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향기와 예술에 취해보세요…가볼 만한 전시회

등록 2016-10-24 11:00:00   최종수정 2016-12-28 17:4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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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유상우 기자 = 바쁜 일상에 문득 쉼표를 찍고 싶다면 꼭 한번 들러볼 만한 곳이 있다. 은행잎이 샛노랗게 물든 삼청로를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국제갤러리, 경복궁역 인근 대림미술관, 경복궁역에서 자하문터널을 지나자마자 왼쪽에 자리한 서울미술관 등이다. 삭막한 일상에 찌든 마음을 정화하고, 재충전하고 싶다면 이곳에서 열리고 있는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태원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리는 전시도 추천한다.

 ◇국제갤러리 = 추상화가 최욱경(1940~1985)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최욱경이 미국에 체류한 1963년부터 1978년까지 제작된 회화 작품 70여 점이 걸려있다.

 미국에 체류하던 초기작품은 자유분방한 붓질과 강렬한 원색의 대비가 특징이다. 추상표현주의라는 서구 양식의 영향을 기반으로 한 자신의 조형양식을 찾아가는 실험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1963년 서울미대를 졸업한 이후 미국 크랜브룩 미술학교에 입학했던 당시 미국 미술 화단은 추상표현주의가 지배했던 1940~1950년대 영향으로 이 사조를 기반으로 한 서구 근대 미술이 정립된 시기였다.

 그의 1960년대 초기에 나타나는 배경과 그림의 구분이 모호했던 작품 경향은 후반으로 갈수록 뚜렷한 색면의 배경 위에 다이내믹하고 유기적인 획의 조화를 추구하며 미묘한 공간감을 형성하게 된다. 유기적인 선으로 소묘적인 성격도 엿볼 수 있는 인체 크로키나 인체 표현도 시도했다. 자화상이나 작가의 가족들을 그린 초상화에서는 그의 서정적인 감성이 드러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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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상회화를 통해 형상을 지웠다면 1960년대 후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선보인 일련의 콜라주 작업에서는 작가의 조형적 고민과 함께 ‘형상’의 귀환을 목격할 수 있다. 1968년을 전후해 발생한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암살, 인종 차별과 흑인 폭동, 베트남 전쟁 등 일련의 역사적, 사회적 사건에 작가는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작품으로 반응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한국의 단청, 민화 등의 전통적인 색감과 뉴멕시코의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본격적으로 색채에 대해 실험했다. 그는 1971년부터 약 3년간 한국에 거주하면서 서예와 민화를 연구한 것에 기인해 작품에서 한국적인 소재인 까치, 호랑이, 용 등을 주제로 다루고 단청의 색을 사용했다.

 아울러 당시 사회적, 정치적인 격변기를 지나고 있는 한국의 사회현실이 자연스레 반영됐으며 작품재료로서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장판지, 문창호지, 먹, 안료, 색연필 등을 더욱 다채롭게 활용됐다.

 최욱경은 가장 미국적인 사조인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으로부터 시작했으나 색채와 형태에 관한 깊이 있는 연구를 지속, 독자적인 화법을 만들고자 시도했다. 이 시기 작품에 드러나는 한국적 구도와 색깔, 재료의 독창성은 그만의 한국적 정체성을 반영하고 있다. 이는 훗날 1979년 한국에 정착한 이후 한국의 자연을 작품의 주요 소재로 다루는 것으로 이어지게 된다. 최욱경은 45세에 심장마비로 요절했다. 전시는 3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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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림미술관 = 세계적인 사진가 닉 나이트의 사진과 영상 110여 점을 볼 수 있다. ‘거침없이, 아름답게’란 제목으로 열리는 이 전시는 다큐멘터리적 시선부터 사회적 메시지를 포용한 패션캠페인, 디지털기술을 결합한 작품 등 닉 나이트의 작품을 망라했다.

 닉 나이트는 사진과 디지털 그래픽 기술의 결합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시도한 1세대 작가다. 그는 다큐멘터리와 패션 사진, 디지털 영상 등에서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해 2010년 대영제국훈장을 받았다

 전시장에는 1982년 사진집으로 출간된 이후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스킨헤드(SKINHEADS)’ 100명의 셀러브리티를 촬영한 ‘초상사진(PORTRAITS)’ 시리즈, 요지야마모토와 질샌더 등 패션디자이너와 오랜 기간 함께 작닉 나이트의 업한 ‘디자이너 모노그래프(DESIGNER MONOGRAPHS)’ 등이 걸려있다.

 아름다움의 전형적 가치관에 도전하는 ‘페인팅&폴리틱스(PAINTING & POLITICS)’, 정밀한 질감과 섬세한 표현력으로 회화와 사진의 경계를 허무는 ‘정물화&케이트(STILL LIFE & KATE)’, 알렉산더 맥퀸과 오랜 협업을 회고하는 영상과 3D 스캐닝 등 실험적 표현기법을 결합한 최신작들로 구성된 ‘패션 필름(FASHION FILM)’ 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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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나 자신과 내가 하는 일을 믿어야만 한다. 그것은 오만한 믿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내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것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그 누구도 다른 이들이 만든 잣대에 자신의 삶을 맞춰 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전시는 내년 3월 26일까지다.

 ◇서울미술관 = 국내외 작가 24명이 참여한 기획 전시 ‘비밀의 화원’이 열리고 있다. 회화와 사진, 설치 등 다양한 현대 미술 작품 75점을 들여놨다.

