 만들어 보도하면서 유명세를 누린다.

 같은 날 개봉한 ‘돌연변이’(감독 권오광)에서 지상파 방송사 시용기자 ‘상원’(이천희)은 정기자를 만들어주겠다는 데스크의 유혹에 넘어가 신분을 감춘 채 제약회사의 생물학적 동등성 실험 아르바이트 피해자 ‘박구’(이광수)에게 접근, 특종을 얻어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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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영화 ‘특종: 량첸살인기’(감독 노덕)의 한 장면.
 과거 영화에서 인터넷이나 SNS는 대체로 비판적으로 그려졌다. 악플(악성 댓글), 바이러스, 해킹 등 각종 범죄의 온상이자 매개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는 무소불위 권력에 맞서려는 약자들이 유일하게 활용할 수 있는 창구로 묘사된다. 이와 달리 기자나 언론은 강자에게는 굴종하고, 특종을 위해서라면 사실 왜곡이나 거짓보도도 서슴지 않는 타락한 존재에 불과하다.

 도대체 누가, 왜, 영화에서 기자와 언론을 부정적으로 그리도록 한 것일까. 패러다임의 변화 때문일까. 기자나 언론사가 자초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언론을 길들이려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것일까.

 여하튼 한때 ‘제4의 권부(權府)’로 통하고, 1839년 영국의 정치인이자 작가인 에드워드 리턴의 소설 ‘아르망 리슐리외’에 나오는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구절로 상징되던 기자와 언론의 위상은 최소한 한국영화에서는 사라진 지 오래다.

 내가 이들 영화를 보고 나서 분기탱천해 영화를 맹비난하는 기사나 칼럼을 쓴다면 독자들은 바로 댓글로 “기레기”라고 비난을 퍼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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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영화 ‘돌연변이’(감독 권오광)의 한 장면.
 사실 나를 비롯한 많은 기자가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면서 몇 명이 읽었는지 가늠할 수조차 없는 무플보다 악플을 원한다. 최소한 내게 욕을 하는 사람만큼은 내 기사를 읽었을 것이라고 자위할 수 있어서다. 어쩌면 나는 정신 건강에 나쁘리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댓글을 읽지는 않더라도 그 수를 세며 회심의 미소를 지을지도 모른다.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에서 갖은 압력과 회유를 이겨내고 진실을 밝힌 ‘도라희’에게 누명을 썼던 한류스타 ‘우지한’(윤균상)이 찾아와 “기자님, 감사합니다”면서 정중히 인사한다.

 이 장면은 ‘돌연변이’에서 상원이 방송사 면접시험을 연습하면서 “국민의 알 권리를 대변해 진실을 알리고, 사회 부조리를 고발해 약자를 보호하는 진짜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고 여러 차례 되뇌는 장면과 오버랩되면서 나를 한편으로는 반성시키고, 한편으로는 초심을 되찾게 한다.

 악플에도 만족해온 내가 영화 속 초라한 기자 캐릭터를 만들지 않았는지 돌아보면서 최소한 2016년 기획하는 영화에서는 기자 캐릭터가 긍정적으로 묘사될 수 있도록 나 스스로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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