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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공항 민심르포] 대구 '화나지만 우야겠노', 부산 '그나마 이게 어딘가'

등록 2016-06-28 07:51:00   최종수정 2016-12-28 17: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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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뉴시스】최진석 기자 = 영남권 신공항 사전타당성 검토 용역결과 신공항 건설 계획이 백지화된 21일 오후 대구 달서구청 앞에서 구청 관계자들이 신공항 유치 관련 플래카드를 떼어내고 있다. 이날 브리핑에서 영남권 신공항 사전타당성 검토 용역을 맡은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은 결과를 발표하며 현재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방안이 최적의 대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2016.06.21.  [email protected]
대구·부산지역 현지 민심 르포  대구가 상대적 분노 높고 부산은 비교적 차분  정치권이 지역 갈등 키운데 대한 분노는 비슷

【대구·부산=뉴시스】윤다빈 기자 = 지난 21일 정부가 영남권 신공항 사업 백지화와 함께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안을 발표하자 지역 민심이 술렁거리고 있다. 밀양공항을 주장한 대구와 가덕도 신공항 유치를 외친 부산 지역은 저마다 승리를 확신했기에 이같은 결정에 대한 허탈감이 컸다.

 이들은 양쪽 모두 정치인들이 지역 갈등을 키웠다고 화살을 여의도로 돌리면서도 향후 대응 방법에 대해서는 약간의 온도차가 있었다. 김해신공항 결정이 상대적으로 대구지역에게는 아무런 혜택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두고 이 지역 주민들의 불만은 상대적으로 높았다.

 반면 부산지역은 가덕도가 무산된 데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차선(次善)은 된다는 표정이었다. 일단 밀양으로 가는 것은 막은데다 기존의 김해공항은 부산 시민들이 이용하기에 그다지 불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구 "화나고 아쉽지만 어쩌겠나"

 역시 대구시민들은 불만스런 표정이 가득했다. 27일 동대구역에서 만난 70대 택시기사 이주복씨는 '김해신공항' 이야기를 꺼내자 곧바로 미간을 찌푸렸다. 이씨는 "이야기도 하지 마이소. 스트레스 받는기라. 이이고 참 짜증나요. 짜증나"라고 운을 뗐다.

 그는 "밀양을 기대했는데 속이 상합니더. 밀양에 공항이 생기면 택시로 40~50분 거리라 손님이 많이 생겼을 긴데…"라며 안타까워했다. 그의 불만은 자연스레 정치권을 향한 성토로 이어졌다. 이씨는 "왜 부산과 대구를 싸움 붙였는지 모르겠습니더. 백년대계로 보고 일을 추진해야하는 것 아잉기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구 서문시장에서 옷 가게를 운영하는 60대 여성 김모씨는 "공항이 밀양에 서면 지역경제가 좀 나아질 걸로 기대했는데 아쉽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씨는 "대구에서 대통령이 나왔는데 뭐 도움이 된 게 있습니까"라고 반문한 뒤 "대구 사람 입장에서 (김해신공항 결정이) 많이 섭섭하지요"라고 속내를 밝혔다.

 그는 또 "국회의원들도 지역에는 관심이 없고 입신양명만 쫓더라고요. 대구 정치인들이 이번 신공항 과정에서 무슨 역할을 했나요"라면서 "김해신공항 결정이 나니까 이제 와서 항의하고 그러는 것 아닌가요"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대구지역 의원들이 이번 결정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불만과 함께 대구 출신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서운함이 묻어나 있다. 하지만 이미 결정난 것에 대해 집단적인 반발 기미보다 "이젠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한숨이 많았다. 분노해도 소용없다는 판단인 것이다.

 때문에 결과는 아쉽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구토박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고영(69)씨는 "대구 사람들 별로 기분 안 좋습니더"라면서도 "밀양 신공항이 무산됐지만 그래도 가덕도로 가는 것 보다는 낫지예"라고 말했다. 그는 "가덕도 공항 갈 바엔 차라리 인천공항이 낫지예. 김해공항 확장이 가덕도보다는 나은 것 같네요"라고 평가했다.

