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김정원·김규연 “피아노로 클라라·브람스 삶 들여다봅니다”
‘김정원의 음악신보’ 브람스편 3번째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악보는 2차원, 악보와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음악으로 빚어내는 공연장은 3차원, 공연장에서 연주자와 청중이 교감하며 각각 펼치는 상상의 나래는 4차원이다. 9월25일 오전 11시30분 롯데콘서트홀에서 펼쳐지는 ‘김정원의 음악신보’ 브람스편 3번째 ‘가깝고도 먼’은 이 다차원들이 시공간을 찢고 나오게끔 만든다. 올해 탄생 200주년인 클라라 슈만(1819~1896)을 비롯해 로베르트 슈만(1810~1856),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의 ‘사랑의 삼각관계’는 클래식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안다. 클라라와 로베르트는 부부였다. 브람스에게 클라라는 영원한 플라토닉 러브의 상대였다. 클라라를 만난 후 브람스는 독신으로 살았다. 로베르트가 숨을 먼저 거둔 뒤에도 마찬가지다. 클라라와 브람스는 음악적 영감을 주고받았다. 피아니스트 김정원(44)이 직접 지은 ‘가깝고도 먼’이라는 부제만큼 클라라와 브람스의 관계를 잘 설명하는 것도 없다. 김정원은 김규연(34)과 이들이 남긴 음표 속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를 정갈한 연주로 담백하게 풀어낸다. 브람스의 여섯 개의 피아노 소품, 클라라의 세 개의 로망스, 브람스의 슈만 주제에 의한 네 손을 위한 변주곡과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를 들려준다. 피아노라는 악기만 가지고 후대에 각인된 편견이라는 감옥에 갇힌 이들에게 생생한 생명력을 부여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곡은 브람스의 슈만 주제에 의한 네 손을 위한 변주곡, 즉 피아노 1대를 두 연주자가 함께 연주하는 연탄곡이다.
김정원과 김규연이 함께 연주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예전부터 이름은 서로 알고 있었지만 2년 전 폴란드 페스티벌에서 만나 나중에 연주를 같이 하자는 약속을 했고, 이번 무대를 위해 일찌감치 약속을 잡았다. 이번 무대는 세 음악가 중 음악적으로 가장 조명이 덜 된 클라라를 톺아본다는 점에서도 뜻깊다. 일부에서 두 남성 음악가의 뮤즈로만 여기던 클라라를 음악적으로 좀 더 조명할 여지를 준다. 사실 클라라, 로베르트, 브람스의 삶과 사랑은 관점에 따라 달라 무엇이라고 특정할 수 없다. 확실한 것 중 하나는 클라라가 로베르트, 브람스 못지않은 훌륭한 연주자 겸 작곡가였으며 두 사람의 곡을 알리는데도 열심이었다는 것이다. 지난 3월 로베르트 곡들로 독주회를 열었던 김규연은 클라라가 피아니스트와 작곡가로서 평가절하된 듯하다고 판단했다.
“클라라의 인생을 보면, 음악이 너무 중요했어요. 로베르트와 관계도 특별했던 것이 부부관계를 넘어 ‘음악적 동지’이기도 했거든요. 또 클라라는 아내, 엄마, 가장, 에디터로서 역도 다 맡았어요. 여성 음악가라기보다는 젠더를 초월한 인물이었죠. 근데 자녀들이 일찍 죽으며 비극을 겪었죠. 그런 삶에서 음악이 가장 큰 위로였고, 음악으로 구원을 받았죠.” 김정원도 클라라에 관해 “연주를 하면서 작곡을 했고 자식을 키웠고 남편 사후에는 그의 작품을 알리는데 큰 역을 했기 때문에 누구도 그녀에게 당해낼 수 없다”고 봤다. 감성과 전문성을 동시에 갖춘 피아니스트로 평가 받는 김정원은 클래식음악을 어려워하는 대중에게 친근한 호흡으로 다가가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안다. 2009년부터 2017년까지 경희대 교수를 지낸 그는 2017년 포털사이트 네이버 V살롱콘서트 총 예술감독직을 맡고 세종문화회관 상주 아티스트로 활동하며 다양한 공연 콘텐츠를 기획하고 연주했다. 지난해부터 롯데콘서트홀에서 열고 있는 ‘김정원의 음악신보’도 그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타이틀은 작곡가로서 빼어난 작품을 남긴 동시에 통찰력을 지닌 음악평론가로서 슈만이 글을 실어왔던 잡지 ‘음악신보’(Neue Zeitschrift fur Musik)’의 제목을 빌려 시리즈로 기획했다. 이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할 때는 좌석 200석가량을 오픈했는데 회가 거듭될수록 좌석수가 늘어나며 호응을 얻고 있다. “음악적으로, 내용적으로 누구나 클래식을 접할 수 있게 고민을 하고 있어요. 벽만 허물면, 좀 더 많은 소통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죠. 중요한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무대이더라도 곡에 대한 해설, 음악의 퀄리티가 다른 공연에 비해 떨어지면 안 된다는 거예요. 존경하는 선배님들, 규연씨가 같은 좋은 후배님들과 같이 설 수 있는 좋은 무대이기도 하죠.”
