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인터뷰]스테판 피 재키브, 문학 같은 바이올린···외로움 더는
빠듯한 일정 가운데도 하버드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책 읽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매일 달리기도 빼놓지 않고 있다. 무대에서 매번 흐트러짐 없이 연주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최근 삶과 연주에 여유가 생겼다. 감동의 총합은 같지만 결이 달라졌다. 20대 연주가 빽빽한 밀도를 선사했다면, 30대 들어서는 연주에 여백이 생겼다고나 할까. 재키브는 "30대가 되니, 조금은 차분한 면이 생겼고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됐어요"라며 웃었다. 21, 22일 KBS 교향악단과 협연한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이 보기다. 그가 이 곡을 차음 배운 것은 대학교 1학년 열 여덟 살 때다. "그 때는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이 로맨틱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각지고, 샤프한 느낌이 들어요. 희망이 없고 허무한 느낌이죠." 12월20일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여는 공연 '크레디아 스타더스트 시리즈 Ⅴ'도 재키브의 다른 결을 엿볼 수 있는 무대다. 이날 1부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27)와 듀엣 무대를 꾸민다.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듀엣, 프로코피예프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를 연주한다. 2부에서는 피아니스트 지용(27)과 듀오 공연한다. 두 연주자는 지난해 브람스-슈만-클라라 슈만의 삼각관계를 세 작곡가의 곡으로 풀어낸 공연으로 주목 받았다. 이번에는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26번을 선택했다. 재키브는 모차르트가 인간적이라고 봤다. "모차르트 이전 작곡가들은 추상적이고 종교적인 곡들을 썼어요. 반면 모차르트는 기쁨, 유머, 그리움, 슬픔 등 인간의 감정을 잘 활용하는 작곡가였죠. 그래서 드라마틱한 긴장감이 있고, 아주 특별함이 있어요." 재키브는 작곡가뿐만 아니라 함께 무대에 서는 연주자를 통해 배워가는 기쁨도 누리고 있다. "매번 특별한 창으로 음악과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아요." "이번에 대니 구, 지용도 마찬가지일 것이지만, 연주자들에게 감정적으로 영향을 받아요. 하지만 제 정체성은 잃지 않죠. 상대방과 만남에서 이해하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본인이 중심이 잡혀 있어야 그 교감이 가능하기 때문이에요."
한국에서 자신의 이름과 성 사이에 '피'를 넣어 활동하는 재키브가 외할아버지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플루트 플레이어'다. 본인처럼 클래식음악 연주자를 다룬 작품이고, 그가 가장 먼저 읽은 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재키브는 외할아버지 수필을 읽으면 어머니의 어린 시절을 직접적으로 상상할 수 있어 좋다며 웃었다. "엄마가 어린이였을 때의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는 없잖아요. 외할아버지 덕분에 '엄마가 외할아버지에게 이런 존재였구나'라는 걸 알 수 있죠." 외할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는지 글솜씨도 빼어난 그다. 자신의 음악은 문학 중 어떤 장르에 가까울까. 캐모마일차가 담긴 유리컵이 놓인 탁자 한편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고민하던 그는 "음악이라는 것이 추상적이기 때문에 아마 '시'라는 답이 맞을 것 같아요"라고 했다. 감정선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소설이 더 알맞을 것 같다고도 했다. 특히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픽션을 꼽았다. 이런 분야에 일가견이 있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69)를 좋아하는 이유다. "하루키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써요. 주로 젊은 남자가 영혼을 찾아가는 것이 줄거리죠. 현실을 다루다가 그것과 동떨어진 판타지스런 상황도 나와요. 그런 부분이 마음에 들고 제 음악을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노르웨이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50)의 자전소설 '나의 투쟁'도 언급했다. 3622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인데, 진력날 정도로 상세한 묘사가 기묘한 독서체험으로 이끈다. "수치스럽고 사적인, 날 것의 부분을 모두 털어놓는 소설이에요. 연주자 역시 마찬가지죠. 무대에 오르면 숨을 곳도 없고 모든 것을 보여줘야라니까요. 그런 열려 있는 상황이 비슷하죠. '나의 투쟁'을 읽고 '나는 홀로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요." 재키브는 음악 또한 글처럼 보편적인 언어라는 점을 강조했다. "청중이 공감함으로써, 덜 외로워질 수 있는 음악을 연주하고 싶어요."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