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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연상호 감독 "내가 변했다고? 난 계속 변할 거다"

등록 2016-07-16 08:00:00   최종수정 2016-12-28 17: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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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영화…사회적 현상 해부 작품은 아냐 스토리텔링방식 고착화되는 느낌 벗고 싶어  멜로 코미디 드라마 등 새 장르 도전할 것" 

【서울=뉴시스】손정빈 기자 = 영화 '부산행'(감독 연상호)은 짜릿했다. 여름철 블록버스터로 손색 없는 작품이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 재난영화의 확장 혹은 일 보 전진을 가져온 작품이라는 측면에서 반갑다.

 좀비 바이러스가 전국에서 창궐하고, 이를 피해 부산행 KTX에 탑승한 사람들에게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러닝타임 118분 동안 시종일관 긴장감을 놓을 수 없다.

 능수능란한 서사 완급조절, 탄력 넘치는 편집, 여기에 공유·마동석 등 주연 배우들의 호연이 더해지면서 영화는 '좀비'라는 국내 관객에게는 생소한 소재의 한계를 넘어 보편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오락영화로 탄생했다.

 연상호(38) 감독은 두 가지 우려를 완전히 날려버렸다. 애니메이션만 해온 연출가가 실사 영화에서도 그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사회적 메시지가 진득하게 달라붙은 소위 작품성 높은 작품들을 해온 창작자가 오락영화 연출도 가능할지…. 연 감독은 둘 모두를 해냈다.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영화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연상호라는 창작자에 대한 것이다. 연상호 영화 특유의 우울과 무기력, 또 여기서 기묘하게 파생되는 강렬한 에너지가 담긴 그런 좀비오락영화를 기대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 그래서 연 감독을 만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부산행'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는지, 또 그는 정말 변해버린 건지 물었다.

 -시사회 후 반응이 좋았다. 기분이 어떤까.

 "다행이고, 속이 시원하다. 일단 칸에서 반응이 정말 열광적이었다('부산행'은 올해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됐다). '돼지의 왕'(2011)으로도 칸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와는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당황하기도 했다. 그런데 칸 이후로 개봉까지 2개월 넘게 기다려야 해서 답답한 마음이 있었다. 아직 개봉하지 않았고 언론 시사이기는 하지만, 국내에 선을 보이게 돼 좋다.

 -바로 영화 이야기로 넘어가자. '부산행', 어떻게 시작한 영화인가.

 "아주 예전에 만든 '지옥'(2004)이라는 단편이 있다. 호러판타지 장르물인데, 그걸 끝내고 만들려고 했던 게 서울역을 배경으로 한 좀비물이었다. 어쨌든 당시 그걸 만들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사이비'(2013)를 끝내고 차기작을 고민할 때, 다시 서울역 이야기를 꺼냈다. 주변에서 재밌을 것 같다는 반응이 많아서 일단 작업에 들어갔다. 그때 배급사 NEW에서 '서울역'을 실사로 만드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이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있는 작품을 실사로 만드는 게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내놓은 다른 아이템이 '서울역'과 연결되는 '부산행'이었다. 그걸 NEW에서 매우 좋아했다."

 -애니메이션과 실사를 떠나서 이야기 자체가 좀 커진 듯하다. '돼지의 왕'은 한 학급에서 벌어진 이야기, '사이비'는 한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KTX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기는 하나 전국에 걸친 사건이다.

 "처음에는 전작처럼 작은 사이즈로 생각했다. 열차 안에서만 일어나는, 마치 '열 두 명의 성난 사람들'(1957)과 같은 그런 이야기였다. 그 안에서의 인간군상들…. 그런데 제작사에서 액션 블록버스터로 만들자고 했고, NEW에서도 큰 사이즈 영화를 원했다. 그래서 좀 확장된 게 있다."

 -불만은 없었나.

