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문화일반

[변연배의 이야기와 함께하는 와인] 우리나라에선 누가 처음 와인을 마셨을까

등록 2023-04-15 06:00:00   최종수정 2023-04-15 09:47:38
  • 크게
  • 작게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associate_pic
2010년 방영한 KBS 다큐멘터리 ‘고선지 루트’. (사진=KBS 제공)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와인과 관련해 우리나라 사람의 이름이 최초로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고려시대다. 조선 초기 편찬된 ‘고려사’와 ‘고려사 절요’, 고려시대 관리의 문집 등에 그 기록이 남아 있다.

그 이전에 와인을 마신 인물에 대해 직접적인 기록은 없지만, 역사적 정황을 바탕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중국 와인의 역사에는 뜬금없이 고구려 연개소문(淵蓋蘇文, 594~666)이 등장한다. 산동반도 연태 지역은 오늘날 중국 제일의 와인 산지이다. 이 지역 와인 산업의 역사를 소개할 때 연개소문의 이름이 나온다.

643년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침공한다는 소식을 들은 연개소문이 산동반도로 건너와 지금의 연태 부근에서 전쟁이 벌어진다. 사로잡힐 뻔한 당 태종이 가까스로 도주한 뒤 백성들의 노고를 치하해 포도나무를 하사한 것이 이 지역 와인의 기원이라는 내용이다.

중국의 야사에도 기록이 있다. 청나라 시절 편찬된 ‘즉묵향토지’(卽墨鄕土志), ‘마산지’(馬山志), ‘평도주지’(平度州志) 등에 이와 관련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연개소문과 와인이 직접적으로 연결된 기록은 없다. 다만 고구려에 복속된 말갈족이 와인을 양조했고, 대막리지였던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시해하고 보장왕을 옹립할 정도의 권력자였음을 감안하면 그가 그 당시 진귀한 물건이던 와인을 접했을 가능성은 크다.

고선지(高仙芝, ?~756) 장군은 고구려 왕족 출신의 유민이다. 고구려 멸망 후 당나라에 포로로 잡혀 하서4진(河西四鎭)에서 하급장교 십장(十將)이 된 고사계(高斯界 혹은 高舍雞)의 아들이다. 구당서와 신당서의 고선지전에는 그가 고구려인이라 명시돼 있다. 고선지는 20세 때 서역의 안서4진(安西四鎭)에 배치된 아버지를 따라가 20대 초반에 군인이 됐다. 머지않아 아버지와 같은 반열의 유격장군이 되고, 안서도호부 부도호를 거쳐 안서4진 도지병마사로 승진했다. 747년 파미르 고원을 넘어 중앙아시아까지 원정했다. 751년 서양사에서도 유명한 아랍 연합군과의 탈라스 전투를 지휘했다. 나중에 밀운군공(密云郡公)이라는 작위도 받는다.

그는 뛰어난 전략가이자 위대한 장군이었다. 시성 두보도 ‘고도호총마행’(高都護驄馬行)이라는 시에서 고선지 장군의 지략과 용맹함을 찬양했다. 신당서에는 그의 용모가 수려했다는 표현도 있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쿠차(구자; 龜玆)에 지휘부를 둔 안서도호부는 중국 와인의 기원지인 지금의 신장 위구르 지역과 하서회랑이 있는 양주(凉州) 지역을 관할했다.

고선지 장군은 양주자사도 역임했다. 양주는 후한 말 맹타(孟佗)가 십상시의 우두머리인 장양에게 와인을 뇌물로 바쳐 양주자사의 관직을 샀다는 고사성어 ‘일곡양주’(一斛凉州)가 탄생한 곳이다. 맹타는 자사가 된 후에도 와인을 계속 바쳐 7년간 자리를 유지했다.

와인이 중국 본토에 처음 전래된 시기는 한 무제 때인 기원전 115년이다. 장건이 중앙아시아의 페르가나에서 와인과 함께 비니페라 품종의 포도나무를 처음 중국 본토로 가져왔다. 와인을 좋아한 시선 이백도 중앙아시아 출신이다. 남북조 시대에는 한때 서역의 통제권을 잃었다가 640년경 당 태종이 지금의 투루판인 고창(高昌)을 정벌한 후 안서도호부를 설치하며 다시 영향력을 행사한다.

당나라 시절은 고대 중국 와인의 전성기였다. 당 태종은 지금의 투루판인 고창(高昌)에서 가져온 포도나무를 궁중에 심고 와인을 양조하는 관청을 뒀다. 중앙아시아 및 신장 지역으로부터 와인을 조공 받고, 수입도 했다. 특히 안서도호부는 서역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조공을 관장했다. 술은 그 당시 군대의 주요 보급품 중 하나였고, 서역에 배치된 병사들도 와인을 마셨다. 두보도 안서도호부에 잠시 머문 적이 있다. 역사적 정황으로 보아 고선지 장군은 와인을 마셨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당나라가 존속한 289년간 신라는 126번 사신을 보내고 당나라는 34번 사신을 보내는 등 신라는 당나라와 가장 밀접하게 교류한 나라였다. 100만명이 살던 당시 세계 최대 도시 장안에는 외국인 비율이 2%나 되었다.

여기엔 신라에서 온 승려들도 있었다. 실명이 남아 있는 이들만 해도 130명이나 된다. 외국인 중 가장 많았다. 당나라는 불교의 전파를 장려해 외국에서 온 구법승들에게 매년 비단 25필과 사계절 의복을 제공했다. 왕오천축국전을 쓴 혜초(慧超, 704~787)도 그들 중 하나였다. 혜초는 723년 장안을 거쳐 인도를 비롯 40여개국을 순례했다. 그 중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타림 분지의 쿠차와 소륵국 등은 그 당시에도 포도밭이 무성했던 와인 산지였다. 혜초는 이곳에 포도가 풍부하다고 기록했다. 밀교(密敎)를 수행했던 혜초도 교리상 금지되지 않았던 와인을 접했을 가능성이 크다.

신라 유학생 중 821년 처음으로 당나라의 빈공과에 합격해 지금의 산동성 지역인 연주(兗州)의 도독부사마를 지내고 중국의 문인들과 활발히 교유한 김운경(金雲卿, ?~?), 당나라 무령군 소장을 거쳐 동아시아의 해상무역을 장악한 장보고(張保皐, ?~846)도 와인을 마셨을 가능성이 큰 인물이다. 장보고는 산동성 등주(登州, 지금의 연태지역 부근)에 신라방을 개설하고 왕래 했다.

이 중 와인과의 연관성 및 역사적 근거가 가장 뚜렷한 인물은 고선지 장군으로 보인다.

▲와인 칼럼니스트·경영학 박사·딜리버리N 대표 [email protected]
Copyright © NEWSI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프린트
  • 리플
위클리뉴시스 정기구독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