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는 건설 한류⑧]홍정석 삼성물산 상무 "싱가포르 T307수주, 가격보다 기술·소통이 주효"
【싱가포르=뉴시스】이승주 기자 = "기술력은 물론이고, 주변과 소통하는 능력까지 크게 요구되는 어려운 현장입니다." 지난 20일 삼성물산이 싱가포르에 시공하고 있는 지하철 공사현장에서 만난 홍정석 삼성물산 T307현장소장은 이곳을 이렇게 소개했다. T307현장은 싱가포르 북부지역과 창이공항 인근 지역을 연결하는톰슨 이스트코스트라인 지하철공사 프로젝트 중 한 구간이다. 총 43㎞ 길이의 지하철 라인 중 싱가포르 동남부 마린 퍼레이드 지역에 해당된다. 삼성물산은 이곳에 2684m 길이의 TBM터널과 343m 규모의 개착식터널, 지하 2층 규모의 정거장 1개를 지을 계획이다. 이는 공사비 4500억원(3억9300만 달러)에 달하는, 톰슨 이스트코스트 전 구간 중 초대형 프로젝트다.
착공에 돌입한지 곧 만 2년이 되어가지만, 그렇다기에는 공사가 진행됐다고 보기 어려웠다. 지하철 공사라는데 땅을 판 흔적은커녕 기껏해야 도로만 조금 정리했을 뿐이었다. 이런 현장을 둘러보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기자에게 홍 상무는 "이곳은 매립지여서 지반이 굉장히 약합니다. 직경 6m가 넘는 기기로 지하공간을 뚫으며 전진하면 싱크홀이 발생하거나 건물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어요. 이같은 본 공사도 어렵지만, 이보더 더 중요한 것은 공사를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현장 주변을 둘러본 뒤에야 이 말이 조금은 이해했다. 이곳은 서울로 비유하자면 강남대로 한복판과 같은 곳이다. 호텔이나 대형 빌딩, 고급주택 등이 현장 주변을 빼곡히 둘러싸고 있었다. 다른 곳보다 유난히 차량과 인구 유동량도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지하를 대형장비로 뚫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홍 상무는 "땅을 파기에 앞서 주민들이 이용하는 차로나 도로를 새로 확보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합니다. 인구가 많다보니 지하에 전선과 같은 유틸리티와 드레인박스 등이 꽤 매설돼 있어요. 이 유틸리티를 소유한 유관기관과도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이런 준비에만 만 2년을 써야 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보니 주민과 관계기관의 협조가 요구됐다. 삼성물산이 이를 위해 꺼내든 카드는 '주민설명회'다. 홍 상무는 지역 관계자와 주민 등을 초청해 정기적으로 주민설명회를 연다. 다음주에는 어떤 대형장비를 투입할지, 그래서 얼마나 큰 소음이 발생할 수 있는지 미리 양해를 구하기 위해서다. 지금의 2차선을 어디로 옮길지, 그 과정에서 신호등과 횡단보도 위치도 바뀔 수 있어 아이들 보행안전에 각별히 조심해 줄 것을 당부하기도 한다. 그는 "이런 도심에 장장 88개월이란 긴 시간 동안 지연없이 공사를 마치려면 무엇보다 주변협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현지직원으로 구성된 커뮤니케이션 담당 팀도 꾸렸죠. 이 PR(Public Relationship)팀은 주민설명회는 물론 집집마다 방문하고 인사하는 등 주민들과 소통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런 노력이 통했을까, 2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자 이제 주민들이 먼저 다가오기 시작했다. 홍 상무는 "처음에는 통행이 불편해지고 소음도 심하니까 공사반대와 민원제기도 심했어요. 그런데 점점 저희를 이해하는 주민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오히려 지역 주민들이 저희를 도와 줄 정도가 됐으니까요. 저 건너편에는 주말이면 교인 약 2000명이 몰리는 대형 교회가 있어요. 매번 민원만 넣던 주민들이 어느 때부터 저희를 챙겨주기 시작하더라고요. 행사에 초청하거나 식사를 대접하는 식으로요. 심지어 현장직원 머리도 무료로 잘라줄 정도로 친밀해졌지요. 전 총리이자 이곳 지역구 국회의원인 고척동(吳作東)도 이런 주민관계 개선에 협조해 줄 정도"라고 말했다. 삼성물산은 이같은 소통능력이 가격경쟁력을 누른 힘이라고 봤다. 실제로 이 현장 입찰에는 삼성물산을 포함 5개 업체가 참여했다. 호주와 국내 대형건설사는 물론 낮은 가격을 써낸 중국업체도 뛰어들었다. 삼성물산은 이들 업체 중 가장 높은 가격을 써냈다. 그럼에도 최종 시공사로 단독 선정됐다. 싱가포르 육상교통청(LTA)이 그동안 발주한 공사 중 '가격꼴찌' 업체가 시공권을 획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홍 상무는 "기술력이 뛰어난 글로벌 업체는 많습니다.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및 로컬 업체도 있었죠. 하지만 긴 공사기간 동안 지역 주민을 설득하고 관계기관과도 원활히 소통할 수 있는 업체는 많지 않습니다. 발주자인 LTA가 저희의 그런 소통능력을 높게 산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것이 가장 저가를 써낸 업체보다 싱가포르 달러 3500만불을 더 주면서까지 삼성물산을 선택한 이유가 아닐까요. 요즘 LTA관계자를 만나면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전에도 앞으로도 저희같은 '가격꼴찌'를 시공사로 채택하는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요"라며 웃었다. [email protect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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