 "큰 예산의 영화를 하는 게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제작사나 배급사에서 그런 부담을 덜어주려고 했고, 더 맘껏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

 -시사회가 끝나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종말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게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를 '세상이 종말을 맞이할 때를 생각하면서 시작한 작품'이라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코맥 매커시의 '더 로드'라는 소설을 매우 좋아한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그 영화의 묵시록적인 분위기, 아빠와 아들이 멸망된 세상에서 인간성을 지키려는 모습, 그런 것들이 좋았다. 또 '미스트'라는 영화가 있다. 스티븐 킹의 소설이 원작인 작품인데,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빠진, 닫힌 공간 속 공포를 다룬 영화다. 이 두 가지를 결합해서 더 대중적인 영화, 그러면서도 사회적 메시지가 들어간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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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말과 함께 이야기했던 게 '성장 중심 사회'다. 워딩 그대로 하자면, "성장 중심 사회에서 우리가 다음 세대에 남길 것은 무엇인가"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더 설명이 필요하다.

 "자본주의 사회라는 건 물건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것이지 않나. 없는 가치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런 물건들, 가치들, 그러니까 물질 문명이 너무나도 꽉 찬 게 지금 상황이다. 과거에는 성장 자체가 중요하다보니까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줄 것인지 고민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겨야 할지 다시 고민해야 한다는 거다. 그것이 바로 부산행이 줄 수 있는 메시지라고 생각했다."

 -석우(공유)의 직업인 펀드매니저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 펀드매니저 자체가 형체가 없는 자산, 가치를 극대화하는 직업이라고 봤다. 기대심리까지 재화로 만드는, 물질문명의 극한에 있는 캐릭터다. 이런 세상이 종말을 맞았을 때, 석우는 자신의 아이에게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게 '부산행'이다. 답은 정해져 있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건 당위의 문제다. 당연히 이걸 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 당위성으로 이 작품을 만든 거다."

 -그 당위 때문에 전작 두 편('돼지의 왕' '사이비')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결론을 내린 건가.

 "음…. 내가 만든 영화들이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적은 없었다. 전작들은 어떤 부분에 대한 '포착'이었다고 본다. 내가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부산행'도 포착이라면 포착인데, 지점이 다르다고 봐야 한다."

 -'부산행'이 오락영화이고 상업영화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그런 당위적 메시지가 강하게 드러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 면에서 연상호의 영화 치고는 메시지가 약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꽤 있다.

 "이 영화는 어떤 사회적 현상을 해부하는 작품이 아니다. 지금보다 메시지가 더 들어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이 영화를 당위성에서 만들었다고 했다. 당위는 어떤 지향점이다. 지향점이라는 건, 어떻게 보면 단순한 거다. 당연히 이렇게 돼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 거다. 이 당위가 복잡하게 '설명'돼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런 측면에서 이정도면 적당하다는 거다."

 -'부산행'이 대중영화이기 때문에 사회적 메시지를 덜 드러낸 측면은 없다는 건가.

 "아니다. 그런 면도 물론 있다. 그러니까 여러가지를 고려했을 때 이정도 메시지면 충분했다고 본다."

 -'부산행'이 당신의 전작들과 다른 점이라면, 캐릭터가 상대적으로 약화됐다는 점이다. 전작들은 이야기 자체의 흥미로움과 동시에 강렬한 캐릭터가 그 이야기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부산행'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 애초에 시나리오 작업 단계에서부터 일부러 그렇게 했다. 캐릭터들이 단순하고 전형적이었으면 했다. 그게 콘셉트였다. 군중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이고, 좀비가 탄 기차 그 자체가 캐릭터가 됐으면 했다. 만약 강렬한 캐릭터가 있으면 영화의 초점이 흐려졌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동석이 연기한 '상화'는 정말 매력적이더라. 이 영화에서 가장 짜릿한 부분은 역시 상화와 친구들의 '4칸 전진 액션 시퀀스'다. 각 칸마다 콘셉트가 다른 액션 장면이 좋더라.

 "아주 다양한 상황들을 상상하면서 만들었다. 다 다르게 하고 싶었다. 아주 좁은 공간에서 좀비들이 밀려들어오는 느낌, 일대일 대결, 그후 이어지는 매우 정적인 긴장감, 상대적으로 넓은 공간에서의 액션, 또 뚫고 나아가는 느낌 등으로 만들고 싶었다."