 서겸용(58)씨도 "밀양공항 백지화가 많이 아쉽다"면서도 "부산이든 대구든 어느 한쪽에 생긴다고 발표했으면 (해당 지역 주민이) 가만히 있었겠어요. 지금 생각하니 뭐 공평하게 김해공항 넓게 지어서 편하게 쓰면 좋지 않겠나 싶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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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뉴시스】최진석 기자 = 영남권 신공항 사전타당성 검토 용역결과 신공항 건설 계획이 백지화된 21일 오후 대구 동구 대구상공회의소에서 강주열(앞줄 가운데) 남부권신공항 범시도민 추진위원장을 비롯한 소속 회원들이 용역결과 발표를 경청하며 허탈해 하고 있다. 이날 브리핑에서 영남권 신공항 사전타당성 검토 용역을 맡은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은 이날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현재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방안이 최적의 대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2016.06.21.  [email protected]
 아쉬움 속에 차분한 대응을 하는 시민들과 달리 대구지역 정치인 시민단체는 격앙된 목소리를 분출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친박과 비박, 여야 가릴 것 없이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주민들은 "버스 지나간 뒤에 손 흔드는 격"이라고 지적하고 있지만, 정치인들은 여전히 결정 번복을 주장한다.

 친박계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대구 달서병)은 "정부 결정에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고,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신공항 백지화 발표는 대국민 기만극"이라고 강조했다. 이 지역 여야 의원들은 함께 잇달아 국회에서 모임을 갖고 강호인 국토부장관을 불러 "시도민들을 설득하지 못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수용하겠느냐"고 따지기도 했다.

 시민단체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영남권신공항추진위원회는 25일 오후 5시 대구 중구 대구백화점 앞에서 신공항 백지화 진상규명 촉구 결의대회를 개최하는 등 불만의 목소리를 계속 내고 있다. 영남권신공항추진위 측은 향후 각계 인사들이 참여하는 범시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영남권신공항 건설을 재추진할 계획이다.

 영남권신공항추진위원회 강주열 위원장은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 때 겪은 백지화의 아픔을 또 한 번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정부가 지금의 김해공항을 신공항이라고 하는 것은 지록위마(指鹿爲馬)다. 사슴을 보고 말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강 위원장은 "(신공항 건설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대선 공약"이라며 "박 대통령이 국민과의 약속을 어겨서 유감스럽다. 어떻게 이런 정부를 믿겠나"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전체적으로 지역 정치인과 관련 단체들의 목소리는 한결같이 이번 김해신공항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은 "한번 내려진 결정이 번복되겠느냐"며 아쉬움 속에 현실을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부산 "최선은 아니지만 '절반의 성공'"

 부산역 광장에는 치열했던 영남권 신공항 경쟁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24시간 소음 없는 안전한 공항, 부산 가덕해안 뿐', '세계화 시대에 경쟁력 있는 신공항 가덕도', '길(가덕도)을 놔두고 뫼(밀양)로 가랴' 등의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여전히 걸려 있었다. 하지만 다수의 시민들은 이번 결정이 '별반 나쁘지 않은 결과'라는 표정이었다.

 부산은 이번 신공항 유치 경쟁이 유독 뜨거웠던 지역이었다. 여야 정치인들이 유치에 올인했고, 차기 유력주자인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까지 나서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특히 더민주 부산시당은 지난 8일 부산역 광장에 '가덕신공항 유치 비상대책본부'를 출범시키고 정부에 대한 총공세에 돌입한 바 있다.

 새누리당도 하태경·김세연 의원이 중심이 돼 가덕도신공항 유치 활동에 공을 들였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지방선거 당시 주장한 '가덕도신공항 무산시 사퇴' 입장을 고수하며 배수의 진을 쳤다. 이 과정에서 여야 의원들은 가덕도 유치 집회에 손잡고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시민단체의 활동도 활발했다. 지난 14일에는 가덕도신공항추진 범시민운동본부 주최로 시민 3만명이 모인 가운데 '가덕신공항 유치 범시민 궐기대회'를 열기도 했다. '가덕도 아니면 민란이 일어난다'는 구호가 등장할 정도로 격앙됐다.

 하지만 정부의 김해신공항 방침에 분위기는 급변했다. 당초 '민란' 수준의 반발도 예상됐지만 부산 시민들은 대체로 이번 결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눈치다. 어차피 김해공항이 부산 강서구에 위치한 만큼 사실상 '부산공항 확장' 아니냐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는 것이다. 

