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단독][종합]계모학대로 숨진 '울산 서현이' 살릴 수 있었다
【서울=뉴시스】신정원 조명규 기자 = #1. (등의) 멍 자국이 생생했음. (중략) 아동은 수박을 먹으며 묻는 질문에 자연스럽게 대답함. 친모가 친부에 대해 부정적으로 대답한 것은 전혀 없었고, (중략) 친모와 친부 중에 누가 더 좋냐고 묻자 둘 다 좋다고 함. (중략) 아동에게 꿈이 뭐냐고 묻자 대답하지 못함. (후략)(2011년 5월13일) #2. 이마에 난 상처는 왜 그런 것이냐고 묻자 집에서 의자에 받혔다고 함. (중략) 다른데 아픈 데는 없냐고 묻자 없다고 했으며 오늘 등이나 배가 아프다고 했는데 괜찮냐고 묻자 괜찮다고 함. '친모는 좋은 엄마야?' 하고 묻자 좋은 엄마라고 함. (중략) 친부랑은 뭐하고 놀았냐고 하자 '아빠랑 집에서 비행기 타다가 창문에 부딪혔어요'라고 함. (중략) 친모가 차가 있어서 유치원에 데리러 온다고 했으나 교사에게 확인해 보니 유치원 차로 아파트 근처까지 픽업하고 그 곳에서 친모가 아동을 데리고 간다고 함.(2011년 5월19일) 부모의 학대가 의심되는 아동과의 상담 내용이다. 상담 결과는 '이상 없다'신체학대라고 보기 어렵다'였다. 이 아동은 그로부터 2년여 뒤인 2013년 10월 학대로 숨진 '울산 계모 의붓딸 살인 사건' 피해 아동 이서현이다.
뉴시스가 확보한 상담일지는 총 3개다. 2011년 5월13일 방문상담 내용과 5월19일 방문상담 및 통원치료 내용이다. 서현이가 경북 포항의 한 유치원을 다녔던 지난 2011년. 몸에 자주 멍이 드는 것을 이상히 여긴 유치원 교사가 아동학대 신고를 했다. 당시 교사는 몸의 멍 자국에 관해 물었고, 서현이는 "엄마(계모)가 때렸다"고 답했다. 하지만 상담원들은 "등의 멍 자국 외에 신체학대 사실이라고 증명될 만한 흔적이 없고, 건강에도 이상이 없다"며 "친부 상담을 통해 아동 양육 과정에 관해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결론지었다. 상담원이 이같이 결론 내린 것은 서현이가 부모에 대해 '좋다'고 얘기했고, 소아과 진료 후 몸의 상처가 신체 학대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담 과정을 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먼저 상담사는 서현이의 어머니가 '친모'인지, '계모'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담사는 상담일지에 계속 '친모'라고 적었는데 가장 기본적인 정보라고 할 수 있는 가족관계도 몰랐던 셈이다. 아이의 상태나 행동은 간과한 채 '괜찮다'좋다'는 말만 신뢰한 것도 사태를 키웠다. 상담일지를 보면 서현이는 '무엇을 좋아하는지'꿈이 무엇인지' 등의 질문에 대답을 잘하지 못 한다. 뒤늦게 발레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학원은 다니지 않았고, 어머니에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하는데도 상담원은 의문을 갖지 않았다.
특히 당시 유치원 교사가 아동보호기관에 신고했던 것은 서현이 몸에 자주 멍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도 서현이는 교사에게 등과 배가 아프다고 했고, 몸의 멍 자국에 대해 "어머니가 때렸다"고 말했다. 잦은 구타를 의심해 볼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아동 보호 기관은 상담 과정에서 구타 사실을 부인했다는 이유로 '학대로 의심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병원 진료 기록엔 서현이가 끊임없이 학대당한 사실이 남아 있다. 2011년 머리와 등을 맞아 진료를 받았고, 이듬해엔 귀가가 늦었다는 이유로 허벅지를 발로 맞아 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같은 해 남편과 말다툼을 한 계모가 욕실에서 뜨거운 물을 뿌려 2도 화상을 입기도 했다. 하지만 병원은 경찰이나 아동보호기관에 신고하지 않았다. 아동보호기관 역시 지속해서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울산 계모 의붓딸 살인사건'은 박모(43·여)씨가 사실혼 관계인 이모(49)씨의 딸 서현이를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수차례 폭행하는 등 지속적으로 학대해 숨지게 한 사건이다. 박씨는 1심에서 상해치사죄만 인정돼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으나, 2014년 10월 항소심에서 살인죄가 인정돼 징역 18년을 확정받았다. 친아버지인 이씨는 딸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혐의(아동복지법 위반)로 기소돼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징역 4년이 확정됐다. 경찰 조사 결과 서현이는 갈비뼈 24개 중 16개가 부러진 상태였다.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찔러 숨졌다. 집 거실에는 아이의 생니가 굴러다녔다고 한다. 엉덩이 근육이 소멸하고, 섬유질로 채워지는 '둔부조직 섬유화'는 지속적인 폭력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8살짜리 어린 아이답지 않게 예의 바르고 조신했던 서현이는 잦은 구타에도 아프다는 말 한 번, 부모가 때린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단지 소풍을 보내 달라고 했을 뿐인데 사회와 어른들의 외면 속에 가늘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