 -액션이 적극적으로 나온다는 면에서 전작과 다른 점을 또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말해, 내러티브 자체가 전작들만큼 중요한 영화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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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행'도 그렇지만, '서울역'도 내러티브가 많은 작품은 아니다. 나는 액션이 내러티브를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액션만으로도 이야기를 끌고 나갈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하지만 제작자나 투자자를 납득시키는 건 또 다른 문제이긴 하다. 내 전작을 좋아한 배우나 제작자들은 '부산행' 시나리오를 보고 매우 당황했었다. 시나리오에 액션이라는 게 잘 보여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나리오에서 잘 보여지는 이야기에는 한계가 있다. 난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나리오적인 부분이 아니라 시나리오 외적인 부분에서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행'과 '서울역'은 좋은 기회였다."

 -이번 작품에서 액션을 통한 스토리텔링, 시나리오 외적인 것을 통한 스토리텔링이 잘 된 것 같나.

 "원하던 호흡은 다 얻었다. 그림에 메시지가 다 담겼다고 본다."

 -'부산행'이 전작들과 달랐던 점은 또 있다. 전작들에서는 여성 캐릭터가 부각이 된 적이 없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남성 캐릭터와는 달리 여성 캐릭터들은 주변을 맴돌았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여성이 수면 위로 확 떠오른 느낌이다.

 "은유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봤다. 물질문명 사회가 결국 남성 중심 사회이니까, 그 세계의 종말은 남성 중심 사회의 종말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러프한 은유이기는 하지만 만족한다."

 -지금까지 '부산행'의 내적인 이야기를 했다면, 이번엔 외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전작을 본 사람들의 공통적인 반응은, 이 연출가는 반드시 실사영화를 해야 한다고 것이었다. 문제는 연상호가 소위 1000만을 노리는 블록버스터를 연출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는 거다. 어떤 이유에서 이런 결정을 했나.

 "일단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는 애니메이션의 상태가 딱 좋다. 그런 이야기를 굳이 실사영화로 옮기는 데 전혀 끌리지 않는다. 실사영화를 한다면 애니메이션에서 했던 것과는 다른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부산행'이 그런 측면에서 재밌을 것 같았다.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건 이런 거다. '사이비'는 칸에 갔을 때, 반응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상업영화라고 생각하고 만든 '부산행'은 예술영화제라고 할 수 있는 칸에서 반응이 좋았다는 거다. 이런 건 참 재밌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다."

 -당신의 전작을 좋아했던 팬들은 당신이 변했다고 할 수도 있다.

 "난 계속 변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부산행'을 끝내면 또 이 영화같은 걸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영화를 만드는 '법'을 머리로 생각하는 게 제일 위험하다. '이렇게 하면 되겠지' 이런 마음이다.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의 스토리텔링 방식을 쓰는 게 의미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고착화되는 느낌이 있고, 거기서 벗어나고 싶다. 장르도 마찬가지다. 내가 전에 해보지 않았던 장르를 할 수도 있는 거다."

 -아주 다른 장르라는 건 어떤 걸 말하는 건가.

 "멜로나 코미디. 난 영화감독으로서 아직 젊다. 여러가지 시도를 많이 할 때다. 데이빗 핀처를 봐라. 핀처가 '세븐'(1995)을 내놨을 때 그는 계속 그런 영화만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핀처는 '하우스 오브 카드'도 연출했다. 드라마도 할 생각이 있나.

 "물론이다."

 -'부산행'과 '서울역'은 결국 하나의 작품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프리퀄과 시퀄을 한 편은 애니메이션, 한 펀은 실사영화로 만든 예는 우리나라에는 없었던 것 같다. 이런 작업을 해보니 어땠나.

 "재미있고, 즐거웠다. 이런 기획을 꼭 해보고 싶었다. 어차피 '부산행'과 '서울역'은 관객수에서는 차이가 크겠지만, '부산행'을 재밌게 보셨다면, 또 다른 방식으로 '서울역'을 즐길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애니메이션은 계속 할 건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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