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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산뜻하고 쓸쓸한 그 거짓말의 위로 …'최악의 하루'

등록 2016-08-24 09:09:38   최종수정 2016-12-28 17:3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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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손정빈 기자 = '최악의 하루'(감독 김종관)는 꼬여버린 로맨스에 관한 산뜻한 이야기다.

 말과 관계와 공간에 관한 재기발랄한 탐구로 볼 수도 있다. 하룻동안 벌어진 귀여운 1인 로드무비라고 봐도 무방하다. 어떻게 즐겨도 상관 없다. 다만 이 모든 걸 끌어안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그건 '최악의 하루'는 '위로의 영화'라는 것이다. 이 위로는 '괜찮아. 다 잘 될 거야'가 아닌 '그랬구나. 그럴 수도 있지'의 위로다. 쓸쓸해도 나쁘지 않다. '최악의 하루'는 그런 영화다.

 한 여자가 낮부터 밤까지 세 남자를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를 보면 몇몇 감독들의 영화를 떠올릴 수 있다. 홍상수의 몇 작품이 생각나고,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비포' 시리즈를 상상할 수 있으며, 장건재의 '한여름의 판타지아'가 머리를 스친다. '최악의 하루'는 바로 그런 영화다. 남자와 여자가 있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관계가 있으며, 그 관계는 대화 속에서 변화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들은 일종의 판타지와 함께 했다.

 '최악의 하루'는 이런 류의 영화에서 흔치 않게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해 들어가는 작품이다. 김종관은 홍상수보다 더 따뜻하고, 링클레이터보다 덜 낭만적이며, 장건재와는 다르게 조금 외롭다. 이 '포지셔닝'은 의도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감각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 감이라는 건 어디서부터 얼만큼 어떻게 어떤 '위로'를 건네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은희(한예리)처럼 그저 "긴 긴 하루였다"고, 밤의 공원 벤치에 앉아 한숨 쉬는 이들에게는 이 정도 위로가 딱이라고 느낀 김종관 감독의 '생(生)의 감각'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감각적이기만 한 건 아니다. 오히려 많은 부분에서 이성적이고 명확하다. 영화는 인물들이 머무는 공간을 아름답게 보여주는 것과 함께 그 장소들을 활용한 날카로운 은유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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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희와 남자들이 걷는 남산 산책로는 퇴로가 없다는 점에서 앞으로 은희가 처하게 될 상황을 은근히 드러내면서 그 의미를 관객에게까지 확장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산책로 중간쯤 벤치에 주저앉은 은희에게, 사방으로 이어지고 개방된 서촌 골목길에서 만났던 한 남자가 찾아온다는 설정 또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무조건 긍정하지 않으면서도 쉽게 냉소하지 않는 태도도 있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워스트 우먼'(Worst Woman), 최악의 여자다. 최악의 하루를 보낸 은희는 현오와 운철에게는 최악의 여자다. 물론 현오와 운철 또한 은희에게는 최악의 남자다. 극 중 인물들은 료헤이를 제외하고(어쩌면 료헤이도), 적당히 나쁘고 적당히 착한 사람들이다. 또 상대의 잘못은 이해할 생각은 없으면서, 나의 허물은 감싸주기를 바라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때 누군가는 "바람 부니까, 너 예쁘다?"라며 시덥잖은 추파를 던지고, 또 누군가는 "저는 행복해지지 않기로 했어요"라며 장광설을 늘어놓으며 작업을 건다.

 두 관계에서 적당히 줄타기를 하던 앙큼한 여자는 그 줄타기 때문에 스스로 모든 일을 망쳐버리고는 "하나님이 날 버리기로 작정했나봐요"하고 괜한 한탄을 한다. '최악의 하루'는 그들을 비난하고, 조소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런 거 아니냐고, 우리 다 조금씩 거짓말 하고 연기하면서 살고 있지 않느냐고, 완벽했다고 말할 수 있는 하루가 얼마나 되겠냐고, 그렇게 툭 한 마디 내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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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기해야 할 건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다. 일상의 공간들을 일상에서 벗어난 곳인 것처럼 카메라에 담아내는 김종관 감독의 능력은 이 부분에서 정점을 찍는다. 밤의 공원, 벤치, 두 사람, 목소리, 작은 소음만으로 영화는 외롭고 쓸쓸하지만 안도감이 드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어쩌면 그 분위기 자체가 위로를 전하는 이 영화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장담은 못하지만, 내일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아니면 어쩔 수 없고'의 그 위로 말이다.

 '최악의 하루'는 삶을 향한 재기발랄하면서도 쓸쓸한 찬가다. 주인공을 따라 서촌의 아름다운 풍경과 남산의 정취에 취해, 킥킥대면서 하루를 보내고, 밤이 오면 당신도 그들과 함께 생각에 잠길 것이다. 영화는 괜찮다고, 괜한 자기비하는 그쯤에서 그만둬도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지나간 일은 모두 좋은 추억이 될 거라며 어설픈 조언과 위로를 건네는 영화는 아니다. '최악의 하루'는 나도 오늘 힘든 하루를 보냈고, 오늘 정말 안 풀리는 날이었다고, 서로에게 털어놓는 그런 영화다. 그래서 그 '해피엔딩'이라는 말이 유치하지 않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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