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4관왕] '기생충'에 작품상...아카데미, 변화를 택했다
'백인 남성들의 잔치' 불명예 벗어나는 계기
[서울=뉴시스] 남정현 기자 =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에) 입후보되지 않았던 것이 확실히 이상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큰 문제거나 별일은 아니다. 아카데미는 국제영화제가 아닌 '로컬'(지역) 시상식이기 때문이다"(봉준호 감독) 아카데미 시상식을 '로컬 시상식'이라고 칭했던 봉준호 감독에 4관왕을 안긴 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백인 남성들만 가득한 그들만의 잔치'라는 불명예를 씻어냈다.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일이 실제 벌어지니 너무 기쁘고, 지금 이 순간이 상상도 못하고 역사가 이루어진 기분이 든다"는 기생충 제작자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의 소감처럼 아카데미에서 기생충 4관왕은 92년 아카데미 역사도 새로 썼다는 평가로 전 세계가 떠들썩하다. 아카데미의 변화는 단연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이다. 아카데미 역사상 외국어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건 '기생충'이 최초다. 또한 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탄 작품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탄 것도 1955년 미국 델버트 맨 감독의 '마티' 이후 64년 만이다. 이는 지난해 '그린북'을 통해 타 인종에 대한 수용의 메시지를 보인 아카데미가 올해에는 영어권 영화 이외의 비영어권 영화에도 문을 열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변화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아카데미가 '기생충'을 통해 변화를 택했다고 입을 모았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아카데미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색깔들에서 상당히 많이 탈피하고 있다고 의미 부여가 충분히 가능한 수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봉준호 감독의 '로컬' 발언은 아카데미는 계속 로컬로 갈 것인지 글로벌한 시대에 맞춰 바뀔 것인지 되묻는 답변이었다. 그에 대한 화답이 나온 것"이라고 짚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다양성을 추구하려는 움직임이 원래부터 있었는데 이번에 완전히 '기생충'에 작용을 했고, 투표하는 사람들이 그런 시대적인 흐름을 의식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보였다.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아카데미는 지난 몇년간 굉장히 정치적인 장이었다. 작품성에 대한 평가도 있었겠지만, 그런 (흐름에서) 전향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고 봤다.
아카데미의 변화의 흐름은 외국어영화상의 명칭 변경에서도 엿볼 수 있다. 1956년 외국어영화상이 생긴 이래 이 부문의 명칭이 변경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 역시 아카데미 시상식이 영미권 영화 뿐만 아니라 타 문화권을 포용하는 영화제로 변화하고자 함을 보여준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외국어영화상에도 국제영화상이라고 제목을 바꾼 것도 변화의 의미가 담겨 있다. '외국어'라고 말하면 아카데미가 스스로 로컬임을 말하는 꼴이다"라며 "(부문의 명칭 변경을 통해) 상의 의미를 바꾼 것"이라고 짚었다. 또한 아카데미는 시상식 공연을 통해서도 변화의 흐름을 보이기 위해 애썼다. 주제가상 후보에 오른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2'의 '인 투 디 언노운' 축하 무대가 그중 하나다. 무대는 원곡 가수 이디나 멘젤뿐 아니라 덴마크, 독일, 일본, 노르웨이, 폴란드, 러시아, 스페인, 태국 등 각지의 언어로 노래하는 10명의 가수들로 함께 꾸며졌다.
실제로 연기상 부문 후보에 지명된 유색인종 배우는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신시아 에리보가 유일했고, 감독상 후보에는 여성 감독이 한명도 오르지 못했다.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기생충'이 리스트에서 빠지면 백인 영화제가 된다. '기생충'은 아카데미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영화"라고 짚었다. 김시무 영화평론가는 "'기생충'에 알짜배기를 몰아주면서 소수자들의 영화나 동양인, 흑인에 대한 배려를 안 한게 있긴 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아카데미가 백인 남성 위주의 로컬 시상식이라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제기됐다. 2016년 아카데미 직전 연출자 스파이크 리 감독 등은 SNS에 '#Oscars_So_White'(오스카는 너무 백인잔치다)라는 해시태그로 아카데미상의 인종 편향을 비판했다. 그해 작품상과 감독상, 남녀주연상 등 주요 부문 후보에 유색인종이 단 한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개최 초기부터 미국의 백인 주류층인 '와스프'를 중심으로 꾸려진 아카데미상은 1980년대를 거치면서 비판에도 직면했지만 보수성을 털어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지난해까지 91년 동안 남우주연상을 받은 흑인 배우는 단 네 명 뿐이다. 흑인배우 에디 머피는 1988년 작품상 시상자로 나서 "아카데미는 흑인을 차별한다"고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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