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환의 스크리닝]‘룸’이 보여준 자극적 소재 사용법
앞서 2005년 광주광역시의 한 청각장애 학생을 위한 사립 특수학교에서 학교 간부, 교사 등이 어린 여자 원생들 상대로 자행한 성폭행 사건을 다룬 소설가 공지영씨의 동명 소설을 스크린에 옮겼다. 이 영화는 그 해 9월22일 개봉해 약 466만 관객을 모을 정도로 흥행하면서 여론을 움직였다, 급기야 국회는 그 해 10월28일 ‘아동·장애인 성폭력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를 골자로 한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 일명 ‘도가니법’을 통과시키기에 이르렀다. 이후 ‘도가니’는 영화가 사회를 변화시킨 좋은 예로 늘 회자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영화를 개봉 전 시사회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4년6개월 가까이 흐른 지금까지 계속 마음에 걸리는 장면들이 있다. 바로 ‘교장’(장광) 쌍둥이 형제가 벌이는 여자 원생 성폭행 신이다. 이들은 여원생을 교장실에서, 화장실에서 각각 성폭행하는데 그 묘사가 직접적이고 상세해 보는 데 너무 불편했다. 동시에 피해 원생을 연기한 아역배우들이 저런 장면들을 촬영하면서 충격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도 했다. 그래서 연출자 황동혁 감독을 인터뷰할 때 “아역배우들을 어떻게 배려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황 감독은 “아역배우들에게 직접 그 장면을 연기시키지 않았다. 몸집 작은 남자 스태프가 연기했다”고 해명했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아일랜드·할리우드 영화 ‘룸’(감독 레니 에이브러햄슨)이 내게 준 인상 때문이다. 이 영화는 여고생이던 17세 때 한 남성에게 납치돼 7년간 외딴 창고에서 갇혀 지내며 지속해 폭행과 성폭행을 당하다 결국 아들까지 낳아 키우게 된 한 24세 여성 ‘조이’의 이야기다. 납치범의 폭력에 가로막혀 탈출을 포기한 채 숨죽이며 지내던 조이는 아들 ‘잭’이 다섯 살 생일이 지나자 비로소 아들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겠다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 탈출을 시도한다. 역시 실화를 기초로 한 아일랜드 출신 소설가 에마 도너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호연을 펼친 만 10세 아역배우 제이컵 트렘블레이는 ‘제21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에서 ‘젊은 배우상’을 받는 등 유수의 영화제에서 신인상을 차지하며 ‘제2의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라는 찬사를 한몸에 받았다. 두 사람의 명연기도 발군이었지만, 내가 이 영화에서 진짜로 감동한 것은 영화 자체다. 10대 여고생이 남성에게 납치돼 매일같이 성폭행을 당하고, 아들을 출산한 뒤에도 아들과 함께 사는 작은 방 안에서 줄기차게 성폭행을 당하는 것 등 충분히 자극적으로 그릴 수 있는 스토리였다. 그러나 영화는 그런 장면들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아니 보여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납치범이 왔을 때 카메라는 옷장 안에 숨어있는 잭에게 집중할 뿐이다. 어쩌면 엄마와 납치범의 성관계 장면을 봐도 그게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 잭처럼 관객을 만든다. 영화가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도가니’처럼 할 수도 있겠지만, ‘룸’처럼 해도 충분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청소년관람불가’인 ‘도가니’를 보고 그토록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입안에 기름기가 남은 것처럼 찜찜한 기분은 ‘15세 관람가’인 ‘룸’을 본 지 이제 불과 10여 일이 됐으나 전혀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도가니’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어쩌면 우리 사회가 그런 격한 자극이 있어야 비로소 눈길을 돌리고, 몸을 움직일 정도로 개인주의·이기주의에 침몰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어서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