김규연은 ‘김정원의 음악신보’가 “가고 싶고 참여하고 싶은 무대였다”고 화답했다. 김규연의 어머니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대 음악원장을 지낸 ‘피아노계의 대모’ 이경숙(75)이다. 하지만 김규연은 어머니의 이름에 기대지 않고 홀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2010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입상, 2011년 클리블랜드 콩쿠르에서 입상한 그녀는 미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등지에서 독주회, 실내악, 오케스트라 협연을 하며 주목 받고 있다. 실내악 그룹 ‘오푸스앙상블’ 멤버다. 김규연이 현재 음악가로서 가장 크게 고민하는 부분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변화하는 것”이다. “예술가는 예술의 매개체가 되니, 예술에 따라 계속 변화하고 예술을 탐험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커져요. 여러 예술세계와 맞물리면서 저 역시 넓어지고 깊어지는 거죠. 주변에서 좋은 영향을 받고 저는 그것을 청중에게 전달해 드리고 싶죠.” 대표적인 중견 피아니스트로 통하는 김정원은 젊을 때부터 스타였다. ‘은실이’ ‘푸른 안개’로 유명한 드라마 작가 이금림(71)의 아들인데, 역시 어머니의 명성에 기대지 않았다. 이런 그를 보고 있노라면 품위 있게 나이 드는 법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주위를 잘 돌아보고 주변을 잘 챙긴다. “어느 순간 너무 치열하게 산 것이 아닌가, 라는 회의에 빠지기도 했어요. 욕심 때문에 제 자신을 다그치는 순간도 있었죠. 무대에서 혼자 조명을 받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도 사실이고요. 그러다보니 자기중심적이고 예민하게 돼 가족도 저 때문에 숨을 죽여야 했죠.” 그러던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가족이 더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음악이 너무 소중하고 좋은 것이지만, 음악보다 소중한 것이 많다는 걸 느끼게 됐어요. 제 삶에서 음악의 위치가 내려간 셈인데, 역설적으로 관계가 더 좋아졌다”며 미소지었다. 김정원과 음악 사이의 관계가 더 건강해진 것이다. “이전까지는 연주 전날 중압감이 정말 컸는데, 이제는 좀 더 편안하게 대할 수 있게 됐어요.”
한때는 자신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진지함이 오해를 받을까 걱정했다. 누군가는 오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한결같음에 대해 확신이 생긴 이후 개의치 않는다. 실제 김정원이 함께 연주를 한 김동률(45), 정재일(37) 같은 대중음악 뮤지션은 클래식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어느 장르의 음악가보다 진지한 이들이다. 최근 김동률이 발표한 신곡 ‘여름의 끝자락’의 연주를 맡은 것도 만족도가 정말 높았다. 절친한 김동률과 김정원이 제대로 협업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피아노와 보컬만 내세운 곡인데 오랜 기간 작업을 해서 만족도가 높고 그 작업 자체도 행복했다”며 미소지었다. 김규연 역시 좋은 음악가들과 작업이 빼곡하게 예정돼 있다. 10월 서울챔버뮤직소사이어티 창단 공연에서 소프라노 임선혜,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 첼리스트 박진영과 함께 연주한다. 김규연은 “계속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무대가 마련돼 감사하고 행복하다”며 웃었다. 남녀를 막론하고 음악과 사람에 감사한 이들에게 끌린다. 김정원과 김규연은 음악가로서 인간으로서도 매력이 유별나다. 그들이 주목하는 클라라, 로베르트, 브람스의 삶이 입체적으로 약동할 것 같은 이유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