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문화일반

캐서린 리그니 UPF 阿 회장 “속죄하는 마음으로 40년간 평화 메시지 전했죠"

등록 2016-02-20 08:11:49   최종수정 2016-12-28 16:38:11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캐서린 리그니 천주평화연합(UPF) 아프리카 회장.(사진=천주평화연합 제공)
【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아프리카는 풍부한 천연자원을 가진 미개발 지역이라는 이유로 ‘무한한 가능성의 땅’이라 불린다.

 그러나 서구 열강의 오랜 식민 지배가 끝난 뒤 대충 그려진 국경선 탓에 종족, 종교, 이데올로기가 혼재하면서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된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테러’ ‘독재’ ‘착취’ ‘내전’ 등의 단어를 떼어놓고 결코 생각할 수 없는, 위험한 대륙에서 지난 1975년부터 지금까지 4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가녀린 몸으로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온 사람이 있다.

 캐서린 하팅 리그니(69) 천주평화연합(UPF) 아프리카 회장이다.

 지난 12일 서울 잠실동 롯데호텔월드에서 만난 리그니 회장은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힘차고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리그니 회장은 “한국에 40여 차례 왔어요. 올 때마다 매력적인 나라이고, 정이 많은 국민이라고 느낍니다”고 인사를 건넸다. 

 그가 이번에 방한한 것은 천주평화연합이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과 공동으로 올해 문선명(1920~2012ㅊㅍ )·한학자(73) 총재 탄신일(음력 1월 6일)인 13일부터 제3주년 기원절(基元節·음력 1월 13일)인 20일까지 8일 동안 펼친 다양한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리그니 회장은 1946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가톨릭을 믿는 백인 가정에서 태어났다.그는 가톨릭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4년부터 아메리칸 항공, 델타 항공 등에서 지상 근무자로 일했다.

 그러다 1969년 평범한 미국 여성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그해 우연히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을 접하고, 교리에 매료돼 그해 12월23일 입교했다.

 “당시 베트남전쟁을 겪으면서 정신적으로 방황하며 진리를 찾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때 문선명·한학자 총재님의 평화사상을 만났고, 마침내 환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후  1975년 2월8일 한국에서 문선명·한학자 총재의 ‘1800가정 축복’을 통해 평생의 배필을 만난 그는 그해 5월15일 서아프리카 베냉공화국에 선교사로 파송됐다. 하지만 같은 해 11월 종교를 부정하는 공산정권에 체포됐다 나이지리아로 추방됐다.

 “공산정권에 체포됐을 때 두렵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리그니 회장은 “전혀”라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슴 졸이며 숨어 지내고, 모진 박해를 받다 순교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많은 베냉 국민에게 문선명·한학자 총재님의 사랑과 평화의 말씀을 전할 수 있었다면 오히려 행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저는 추방을 당해 입국마저 불가능해졌죠. 그럴 기회를 놓치게 된 것에 오히려 절망했습니다”고 돌아봤다.

 리그니 회장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었지만, 아프리카 선교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간절하게 기회를 원했다. 문선명·한학자 총재도 그런 바람을 소중히 여겨 1976년 그를 가정연합 코트디부아르(아이보리코스트) 선교사로 임명했다.

 그는 노예무역과 식민 지배까지 백인에게 상처를 받은 아프리카인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선교에 열중했고, 그 결과 교세를 확장해나갈 수 있었다.

 1978년 가정연합 코트디부아르 협회장이 됐고, 1979년 가정연합 서아프리카 지역책임자에 올랐다. 1991년 가정연합 나이지리아 협회장으로 옮긴 뒤, 1995년 마침내 가정연합 아프리카 대륙 회장의 중책을 맡게 된다.

 ‘백인’ ‘여성’ ‘가정연합 선교사’…. 아프리카와 어느 것 하나 통하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더욱 힘들고 어려웠지만, 리그니 회장은 소명의식으로 아프리카인들 속으로 들어갔다.

 “더 편안하고 안전한 지역으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느냐”는 물음에 그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었어요”라면서 “오히려 내게 그런 힘들고 어려운 길을 맡겨주신 두 분 총재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더욱 열심히 말씀을 전했죠. 굳게 닫아뒀던 마음의 빗장을 조금씩 열어가며, 본연의 착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는 아프리카인의 해맑은 미소를 두고 어디로 갈 수 있었겠어요”라고 반문했다.  

 하지만 그런 그도 아프리카를 떠나야 할 때가 왔다. 2000년7월 말라리아에 걸려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돌아와야 했던 것. 선교사로 베냉에 파송된 뒤 25년 만이다.

 건강을 회복한 리그니 회장은 2년도 채 안 된 2002년 다시 아프리카로 향한다. 아프리카 천주평화연합의 후천성 면역 결핍증(HIV/AIDS) 예방 교육 프로그램 책임자로서다.

 그는 “가정과 순결을 중시하는 가정연합 식구(신도)로서 후천성 면역 결핍증 예방 활동은 정말 의미 있는 활동이었습니다”고 돌아봤다.

 리그니 회장은 2009년 11월 문선명·한학자 총재에게 아프리카 축복중심 가정을 위한 세계순회사로 임명받은 데 이어 2012년 6월 천주평화연합 아프리카 지역 회장이 돼 가정연합 선교뿐만 아니라 가난과 질병, 전쟁과 테러리즘에 치이고, 짓눌린 아프리카 대륙에 평화의 씨앗을 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많은 분이 아프리카가 위험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랑과 평화를 더욱 필요로 하고, 갈구하는 곳이 아프리카입니다. 우리가 조금만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아프리카는 더는 낯선 땅이 아닙니다. 제게 그런 소명을 내려 축복해주신 두 분 총재님께 감사하며, 두 분의 꿈을 꽃피우기 위해 더욱 노력하려고 합니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 리플
위클리뉴시스 정기구독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