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 연예일반

[인터뷰]이준익 감독 "자산어보, 욕심 덜고 본질에 집중했다"

등록 2021-03-20 06:00:00   최종수정 2021-03-29 09:34:01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조선시대 정약전 흑백으로 담아

"설경구·변요한 진실 연기 감탄"

소박한 인물 이야기...31일 개봉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영화 '자산어보' 이준익 감독.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2021.03.1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김지은 기자 = 시대극의 대가 이준익 감독이 돌아왔다. 조선시대를 흑백으로 그린 영화 '자산어보'다. 5년 전 국민시인 윤동주를 무채색으로 담아냈던 그는 이번에는 실학자 정약전을 조명한다.

대단한 영웅의 이야기가 아닌 소박한 인물들의 이야기로 그 시대에 몸부림치며 살아왔을 사람들의 흔적을 보여준다.

그동안 사건이 아닌 사람에 집중해 현시대까지 관통하는 역사 속 인물의 가치를 끄집어 낸 그다. 절대적인 존재도 아니다. 윤동주 삶엔 친구이자 영원한 라이벌이었던 송명규 열사를 주목했다면 정약전 옆엔 창대라는 젊은 청년을 세웠다.
 
19일 화상으로 만난 이 감독은 "한 시대의 위대한 인물의 있다면 그는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며 "그 시대를 헤쳐나간 사람들에 주목했다"고 '자산어보' 연출 의도를 밝혔다.

 영화는 흑산으로 유배된 후 책보다 바다가 궁금해진 학자 정약전(설경구 분)과 바다를 벗어나 출셋길에 오르고 싶은 청년 어부 창대(변요한)가 자산어보를 집필하며 벗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극은 조선 순조 1년(1801년) 천주교도를 탄압한 신유박해로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 남도의 끝섬 흑산으로 유배를 당하면서 전개된다. 신분도 가치관도 다른 이질적인 관계의 정약전과 창대가 자산어보를 집필하며 서로의 스승과 벗이 돼 참된 삶의 가치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심도 있게 담아낸다.

'자산어보'를 통해 우리 역사의 근대성를 다루고 싶었다는 이 감독은 동학에 대한 관심이 정약전의 이야기로까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5년 전 쯤 학문이자 농민혁명인 동학에 관심을 갖다가 왜 이름을 동학이라고 지었을까 생각하게 됐다. 그 앞을 보니 서학이 있었고, 서학이 무엇인가를 쫓아가다 보니 정약전이 있었다. 정약전이 갖고 있는 근대성을 영화로 담으면 재밌겠구나 싶었다."

정약전이라는 인물 개인에 초점을 맞춘 이유에 관해서는 "거대한 사건, 정치적 이슈, 전쟁, 영웅 이야기를 주로 사극에서 다룬다. 저도 그런 영화를 했는데 사극을 찍으면 찍을수록 사건보다는 사연에 더 관심이 간다"며 "거대 사건이나 전쟁에서 내몰려진 인간은 도구일 뿐이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가공된 설정보다는 일상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다.

이어 "자산어보는 소박한 인물들의 이야기다. 가공된 것이 아닌 그 시대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지 않나 생각했다"며 " 2시간이란 러닝타임 안에서 그 시대를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 정약전이란 생각이 들어 자산어보에 꽂혔다"고 보충했다.

정약전의 이야기는 실제 역사를, 창대는 허구의 이야기를 옮겼다.

이 감독은 '자산어보' 서문에 짧게 언급된 정도전의 창대에 대한 언급을 한 편의 이야기로 확장했다. 영화 시작에서도 '자산어보' 서문을 토대로 제작됐다는 것을 밝힌다

"실존 인물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쓸 때나 현장에서 영화를 찍을 때나 함부로 찍어나갈 수 없었다. 정약전, 정약용은 기록이 있어서 표현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으나 창대는 기록에 이름과 몇몇 구절만 있어서 그의 배경은 허구다. 창작의 여지가 있어 가족 관계와 배경 등을 새롭게 만들었고 약전이라는 인물의 선명성을 드러내기 위한 기능성을 창대에게 부여했다. 고증과 허구가 적절하게 짜인 이야기로 봐주셨으면 한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이준익 감독.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2021.02.22 [email protected]

색채 배제해 인물이 가진 본질적인 형태에 집중
울림이 있는 이야기에 더해 수려한 영상미도 백미다. 전남 신안군 도초도를 비롯해 비금도 등에서 촬영하며 흑산의 아름다운 풍광도 재현했다. 무채색의 미학을 담아 수묵화 같은 흑백의 묵직한 힘이 전달된다.

'동주'에 이어 두 번째로 흑백 영화를 제작한 이 감독은 "화려한 색채를 배제해 인물이 가진 본질적인 형태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흑백 영화로 연출했다"며 "조선시대를 흑백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서 고집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동주'의 성과도 발판이 됐다. 이 감독은 "동주는 제작비 5억원으로 찍는 말도 안되는 짓을 했다. 결혼식장에서 쓰는 비디오 카메라로 찍었다. 검은색이 선명하지 않고 뿌옇다. 저렴한 장비를 썼다"면서도 "동주를 찍으면서 보이는 것에 대한 달성이 뭐가 그렇게 필요한가 느꼈다. 암울한 시대의 정신만 보여주면 됐지 해서 더 남루하게 표현하기도 했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동주 성적이 괜찮아서 이번에는 좀 더 해보자는 욕심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과유불급이라 욕심을 덜어내기 위해 계속 노력했다. 본질에 집중하는 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associate_pic
[서울=뉴시스] 영화 '자산어보' 스틸.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2021.03.19 [email protected]


"설경구·변요한, 인물 그 자체였다"
배우들의 빈틈없는 열연도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설경구는 첫 사극이라는 것이 무색할 만큼 정약전이라는 인물이 돼 캐릭터에 완벽히 녹아들었다. 4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변요한도 가치관의 변화를 겪는 청년 창대 그 자체였다.

이 감독은 설경구에 대해 "이전에 영화 '소원'에서 만났는데 배우 이전에 사람으로서 감동했다. 관객은 연기한 외면을 보지만 현장에서는 내면을 본다. 정말 진실한 인간"이라며 "설경구 얼굴에서 조선의 선비 상을 봤다. 내면이 우러나오는 느낌이 있다. 그 자체를 만났을 때 감탄스러웠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와 한 방을 썼었는데, 어릴 때 내가 봤던 할아버지가 카메라 앞에 서는 듯했다"고 극찬했다.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변요한을 향해서는 "솔직히 이렇게 잘할지 몰랐다. 이런 역할을 본 적이 없다. 창대의 여정을 때론 차갑게 또 뜨겁게 해내는데 가짜 같은 연기가 없었다. 그냥 창대로 보였다"고 추어올렸다.

자산어보는 31일 개봉한다. 공교롭게도 코로나 상황 속에서 올해 포문을 여는 한국 상업영화가 됐다.

"나이가 많아서 이제 한 두개 망하면 접어야 한다(웃음). 나를 위해서라기보다 이 영화에 투자한 사람들을 위해서 흥행했으면 한다. 투자한 돈에는 다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그런 면에서 흥행에 대한 부담이 아니라 공포가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 리플
위클리뉴시스 정기구독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