 전시 제목은 영국 작가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1849~1924)의 동화에서 빌려왔다. 주인공 메리가 비밀의 화원을 가꾸며 주변 사람들과 함께 성장해 나간다는 내용을 미술 작품으로 풀어냈다.

 전시는 ‘아무도 남지 않는다’ ‘문은 천천히 열렸다. 천천히’ ‘비밀스런 연극놀이’ ‘환상의 뜰’ 등 4개의 섹션으로 나눠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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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풍경을 재현한 듯 눈발에 가린 창밖의 이미지로 아련함을 자아낸 윤병의 ‘윈도즈(Windows)’(2014)를 시작으로 캔버스에 바른 석회를 긁어내는 프레스코 기법으로 상처를 치유하길 갈망하는 현대인의 바람을 식물로 표현한 김유정의 ‘온기’ 시리즈(2016), 아슬아슬한 연극적인 무대 위에 보이는 등장인물 간의 교란과 단절로 생과 사의 모습을 담은 염지희의 콜라주 작품 등을 만날 수 있다.

 생화와 조화를 한 화면 안에 담아 살아있음과 허구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담은 박종필의 ‘비트윈 더 프레시(Between the fresh)’ 시리즈(2016)와 사진으로 담아낸 듯한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 꽃과 과일의 아름다움 속에서 삶의 여러 가치를 담은 마크 퀸의 ‘실크 로드(Silk Road)’(2010) 등도 있다.

 ‘오즈의 마법사’를 모티브로 유년시절의 추억을 담은 정원의 ‘도로시의 꿈’ 연작도 감상할 수 있다. 자연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포착한 이명호 ‘트리(Tree)’ 시리즈를 통해서는 예술이 그동안 꿈꿔온 이상적인 자연을 작가들이 어떻게 고민해왔는지 사유하게 된다.

 또 브로콜리로 이루어져 동화 속에나 나올법한 숲의 모습을 담은 이슬기의 ‘어나더 네이처(Another Nature)’는 세상과 단절돼 환상이 깃든 비밀스러운 숲을 걷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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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도 있다. 무나씨의 작품을 통해 인물 간 관계가 확장돼가고 이를 통해 성장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고, 전현선의 회화 작업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전설 속 ‘뿔’의 모습에서 다양한 관계 맺음과 그사이의 조화를 흥미롭게 생각해 볼 수 있다.

 김태동의 ‘데이 브레이크(Day Break)’ 시리즈에서는 인간 본연의 쓸쓸함과 고독, 외로움을 고찰하고, 안준의 자화상을 담은 사진에서는 경계에 선 인간의 아찔함, 그리고 새로운 관계 앞의 두근거림과 설렘,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전시는 관람객이 오감으로 예술 경험을 할 수 있는 기법을 전시장 곳곳에 적용해 보는 재미를 더했다. 동화를 배경으로 흥미로운 스토리 텔링을 기반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했으며 공간마다 해당 주제에 맞는 공간 디자인을 했다.

 특히 전시된 작품과 어우러지는 향기를 곳곳에 설치, 관람객을 유혹한다. 향기는 자연에서 추출된 원료를 사용했다. ‘비밀의 화원’에는 내년 3월 5일까지 들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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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미술관 리움 = 아이슬란드계 덴마크 출신인 올라퍼 엘리아슨의 조각, 설치, 사진, 회화 등 작품 22점을 맛볼 수 있다. ‘세상의 모든 가능성’이란 주제를 내세운 이번 전시는 작가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1990년대 초부터 최근까지의 대표 작품으로 구성했다.

 북부 아이슬란드의 순록 이끼를 전시장 벽에 설치한 ‘이끼 벽’(1994),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폭포를 통해 자연과 문명 간의 미묘한 대립을 드러내는 ‘뒤집힌 폭포’(1998), 거울 같은 광택을 낸 마름모꼴의 스테인리스 스틸 판과 그것의 반영이 만들어 내는 만화경과 같이 이미지들이 펼쳐지는 ‘자아가 사라지는 벽’(2015) 등이다.

 원의 중심에 같은 크기의 원을 직각으로 놓음으로써 만들어지는 올로이드(oloid)라는 기하학적 형태에 반짝이는 삼각형의 황동 판들을 중첩하고, 중심에 전구를 설치해 신비로운 빛을 반사하는 ‘사라지는 시간의 형상’(2016), 검은 바탕에 천여 개의 유리구슬로 이루어져 우주에서 관찰되는 성운을 연상하게 하는 ‘당신의 예측 불가능한 여정’(2016)도 볼거리다.

 지름이 13m에 달하는 원형 구조물에서 분사되는 물방울과 천장의 조명기구 빛으로 만들어지는 무지개를 감상할 수 있는 ‘무지개 집합’(2016)도 있다.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예술가 중 한 명인 올라퍼 엘리아슨은 자연, 철학, 과학, 건축, 사회, 정치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예술의 새로운 개념과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품은 미술관과 같은 인공적인 공간에서 만나게 되는 물, 바람, 이끼, 돌과 같은 자연요소와 기계로 만들어진 유사 자연 현상, 빛과 움직임, 거울을 이용한 착시효과, 다양한 시각 실험 등을 특징으로 한다. 내년 2월 2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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