 부산역 광장에서 만난 택시기사 김병주(66)씨는 "가덕도가 선정되지 않아 아쉽지만 김해공항도 부산이다"라며 "같은 지역에 있는 만큼 김해에 신공항이 생기면 부산 경기도 좀 살아날 것이다.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아무래도 (부산에서) 밀양까지 가는 것 보다는 김해를 가는 게 더 빠르다"며 "지금 부산은 절반의 성공이니까 조용히 하고 있는 거다. 정부로서는 적절한 답을 찾은 것 같다"는 생각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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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서병수 부산시장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정부의 영남권 신공항 입지 선정 용역 결과 발표를 앞두고 가덕신공항 유치 당위성을 강조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6.06.20.  [email protected]
 부산에서 태어나 줄곧 살고 있다는 김모(54·여)씨는 "가덕도가 되면 가장 좋았을 것"이라면서도 "지금와서 재검토가 되겠나. 대통령이 나서서 김해신공항이라고 하고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소음 공해, 24시간 운항불가와 같은 김해공항 확장의 문제점을 보완하는데 힘써야할 때"라고 강조했다.

 국제시장에서 만난 김모(46)씨 역시 "가덕도가 되면 좋긴한데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것도 괜찮다"며 "부산시민 입장에서 밀양만 아니면 괜찮은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는 "밀양은 부산이 이용하기가 힘들다"며 "냉정히 봤을 때 가덕도도 교통이 별로 안 좋다. 소음 문제만 해결되면 김해공항은 좋은 대안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물론 여전히 가덕도신공항 유치 실패에 분노하는 여론도 있었다. 김윤태(58)씨는 "백년대계를 위해서는 가덕도에 건설했어야 한다"며 "후손을 생각해 정치적인 놀음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공항은 24시간 가동할 수 있어야 한다"며 "(김해공항 확장안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역 정치권의 반응도 결정 당시에는 반발이 강했지만 이젠 차분한 상태로 돌아서고 있다. 여야 모두 대체로 관망하는 모양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김해공항 확장이 최적 대안"이라고 평가했고, 더민주는 "신공항이 다시 추진돼야한다"고 밝히면서도 구체적인 집단 행동으로는 연결되지 않았다.

 시민사회의 반응도 비슷하다. 김해공항가덕이전시민추진단 이규중 정책기획팀장은 뉴시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김해공항 확장 결정에 대해 "아직까지 특별한 입장을 정한 것은 없다"며 "김해공항 확장안에 우리가 원하는 게 얼마나 수용됐는지 검토해서 입장을 이야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김해공항 확장이 가덕도신공항의 차선책 정도는 되냐는 질문에 "그런 부분이 있을 수 있다. 밀양에 간 것에 비하면 일단 (김해공항은) 부산에 있는 것"이라며 "그렇다고 김해공항 확장 결정이 잘됐다고 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과도한 정치권 개입 자제 목소리도

 다만 신공항 유치를 두고 대구 경북(TK)과 부산 경남(PK)이 분열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해당 지역 내에서도 지나친 지역 이기주의와 정치권의 선동을 경계하는 목소리는 똑같이 나왔다.  

 대구 서문시장에서 만난 70대 우모씨는 "국익을 생각하는 방향에서 공항을 선정해야지, 지역이기주의로 흘러서는 안 됩니더. 대구, 부산만의 손익계산을 따져서야 되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우씨는 "김해공항 확장을 안 된다 해놓고는 다시 하니까 국민이 못 믿는기라. 대구, 부산 눈치보다가 (절충안인) 김해공항 확장해뿌는걸로 결정했다고 국민들이 불신하는기래. 백년대계를 보고 해야지. 투명성 없이 이를 갖다가 내막도 모르게 해서 되냐 이기야"라고 지적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이번 일로 국론만 분열됐다 이기야. 표를 의식한 이런거 공약 못내게 법을 만들어야 돼요"라며 "하여튼 정치권이 문제인기라. 표만 의식할 게 아니라 확실한 선이 있어야 할거 아이가"라고 강조했다.

 부산역 광장에서 만난 박모(67)씨도 "내년 대선 때 또 신공항 공약하고 그리 될까봐 걱정인교. 두고 보이소. 내년 대선되면 또 공약 나온데이"라며 "정치하는 사람들이 표 의식해서 그라믄 안 돼요. 국가 생각 안 하고 이러는 게 뭐냐 이기야"라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 돼버렸어요. 부산이 먼저 나서니까 대구도 정치하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이러는 거 아이요"라며 "이런 현실이 안타깝지요…"라고 탄식했다. 정치권 인사들이 지역 표심을 생각해 갈등을 한껏 키웠다는 한결같은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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