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방 다이어트, 따라해도 되나]①버터·삼겹살 마음대로 먹고 살뺀다?

등록 2016-10-24 13:30:00   최종수정 2016-12-28 17:4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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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전신 기자 =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가 유행중인 17일 서울 중구 한 대형마트에서 직원이 버터 제품을 채워 넣고 있다. 2016.10.17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1. 지난 18일 밤 서울 중구의 한 대형마트를 찾은 회사원 김지훈(38)씨. 재빨리 버터 판매 코너로 달려갔다. 그러나 주인공인 '버터'는 여전히 하나도 없었다. 대신 '버터가 품절됐습니다. 최대한 빨리 입고하겠습니다"는 안내문만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허탈해진 김씨는 서울 용산구의 다른 대형마트로 향했다. 그러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김씨는 '꿩 대신 닭'이라는 심정으로 '치즈'를 여러 개 잡아든 채 마트를 나서야 했다.

 #2. 여대생 이모(22)씨는 요즘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밥 먹기가 한결 편해졌다. 예전 같으면 젓가락도 대지 않았을 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밥은 전혀 안 먹고, 비스킷 한두 조각만 먹는 것은 예전과 같다. 하지만 초식동물처럼 '풀'만 씹어야 했던 이전과 달리 육즙을 만끽하는 여유를 누리고 있다.

◇지상파 방송, 고지방 다이어트를 말하다

 지난 9월 MBC TV가 방송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MBC 스페셜- 밥상, 상식을 뒤집다? 지방의 누명'이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전체 식사량 중 탄수화물 비중을 줄이는 대신 양질의 지방을 마음껏 섭취하는 ‘저탄수화물 고지방 식이요법’을 벌여 다이어트에 성공한 것은 물론 건강까지 되찾은 각국 사람들을 소개했다.

 그 즈음 다른 지상파 방송사인 SBS TV도 비숫한 내용을 방송했다. 오후 8시 메인뉴스의 '연속보도- 지방의 역설'이다 이 방송사는 미국 하버드대 연구 결과를 근거로 "지방을 먹어야 살이 빠진다" "저 지방 식단이 비만 부른다고 부르짖으며 지금까지 살이 찌는 지름길로 여겨져 기피되던 지방을 많이 섭취하라고 강조했다.

 그럼 '고지방 다이어트'는 도대체 무엇인가. 정확히는 '저탄수(화물) 고지방 다이어트'다. 그동안 다이어트를 위해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물로 여겨지던 삼겹살, 버터, 치즈 등을 오히려 권장하는 식이요법이다. LCHF(Low Carb Hihg Fat)나 케토제닉(ketogenic) 다이어트라고도 불린다. 스웨덴에서는 이미 10년 전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하루 음식을 먹을 때 지방 70%, 단백질 20%, 탄수화물 10% 비율로 먹도록 한다.

 저탄수 고지방 다이어트를 다룬 방송 프로그램들은 지금까지 다이어트의 특효처럼 믿어지던 '저지방 다이어트'가 잘못된 실험 결과와 해석 오류에서 기인했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고기와 버터, 치즈를 배불리 먹으면서도 30~90㎏까지 감량한 실제 사례들을 소개하고 저명한 해외 연구자들의 인터뷰를 곁들여 주장을 뒷받침했다. 'MBC 스페셜'에서 소개한 톰미 누네손씨는 한 끼 식사에 버터와, 치즈 각 100g 이상씩을 섭취하는 저탄수화물 고지방 식이요법으로 불과 2개월 만에 무려 15㎏을 감량했다. 그는 방송에서 "지방은 열량이 높지만 살을 찌게 하는 것이 아니다. 설탕을 먹는다고 해서 달콤한 사람이 되지 않는 것처럼 (섭취한) 지방이 몸에 그대로 쌓이는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국내 사례도 있다. 방송에서 소개된 사례는 아니지만, SBS TV 월화 사극 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에서 주인공 '왕소'를 맡은 탤런트 이준기가 이 드라마에 출연하기 위해 저탄수 고지방 다이어트로 짧은 기간 무려 15㎏을 감량한 사실이 인터뷰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저탄수 고지방 타이어트 열풍에 기름을 끼얹었다.  

◇공공의 적, 지방에 볕 들었네

 남다른 영향력을 가진 지상파 방송사가, 그것도 한 곳이 아니라 두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지방 예찬론'을 부르짖자 시장이 급변했다.

 건강과 다이어트에 해로운 '기름 덩어리'로 폄하되고, 무조건 멀리해야 할 것으로 여겨지던 동물성 지방의 대명사 버터를 사기 위한 발길이 대형마트로 향했다. 버터를 장바구니에 가득 담은 손님들은 이어는 정육 판매 코너를 찾았다. 돼지 삼겹살도 구매하기 위해서였다. 삼겹살은 지방 함유량이 많다는 이유로 각종 회식이나 어쩌다 가는 캠핑장에서나 먹지 집에서는 가급적 피하는 식재료였지만 그건 옛날 얘기였다. 뒤늦게 고지방 다이어트를 알게 된 사람들도 대형마트로 향했다. 그러나 먼저 온 사람들이 톡톡 털어간 덕에 늦게 온 사람들은 '버터의 사촌 동생'격인 치즈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실제 이마트에 따르면, 버터와 삼겹살 매출은 방송이 나오기 전인 9월 중순 이전까지만 해도 감소 추세에 있었다. 8월19일∼9월18일 전국 이마트 매출을 보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버터는 19.2%, 삼겹살은 7.9%가 각각 줄어든 상태였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들이 '고지방 다이어트' 효과를 소개하고, 이런 내용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회자하면서 분위기가 급반전했다. 지난해 동기 대비 9월19일∼10월20일 매출은 버터가 49.6%, 치즈14.9%, 삼겹살11.8%이 각각 뛰어올랐다. 이와 달리 식생활 변화로 가뜩이나 매년 매출이 줄고 있는 쌀은 -11%에서 -29.9%로 역신장세가 더욱 심화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1번가의 경우 9월26일부터 10월4일까지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올리브유 333%, 버터 882%, 마카다미아 161%, 삼겹살 288%이 각각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오픈마켓 G마켓에서도 9월19일~10월12일 고지방 식품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평균 170% 상승했다. 버터가 450%로 가장 많이 올랐고, 마카다미아·헤이즐넛 등 견과류(116%), 치즈(106%) 등도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올리브유(99%), 우유·유음료(69%), 돈육(69%) 등도 판매량이 늘었다.

 모두 고지방 다이어트를 한 번 해보기 위해 갖가지 '기름 덩어리'들을 앞다퉈 구입한 사람들 때문이다.

 버터 품귀 현상은 당분간 지속할 전망이다. 생산업체가 롯데푸드, 서울우유 등 극소수인 탓이다. 수입 브랜드도 많지 않다. 버터를 안 먹는 시장 분위기상 생산이나 수입하는 업체가 적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가공버터를 제조하고 있는 업체의 경우 최근 생산 설비를 신규로 교체해 생산량을 최대로 증가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문량의 40~50%만 소화하고 있을 정도로 주문량이 많아졌다.

 수입사들은 기존 선박으로 수입하던 것을 긴급하게 항공으로 바꿔 급증한 수요를 일단 메꾸고 있다.

 그나마 치즈는 그간 버터 만큼 찬밥 대우를 받은 것이 아니어서 생산·수입업체가 많은 덕에 한동안 '무주공산(無主空山)'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할 것으로 보인다.

 이마트 신원모 버터·치즈 바이어는 "치즈는 그나마 상황이 나아 업체별 행사를 열지만 버터는 행사 계획조차 세울 수 없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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