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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통장이 잠든 사이-1부②]"한발 걸쳤는데 어느새 '개미지옥'에 빠졌다"

등록 2016-07-29 09:36:41   최종수정 2016-12-28 17:2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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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직사이트 '고수익 알바'…취업준비생 노리는 사냥터  "돈 빌려준다" 유령법인 통한 미끼…대포통장 '덫'으로



【서울=뉴시스】심동준 기자 = "급전 필요하신 분. 신용이 낮아 1금융권 대출이 어려운 분들께 기존 금리보다 조금 높은 금리의 대출상품을 알선합니다."

 '그놈'들이 모습을 감추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통장.

 범행의 연결고리이자 '그놈'들을 보호해주는 숙주로 삼기 위해 일명 '대포통장'을 긁어 모으는 수법은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신용도 낮아도 대출 가능합니다"… 유령법인의 '덫'

 대표적인 수법이 '대출 알선'. 급전이 필요한 취약계층이나, 긴급한 상황에 내몰려 고리대금이라도 얻어쓰겠다는 사람들이 주요 먹잇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던 김모(27)씨.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조차 전쟁같은 그에게 기존 은행은 물론 2금융권 문턱도 넘기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지난해 7월. 습관처럼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솔깃한 대출 광고가 그의 눈에 띄었다. 까다로운 조건 탓에 대출이 어려운 이들을 상대로 좀 높은 금리의 돈을 꿔준다는 내용이었다.

 "워낙 돈이 급해서 금리가 조금 높아도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대출업체에서 이것 저것 요구하는데 '금융 거래'에 워낙 무지해서 원래 이렇게 하나보다 했지요. 정신 차려보니 저도 모르게 통장을 넘겨줬더군요."

 김씨가 돈을 빌리려 했던 업체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만든 유령법인. 대출 유혹에 이끌려 사냥감이 등장하면 미끼를 풀어 통장을 가로채는 덫이었다.

 이렇게 긁어 모은 통장은 1개당 70만원에 대포통장으로 팔아 넘기는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세금 감면 도와주는 일입니다"… 개미지옥의 유혹 

 남의 통장을 빼가기 위한 '그놈들의 덫'은 최근 '1단계->2단계->3단계' 형태로 꼬드겨 일단 걸려들면 빠져나오기 힘든 개미지옥으로 진화했다. 조금만 방심해도 쉽사리 덫에 걸릴 수 있는 구조를 갖췄다.    

 '저희는 세무사 사무실과 연계된 자산관리회사입니다. 개인고소득자분들을 위한 단기 출장영업직원 및 아르바이트 사원을 모집합니다.'  

 군대를 갓 제대한 한모(26)씨.

 졸업학기를 남겨놓고 취업 준비를 위해 상경했지만 주머니는 항상 쪼달렸다. 남는 시간을 활용해 용돈이라도 벌어보려던 한씨가 개미지옥에 빠진 것은 인터넷 구직사이트의 '간단 업무 고수익 알바'라는 모집 공고를 발견하면서부터다.

 그저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심경으로 연락을 취한 한씨는 미처 발을 뺄 겨를도 없이 '그놈들의 덫'에 빨려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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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병원장 및 빌딩, 건물을 소유한 개인고소득자들은 소득은 많은데 지출이 적습니다. 이분들을 위해 지출내역을 만들어주는 업무입니다. 특별히 본인이 일을 직접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서류상 직원으로 등록되는 것이기 때문에 특별한 근무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이 정도쯤이야…' 하고 마음을 먹는 순간 한씨는 그놈들의 '덫'에 완벽하게 걸려들었다.

 '직원으로 등록하신 후 지출계좌로 업체에서 영업활동비 및 출장비, 영업지출 자료를 맞춰서 사용할 수 있게 해주시는 대가로 매일 지출계좌 하나당 5만원 일급을 지급받으십니다. 쉽게 말해서 업체에 영업지출 증빙용으로 쓸 계좌를 등록해주시면 됩니다.'

 "그저 아르바이트에 지원하는 기분으로 연락을 취했죠. 이런 식으로 세금을 감면받는구나 싶었죠. 서류상 직원으로 등재만하면 된다고 하길래…"



◇"안타깝지만 채용 마감됐습니다. 다른 일자리 비었는데"

 '안녕하세요. 저는 아웃소싱업체 상담사입니다. 고객님이 기존에 지원하신 업체는 채용이 마감됐습니다. 다른 아르바이트도 괜찮으신지 해서 연락드렸습니다.'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쉽게 말해 대포통장이 연계된 '금융범죄자'가 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지방대를 졸업한 이모(28·여)씨.

 그녀는 '간단 업무 알바'를 하겠다고 접근했다가 손쉽고 달콤한 고수익 유혹에 넘어가 사실상 자발적으로 심각한 금융범죄자가 된 케이스.

 상담사가 제시한 일은 간단했다. '심각한 범죄'란 걸 모를 리 없지만 그놈들이 알려준 수칙대로만 움직이면 '완전 범죄'도 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그놈들이 건네준 '체크카드'로 현금을 인출해서 자신의 계좌에 입금하고 명세표를 촬영해 인증하면 그만이었다. 한 장소에 10분 이상 머물지 말고 저축은행이나 우체국은 이용하지 말라는 수칙도 잘 지켰다. 그러다 불과 두 달 만에 그녀의 인생은 끝장이 났다.

 (이씨에게 접근한 '그놈'은 계약이 성사되자 체크카드를 보내기 시작했다. 건네받은 체크카드에서 현금을 인출, 자신의 계좌에 입금하면 '그놈'들이 이씨에게 건당 1만5000원씩 지급했다. 그녀가 경찰에 검거됐을 때 압수된 체크카드는 총 90여개. 어차피 발을 들여놨으니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식으로 범행이 누적된 결과다.)

 지난해 1월 시행된 전자금융거래법은 대포통장 명의인에게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자기 명의의 통장을 양도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 수위도 높아져 지난해 6월부터 통장 양도·대여자도 범법자에 준해 처리된다. 통장 양도 및 대여자도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가 적용되고 원칙적으로는 징역이 구형된다.

 수사기관 관계자는 "통장을 대여해주는 조력자도 앞으로는 처벌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될 것"이라며 "보이스피싱 같은 범죄를 실제 줄여나가기 위해서는 통장을 빌려주는 행위 자체도 엄히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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