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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첫날][종합]관가·기업들, 혼란 속 최대한 '몸사리기'

등록 2016-09-28 18:16:39   최종수정 2016-12-28 17:4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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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뉴시스】강종민 기자 =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이 본격 시행된 28일 국민권익위원회에 신설된 청탁금지제도과에서 조사관들이 폭주하는 법 위반 여부와 유권해석 전화에 응답하고 있다. 2016.09.28  [email protected]
정부세종청사 인근 외 주요 음식점들 직격탄 속 구내식당은 '북적'    기업들 긴장된 분위기 속 상황 예의주시…일부 "일자리 잃을수도"  '복지부동' 분위기에 부처 등 각 영역 적절한 업무진행 큰 차질 우려  

【서울=뉴시스】편집국 =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이 시행된 첫 날인 28일 관가와 기업 등 사회 각계는 전에 없던 새 법에 몸을 맞추느라 상당히 혼란스런 하루를 보냈다.

 아직 규정에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많은 탓에 시행 초기 판례가 될 수 있는 대상자가 되지 않기 위해 잔뜩 몸을 사리는 분위기다. 식사 약속을 최대한 자제하거나 아예 최소하는 등 잔뜩 엎드리는 이른바 '복지부동'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이번 법 시행이 가져올 후폭풍에 대해서도 상당한 우려와 궁금증을 내비치고 있다. 특히 이런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정부부처와 기업 등 각 영역에서 적절한 업무진행에 큰 차질이 빚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로 인해 기업활동 자체가 차단되는 사태에 직면했다는 목소리도 터져나오고 있다.

 ◇관가·정계는 비상, 구내식당 급증…"'시범케이스' 돼선 곤란"

 관가는 잔뜩 웅크린 채 시범케이스가 되지 않으려 조심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이날 정부서울청사와 국방부 등 정부부처의 구내식당은 평소보다 사람이 훨씬 많아졌다. 정부청사의 구내식당은 예약이 평소보다 50%가량 늘었다.

 국방부 관계자는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예전에는 2∼3명의 친한 기자들과 알음알음 점심 약속을 잡고는 했다"며 "일단 저녁자리는 피하고 있다. 28일 이후로는 아예 저녁 약속도 안 잡았다"고 말했다. 외교부 관계자도 "김영란법 적용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 하지만 내가 시범케이스로 걸리면 안 된다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청와대도 이 같은 분위기를 피해가기는 어려운 모습이다. 다른 정부기관보다 모범을 보여야 하는 만큼 직원들의 행동요령 등 내부 단속에도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점심식사라면 예전부터도 3만원 기준을 넘어서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술을 함께 하는 저녁식사 자리는 신경이 많이 쓰이게 되기 때문에 앞으로는 피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정부부처들이 밀집해있는 정부세종청사 인근 음식점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평소 같으면 식사를 하러 온 공무원들로 북적거릴 점심시간에도 손님은 절반 이하로 줄어든 모습이었다. 특히 일식집, 갈비집 등 비교적 메뉴 가격이 비싼 식당들은 거의 손님을 받지 못했다.

 이보다 가격대가 낮은 식당들도 영향을 받긴 마찬가지였다. 국토교통부 인근 한 삼계탕집 사장 김모(49)씨)는 "우리집은 가장 비싼 점심 메뉴가 1만5000원인데도 오늘부터 손님이 거의 안오다시피 한다"며 "도대체 정부가 이걸 왜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 가게가 다 망할 판"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반면 청사 내 구내식당은 오전 11시40분께부터 공무원들이 몰리기 시작해 식당 밖까지 대기줄이 이어졌다. 공무원들 사이에서 법 시행 첫 날인 만큼 가급적이면 청사 안에서 식사를 해결하자는 분위기다.

 기획재정부의 과장급 간부는 "(3만원의 식사도 허용되지 않는) '직접적 직무 관련성'에 해당되는 경우가 어떤 것인지 불분명하다"며 "예규라도 만들어서 내려줬으면 혼란이 적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역시 확 바뀐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날 6000원대 점심을 제공하는 국회의원회관 1층 식당에는 곳곳에서 의원실 관계자들이 많이 눈에 띄었고 국회 1층 본관 구내식당도 평소보다 식권이 많이 팔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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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뉴시스】함형서 기자 = 김영란법 시행 첫날인 28일 오후 대전 서구 대전정부청사 인근 음식점에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손님이 없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6.09.28. [email protected]
 국회 인근의 한 일식집은 회초밥·밑반찬·식사 등으로 구성된 김영란법 맞춤메뉴를 준비해놨다. 일부 당직자 등은 여의도에서는 보는 눈이 많은 것을 감안해 홍대나 합정 등 인근 다른 지역으로 가서 식사를 하겠다는 사람들도 나오고 있다.

 한 의원실 보좌관은 "아무래도 저녁 약속을 잡는 것은 부담스럽다"며 "점심위주로 약속을 잡고 있고 오늘 저녁에는 어떨까 싶어서 굉장히 저렴한 데로 잡고 보자고 했다"고 전했다.

 한편 정세균 국회의장이 이날 주재한 외신기자간담회에서는 1인당 3만3000원의 기자단 식대를 갹출하도록 했다. 참석자들은 테이블에 착석하면 의무적으로 식사를 해야한다는 것이 이날 행사의 원칙이어서 참석자들은 '더치페이'에 동참했다.

