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방 같은 미술관...하룬 파로키-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독일 영화감독-비디오아트 거장 하룬 파로키 회고전노동의 싱글 숏, 인터페이스 등 대표작 9점 소개전시연계 토크 강연...파로키 영화도 48편 상영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하룬 파로키는 노동, 전쟁, 테크놀로지의 이면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세계를 지배하는 이미지의 작용방식과 함께 미디어와 산업기술이 인간에게 미치는 폭력성을 끊임없이 비판해왔다." 독일 영화감독이자 비디오 아트 거장 하룬 파로키(1944~2014) 회고전이 국내 처음으로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은 '하룬 파로키–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타이틀로 '노동의 싱글 숏', '인터페이스' 등 파로키 대표작 9점을 소개한다. 미술관에서 영화감독 작품 소개는 지난 2015년부터 진행했다. '필립 가렐', '요나스 메카스' 등 현대 영화사의 중요한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로 재구성하는 프로젝트다. 하룬 파로키는 노동, 전쟁, 테크놀로지의 이면과 함께 이미지의 실체를 추적해온 영화감독으로 이미 뉴욕 MoMA(2011), 런던 테이트모던(2009.2015), 파리 퐁피두센터(2017) 등에서 소개된 바 있다. 하룬 파로키는 1944년 인도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인도, 인도네시아를 거쳐 서베를린으로 이주, 1966년 첫 단편영화 '두 개의 길'을 선보이고 베를린 영화아카데미 1기 입학생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1969년, 자신의 동지들인 볼프강 페터센, 귄터 페터 슈트라쉑, 홀거 마인스등과 함께 정치적 활동을 이유로 학교에서 퇴학당한다. 당시 하룬 파로키의 영화는 상황주의와 누벨바그, 다이렉트 시네마의 영향을 주로 받았다. 1969년에 저예산영화 '꺼지지 않는 불꽃'을 제작했고 1970년대에는 마르크스의 자본론를 영화화하며 ‘영화를 과학적으로, 과학을 정치적으로 만드는’ 프로그램을 시도했다. 또한 WDR텔레비전 채널에서 '글라스하우스'라는 이름의 TV 시리즈를 제작하면서 1973년 '이미지의 난점: 텔레비전 비평'이라는 제목으로 방송에 등장하는 단어와 이미지의 관계를 조사하면서 텔레비전 비평을 했다. 1979년에서 2000년까지 텔레비전 방송국의 제작지원으로 '당신의 눈앞에서 – 베트남'을 비롯한 많은 작품을 만들게 되며, 1984년 폐간될 때까지 10여 년간 비평잡지 (필름크리틱)의 저자이자 편집자로 참여했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테오도르 아도르노와 브레히트의 영향을 받은 하룬 파로키는 파시즘과 산업경제와의 관계를 조사하면서 '두 전쟁 사이에서', '이미지-전쟁', '세계의 이미지 그리고 전쟁의 각인'과 같은 작품들을 만들었다. 그는 관찰자적인 다큐멘터리 방식을 거부하고 기존의 이미지들을 해체하고 분석하면서 이미지의 운동성과 그 속의 역사성을 읽어나갔다. 독일 독립영화계에 닥친 위기로 인해 독립영화의 배급도 어려워지기 시작한 1990년대에 하룬 파로키는 미술관의 전시형태로 그의 작품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1995년 '인터페이스'가 2채널로 전시된 것을 시작으로 1996년 ‘도큐멘타 X’에서 그의 작품 '정물'이 전시되었다.
2000년대부터 하룬 파로키는 보다 본격적으로 전시를 목적으로 한 작품들을 많이 제작하기 시작했다. '비교', '110년간의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과 같은 노동의 이미지를 배열한 작품, 산업, 군사, 기술, 세계정세가 연관된 이미지의 세계를 분석하는 그의 작품들이 세계 곳곳에서 전시형태로 소개됐다. 그는 부인인 안체 에만 큐레이터과 함께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노동의 싱글 숏' 프로젝트를 15개 도시에서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는 그의 사후 이후 2017년부터 안체 에만에 의해 다시 촬영하여 3개의 도시가 추가되었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노동의 싱글 숏'(2011-17)은 작가 생전에 제작된 15개의 영상과 더불어, 2017년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서 추가로 제작된 영상이다. 생존을 위해 일하는 16개 도시 사람들의 노동을 바라보며 인간이 공통으로 직면한 현실을 직시하게한다. 인위적인 편집이 배제된 하룬 파로키의 노동 이미지는 픽션이나 다큐멘터리로 분류되지 않으며 정치적 선전의 도구도 아니다. 작가는 '노동의 싱글 숏'을 통해 관람객들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노동 자체를 바라보게 한다. 작가는 영화를 통해 의미를 생산하는 이미지와 이렇게 생산되는 이미지의 정치·사회적 맥락을 지속적으로 분석해왔다. 그가 처음 전시 목적으로 제작한 작품 '인터페이스'(1995)는 그의 에세이 다큐멘터리들을 2채널 모니터로 재생시켜 두 이미지 사이에 일어나는 현상들을 분석한다. 두 대의 모니터에서 보여주는 각기 다른 노동현장의 기록은 당시의 지정학적 맥락과 함께 자본과 노동의 관계를 말해준다. '평행 I – IV'시리즈(2012-14)는 컴퓨터 그래픽이미지를 분석하여 현실과 이미지의 관계를 조명한다. 전시를 기획한 김은희 학예연구사는 "하룬 파로키는 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현상들의 배후를 치밀하게 조사하고 현 세계를 지배하는 힘에 편승한 이미지의 실체를 추적하며 영화를 포함한 현대예술이 반이성의 시대에 이성을 회복하는 역할을 하길 바랐다"면서 "영화를 통해 이미지를 조합하고 해체하여 우리가 간과한 낯선 세계를 발견하게 해주는 파로키의 작품은 우리 삶의 조건들을 냉정하게 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한다"고 소개했다.
MMCA 서울 6, 7전시실, 미디어랩에서 펼친 전시는 게임방이나 영화방처럼 연출됐다. 어두운 공간속 푹신한 의자도 놓여있어 편안하게 작품을 감상할수 있다. 전시와 연계하여 세계적인 영화학자인 레이몽 벨루(프랑스)를 비롯해 에리카 발솜(영국), 톰 홀러트(독일), 크리스타 블륌링거(오스트리아) 등의 강연이 진행된다. 11월 14일부터는 하룬 파로키의 영화 48편이 MMCA 서울 필름앤비디오(MFV) 영화관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