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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더스는 왜 '오바마'가 되지 못했나

등록 2016-03-28 10:50:03   최종수정 2016-12-28 16:4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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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지예 기자 = "버니가 불타버렸다"(Bern has burned out)

 미국 민주당 대선주자 버니 샌더스의 애칭 '번(Bern)'과 '불타 없어지다(burn out)'를 조합한 말이다. 경선 레이스가 중반으로 접어든 요즘 비슷한 표현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는 샌더스 돌풍은 이미 '끝장났다'는 안타까움이 담겨있다.

 '민주적 사회주의', '99%의 혁명'을 말하는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은 74세의 고령에도 미국을 바꿀 차세대 대통령 후보로 주목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며 2008년 대선 후보로 혜성처럼 등장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떠올렸다. 그러나 샌더스는 오바마가 아니었다.

 민주당 경선이 무르익을수록 샌더스 돌풍보다는 힐러리 대세론이 굳어지고 있다. 23일 기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대의원 1711명을 확보했다. 최종 후보가 되기 위한 매직넘버(2383명)에 바짝 다가섰다. 반면 샌더스 의원(951명)의 성적은 초라하다.

◇ 오바마· 샌더스 '닮은 꼴' 선거 캠페인

 지난 2008년 오바마와 올해 대선의 샌더스는 분명 닮은 점이 많다. 둘 다 민주당의 '거물급' 정치인 클린턴을 상대로 '정치 신인' 혹은 '아웃사이더'가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었고 주류파를 상대로 승승장구했다.

 또 이들 뒤에는 '평범한 시민들'이 있었다. 선거 캠페인을 지탱한 것은 이익단체가 기부한 거액의 선거자금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내놓은 쌈짓돈이다. 정치에 냉소적인 젊은층이 누가시키지 않았는데도 발벗고 나서 유세를 지원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대선 즈음 가장 뜨거운 이슈를 선점해 '변화'를 강조한 점도 같다. 2008년의 핵심 의제 중 하나가 이라크 전쟁이었다면 올해는 경제 불평등이다. 오바마는 이라크전 종식을 내세워 국민들의 피로감을 달랬고 샌더스는 월가 개혁을 역설하며 '모두를 위한 미국'을 약속했다.

◇ 지지율 천장을 뚫지 못한 샌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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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샌더스는 오바마의 기적을 재현하지 못하고 있다. 결정적 요인은 지지 기반에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민주당 경선에서 흑인표 80% 이상을 챙겼다. 샌더스 의원에 대한 민주당 흑인 유권자 지지율은 10% 수준에 불과하다.

 클린턴 전 장관은 흑인 인권운동 경력에도 '미국 최초의 흑인대통령' 오바마의 벽을 넘지못한 과거를 보상받기라도 하듯 올해 경선에서 흑인 표를 쓸어가고 있다. 연방 흑인의원들이 한목소리로 손을 들어준 것에 히스패닉계, 아시아계 유권자들의 지지가 더해지면서 탄력을 받았다. .

 샌더스 의원은 흑인 등 소수 인종 사이 지지율이 낮다는 점을 스스로도 자신의 취약점으로 꼽는다. 그는 고학력 젊은 백인층 위주의 지지 기반을 좀처럼 넓히지 못해 왔다.

 무려 30년이 넘는 정치 경력에도 인지도 자체가 낮다는 사실도 샌더스의 발목을 잡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뛰어난 웅변술과 낙천적인 이미지로 흑인들 외에도 광범위한 유권자들에 어필했다. 반면 샌더스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작은 주인 버몬트에서 무소속의 길을 고집해 온 외골수 이미지가 강하다.

◇ 샌더스와 오바마,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오바마와 샌더스의 차이는 '실용주의'와 '이상주의'로도 구분할 수 있다. 오바마가 테크노크라시(기술 관료주의)를 통한 실용정치를 추구한다면 샌더스 의원은 이상으로만 여겨지던 개념을 이제는 현실로 만들자고 얘기한다.

 이런 특징은 두 사람의 유세 방식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샌더스 의원은 그가 종종 사용하는 '혁명'이라는 말이 보여주듯 미국 정치경제 시스템의 본질 자체를 뒤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에 비해 오바마의 캠페인은 훨씬 '덜' 이념적이면서 타협적이었다. 그는 이라크 전쟁,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태 등을 논할 때 민주당 진보세력 외에도 무소속, 보수주의자들을 최대한 끌어들여 지지층을 넓히는 전략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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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지자들의 기대도 사뭇 달랐다. 오바마가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라는 구호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강경 보수정책으로 피로감에 휩싸인 미국인들에게 희망을 얘기했다면, 샌더스 열풍은 경제 불평등과 부패한 정치에 대한 '분노'에 기반한다.

◇ '미친 존재감' 샌더스의 도전은 계속된다 

 샌더스 의원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1일 경선 최대 분수령인 슈퍼화요일 이후 후보 자리를 사퇴해야 한다는 압력이 민주당 안팎에서 거세지고 있지만 그의 입장은 단호하다. 향후 경선에서 완승하면 판세 뒤집기가 수학적으로 가능한 상태며, 설령 패배해도 경선이 남은 지역 유권자들에게서 자신을 선택할 권리를 빼았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클린턴에 맞설 실탄도 충분하다. 힐러리 대세론의 기정 사실화에도 샌더스 지지자들의 열정은 도무지 식을 줄 모른다. 지난 2월 경선 레이스에서 클린턴 전 장관에 3연패를 당했지만 일반 지지자들이 후원한 한 달 모금액은 오히려 클린턴을 앞질렀다. 유세장마다 만원을 이루는 흥행 행진도 이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샌더스는 존재만으로도 양당을 통틀어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인 클린턴 전 장관을 '왼쪽'으로 미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경선 초반 샌더스의 선전으로 긴장한 클린턴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재협상, 월가 규제 강화 같은 진보 공약을 잇달아 내놨다.

 샌더스 지지자들은 공화당 온건세력과 크게 다를 바 없던 클린턴이 샌더스와의 경쟁을 계기로 민주당의 새로운 세대를 포용할 수 있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진보평론가 아니 아르네센은 샌더스의 캠페인은 "그 자신이 아니라 우리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승패가 어찌되든 샌더스의 '혁명'은 계속될 거란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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