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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피해 아동, 부모 학대 왜 숨기나…"부모 보복 폭행 두려워"

등록 2016-01-19 14:50:39   최종수정 2016-12-28 16:2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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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찬수 기자 = 11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광장에서 열린 '계모 학대로 세상을 떠난 고 이서현 어린이 49제 추모행사'에서 유모차를 탄 어린이가 촛불을 들고 있다. 2013.12.11.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신정원 조명규 기자 = '울산 계모 의붓딸 살인 사건' 피해아동 (이)서현이는 왜 아동보호기관 상담에서 학대받은 사실을 부인했을까.

 19일 뉴시스가 단독 입수한 아동보호기관 상담일지에 따르면, 서현이는 2011년 5월 아동학대를 의심한 유치원 교사의 신고로 아동보호기관 상담원과 상담을 하게 된다.

 상담은 그해 5월13일 오후 2시57분부터 오후 3시4분까지 진행됐다. 7분여의 짧은 만남이었다.

 서현이는 당시 계모 박모씨(41)에게 머리와 등을 구타당해 등에 멍이 든 상태였다. 상담일지에도 "교사가 앞치마와 모자 정리를 시키자 예쁘게 집어서 정리함. 정리할 때 교사가 등을 보여줌. 멍 자국이 생생했음"이라고 적혀있다.

 하지만 정작 서현이는 상담원에게 자신이 학대받은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신고 전 유치원 교사에게 '등과 배가 아프다', '엄마(계모)가 때렸다'고 했지만, 상담원에게는 정반대로 말했다. 오히려 부모가 좋은 사람인 것처럼 포장했다.

 상담일지를 보면, 상담원이 '이마의 상처'에 관해 묻자 서현이는 "집에서 의자에 받혔다"고 말한다. 아팠느냐는 질문엔 "아팠다"면서 "친모(계모)가 약을 발라줬다"고 답한다. '다른 데 아픈 데는 없는지'오늘 등이나 배가 아프다고 했는데 괜찮은 지'를 물을 땐 "괜찮다"고 한다.

 서현이의 부모는 단란한 가정의 좋은 엄마, 아빠로 묘사된다.

 '무슨 음식을 좋아하느냐고 묻자 갈치를 좋아한다고 함. 친모가 아동이 좋아하는 요리를 많이 해주냐고 묻자 그렇다고 하고, 친모와 친부 중에 누가 더 좋은지 묻자 둘 다 좋다고 함. 친부는 어떤 아빠냐고 묻자 대답하지 않고, 자주 놀아주느냐고 하자 그렇다고 함. 친부가 자주 놀아주느냐고 묻자 대답하지 않았고, 누가 더 잘 놀아주느냐고 묻자 친부가 더 잘 놀아준다고 함.'

 서현이는 이어진 상담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친모는 좋은 엄마야, 아님 조금 싫은 엄마야 하고 묻자 좋은 엄마라고 하며 놀아주었다고 함. 뭐하고 노냐고 하자 놀이동산에 놀러갔다고 함. 친부랑은 뭐하고 놀았냐고 하자 아빠랑 집에서 비행기 타다가 창문에 부딪혔다고 함. 많이 아팠는지 묻자 아팠다고 함. 친부는 서울에서 이 한다고 알고 있었고 매일매일 집에 온다고 함.'

 하지만 서현이는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잦은 구타에 시달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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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뉴시스】유재형 기자 = 故 이서현 양을 추모하기 위한 49제 추모식이 11일 울산 울주군 범서읍 구영근린공원에서 열렸다.  [email protected]
 2012년엔 귀가가 늦었다는 이유로 발로 허벅지를 맞아 뼈가 부러지고, 남편과 말다툼을 한 계모가 욕실에서 뜨거운 물을 부어 2도 화상을 입기도 한다. 소풍을 보내달라고 했다가 맞아서 숨진 2013년 10월24일, 서현이는 갈비뼈 24개 중 16개가 부러지고 엉덩이는 잦은 폭행에 근육이 소멸하고 섬유질로 채워지는 '둔부조직 섬유화'가 일어났다.  

 그렇다면 서현이는 왜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했을까.

 전문가들은 학대 아동이 도움을 청할 만한 사회적 안전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구출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치가 낮고, 학대 사실을 알렸을 때 문책성 폭행이 있을 것이란 공포가 아이들의 입을 틀어막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서현이의 경우 평소 몸에 자주 멍이 들어 학대가 의심되는 상황이었고, 상담 과정에서 거짓말을 하는 등 이상한 정황이 포착됐는데도 상담원들은 '신체학대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다. 병원에서도 여러 차례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도움을 받지 못한다.

 '칠곡 계모 사건'의 경우에도 피해아동의 언니가 경찰에 학대 사실을 신고했지만, 경찰은 아동이 말을 바꾸자 부모의 협박이 있었는지 여부는 조사하지 않은 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오히려 아동들은 신고했다는 이유로 집으로 돌아가 더욱 심하게 매질을 당해야 했다.

 아동학대방지시민모임(전 하늘소풍) 공혜정 상임고문은 "부모 울타리에 있는 아동이 학대 사실을 털어놓기는 쉽지 않다"며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 것은 구출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공 대표는 "사회적으로 학대 아동 보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울산 계모, 칠곡 계모 사건은 물론 인천 아동학대, 부천 초등생 시신훼손 사건 등 아동학대 사건은 얼굴을 바꿔가며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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