 이러한 가운데 김영란법의 주무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는 이른바 '멘붕'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법 위반 여부에 대한 유권해석을 묻는 질문들이 폭주해 초비상상태에 몰렸기 때문이다.

 권익위 관계자는 "이전부터 쌓여있는 수천 건의 문의를 순차적으로 답변해 나가는 일로 정신이 없다"며 "하지만 정확하게 답변을 해야하다 보니 질문자의 요구에 맞게 실시간으로 답변을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권익위에 따르면 즉각적인 해결을 위한 전화 문의 역시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다. 의 안내를 통하거나 권익위 내 청탁금지제도과로의 직접 문의도 계속되고 있다.  

 정부민원안내콜센터 110은 대부분이 통화 중이어서 연결이 어려운 상황이다. 110에는 7명의 김영란법 전문상담사가 대응하고 있지만 폭주하는 전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업들도 조심…"점심은 먹어도 저녁은 보류"

 주요 기업들 역시 대부분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등 조심스런 하루를 보냈다. 언론인들과의 접촉을 해야하는 홍보실 소속 임직원들은 법규정에 맞춰 행동을 하기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다만 기자들이나 업무 관련인사들과 점심식사는 대부분 3만원 이하에 맞춰 큰 문제없이 진행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술자리 등으로 이어져 법 규정을 훌쩍 넘길 수 있는 저녁자리 등은 가능한 한 피하고 있다. 기자실을 운영하는 일부 회사들은 기존과 달리 무료 주차를 허용하지 않는 등 변화된 풍경도 엿보인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김영란법 시행으로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며 "법규에 맞춰 식사를 하고 행동하면 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법에 정해진 대로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점심식사마저도 자제한 채 티타임으로 대체하는 곳도 있다. KT그룹 관계자는 "김영란법에 따라 기자들 대상의 구내식당 식권 제공은 28일부터 중단했다"며 "홍보팀은 당분간 기자들과 저녁 모임도 자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유통가에서도 고민은 비슷하다. 주류업계에서 통상적으로 해오던 제품 론칭 간담회 등도 김영란법 위반 소지가 있어 향후 제품 홍보에 난감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 때문에 홍보팀의 기업 내 위상이 갈수록 약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그나마 기업 홍보실은 형편이 나은 편이다. 홍보대행사들은 더 큰 비상이 걸렸다. 제품 홍보가 주 업무인 한 홍보대행사 직원은 "28일 이후에는 미팅 자체가 없는 상황이다. 제품을 소개하는 것 자체가 청탁으로 들어간다면 어떻게 일을 진행할 수 있겠는가"라며 "이러다 일자리를 잃는 것 아닌가하는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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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 첫날인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구내식당에서 공무원들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2016.09.28.  [email protected]
 정치인들이나 고위공무원, 의사, 교수들이 많이 찾는 호텔의 고급 식당은 울상이다. 롯데호텡릐 경우 전날인 27일에 비해 이날 예약률이 35%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당수 호텔의 관계자들은 "설마 설마했는데 정작 우려가 현실화되는 것 같다"며 초조해 하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에 주로 40∼50대 주부들이 주로 이용하는 백화점의 고급식당은 평소와 다름없이 붐비는 모습을 보여 대조됐다.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됐던 골프장은 일단 평소와 다름없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당분간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분위기다. 한 골프장 관계자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가 된다면 김영란법의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수사 대비에 긴장…대학가·공연계 혼란

 이번 법 시행에 따라 '최일선'에서 신고 접수와 수사를 맡게 될 경찰조직도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관련 신고와 각종 고소·고발장 접수에 따른 수사부터 공직자로서 법 준수를 위한 내부 기강 확립까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챙겨야하는 상황이다.

 특히 정보 담당 형사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관가와 기업체 주변 등을 탐문하며 김영란법 위반 여부를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서면신고서를 제출한 경우에만 수사에 착수한다는 것이 원칙이어서 경찰관이 음식점, 결혼식·장례식장 등에 출동해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일은 거의 없을 전망이다.

 서울의 한 경찰관은 "가장 큰 문제는 김영란법 수사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될 수 있다는 점"이라며 "시행 초기 수사과정에서 혼란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대학가도 비상이 걸렸다. 조기 취업을 한 학생이 취업계를 내면 강의에 나오지 않아도 출석으로 인정해주던 대학의 '관행'도 저촉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교수의 재량으로 취업 학생들을 배려해주던 대학가는 학칙 개정 등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미취업학생들과의 차별문제도 고심해야 할 부분이다.

 이화여대 자연과학대학 4학년 이모(25)씨는 "어렵게 취업한 학생에게 다른 학생들과 수업일수를 똑같이 채우라고 요구하는 건 너무하지 않느냐는 생각"이라고 우려했다.

 같은 대학 사회과학대의 한 교수는 "예전엔 4학년 학생이 찾아와 부탁을 하면 과제로 대체를 하라는 방식으로 들어줬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대부분의 티켓 값이 선물 상한액인 5만원을 넘어서는 뮤지컬, 클래식음악 공연 제작사 관계자들도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대형 뮤지컬 등의 기업 구매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고 각종 지방 축제, 영화제들은 무료 티켓도 없애면서 흥행을 고심하고 있다.

 한 오페라 제작사 관계자는 "기업이 티켓 구매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제작비를 충당해가는 데 상당한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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