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강윤성과 캐릭터들
디즈니+ 시리즈 '파인:촌뜨기들' 각본·감독'범죄도시' '카지노' 이어 캐릭터 연출 호평"배우에 캐릭터 맞춰서 살아 있게 만들어"양정숙·복근·덕산·벌구 등 캐릭터 재창조"캐릭터 향한 애정…인간미 보려고 한다""앞으로 여성 캐릭터 더 잘 만들고 싶어"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강윤성(54) 감독 영화·시리즈엔 공통점이 있다. 작품 전체 완성도를 두고 의견이 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도 인상적인 캐릭터를 하나 이상 반드시 남겨놓는다는 것이다. 강 감독 전작을 하나씩 떠올려 보면 정말이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범죄도시'(2017) 장첸(윤계상)은 한국영화 희대의 악당 중 하나. 미워할 수 없는 범죄자 장이수(박지환)도 이 영화에서 탄생했다. '카지노'의 차무식(최민식)이나 양정팔(이동휘) 혹은 고회장(이혜영)도 한 번 보면 잊기 어려운 캐릭터였다. 강 감독은 새 작품인 디즈니+ 시리즈 '파인:촌뜨기들'에서도 특유의 캐릭터 플레이를 선사한다. 주요 등장 인물만 10여명에 달하는 이 작품은 캐릭터 하나 하나가 시청자 눈에 들어와 꽃히는 흡사 캐릭터 향연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많은 배우들이 강 감독과 함께 일하고 싶어 한다. 임팩트를 남기는 데 강 감독 작품에 출연하는 것만큼 좋은 게 없기 때문이다. "글쎄요. 아마도 그건 제 방식이 매우 배우 친화적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강 감독에게 왜 유독 당신 작품에서 캐릭터가 돋보이는지, 배우들이 왜 당신과 일하고 싶어하는지 생각해봤느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배우들을 캐릭터로 끌어들이지 않는다. 캐릭터를 배우에 맞춘다"고 말했다. '파인:촌뜨기들'은 1977년을 배경으로 수백년 전 신안 앞바다에 침몰한 배에 남아 있다는 도자기를 차지하기 위해 몰려든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시리즈는 강 감독 전작과 달리 원작이 있다. 윤태호 작가가 2014~2015년 연재한 만화 '파인'이다. 워낙에 탄탄한 원작이 있어서 좋은 캐릭터가 나온 것 아니겠느냐고 할 수 있지만,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파인:촌뜨기들'의 캐릭터는 분명 웹툰을 뿌리에 두고 있지만 웹툰에 없는 새로운 매력을 뿜어내며 시청자 지지를 이끌어냈다. 임수정이 연기한 '양정숙', 정윤호가 맡은 '벌구', 김진욱이 책임진 '복근', 권동호가 연기한 '덕산'이 그렇다. 원작에선 상대적으로 밋밋하거나 매력이 덜했던 인물이 시리즈에선 뒤돌아서도 자꾸 떠오르는 캐릭터로 다시 태어났다. "전 바꾸는 걸 주저하지 않아요. 제가 쓴 대사를 배우가 흉내내려는 게 싫습니다. 어떤 인물이 정말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려면 배우가 실제로 쓰는 언어로 연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제가 생각했던 캐릭터와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의 외모가 다르다면 전 배우에 맞게 캐릭터도 고치고 대사도 바꿔버립니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선 배우들을 끊임없이 관찰해야죠. 아마 그래서 제 작품이 캐릭터가 좋다는 말을 듣고, 배우들이 저와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강 감독은 캐릭터를 잘 살리는 방법 중 하나로 애정을 꼽았다. 인물 하나 하나를 아끼며 다듬어 간다는 얘기였다. 그는 일례로 임수정이 연기한 양정숙을 꼽았다. 양정숙은 원작과 시리즈 간 간극이 가장 큰 인물. 원작에선 탐욕이 공포스럽게까지 느껴지는 불쾌한 인물인데 반해 시리즈에선 지나친 욕망을 가지고 있긴 해도 인간적인 면모가 없지 않은 매력 있는 캐릭터가 됐다. 강 감독은 "원작을 읽을 때 이 여자가 불쌍해 보였다"고 했다. 원작에서 다소 평범한 외모를 가진 양정숙을 임수정에게 맡긴 것 역시 강 감독의 이런 시각이 담긴 캐스팅이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한 번도 제대로 사랑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던 거죠. 이 여자가 희동을 만나서 그런 말을 하죠. 안아달라고, 너네 연애하는 것처럼, 이라고요.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고 연애하는 방법도 모르는 겁니다. 그 모습에서 전 인간미를 봤습니다. 임수정씨와 대화하면서 캐릭터를 그런 방향으로 잡아나갔습니다. 시리즈의 양정숙은 귀여운 면이 있어요.(웃음)" 원작자인 윤 작가가 '파인:촌뜨기들'을 본 뒤 가장 좋아했던 부분 역시 양정숙이었다고 한다. 윤 작가는 강 감독에게 원작의 양정숙보다 시리즈의 양정숙이 더 좋다고 했단다. 윤 작가는 다른 인터뷰에서 "양정숙은 원작에선 '사모'로 불리고 이름도 없었다. 그런데 시리즈로 가서 양정숙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강 감독이 양정숙을 나보다 더 잘 이해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강 감독 작품은 주로 남성 캐릭터만 나왔다. 여성 캐릭터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 비중이나 역할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수준이었다. 이 지점에서 '파인:촌뜨기들'은 강 감독의 캐릭터 조형에 새로운 문을 열었다고 볼 수도 있다. 앞서 얘기한 양정숙이 여성 캐릭터로서 주인공이었고, 김민이 연기한 '박선자' 역시 이 이야기의 방향을 바꿔놓는 키플레이어 중 하나다. 강 감독은 "여성 캐릭터를 더 적극 활용하고 싶었고, 앞으로 작품 내에서 여성 캐릭터 비중을 더 늘려가고 싶다"고 했다. "제가 예전엔 여성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던 것 같습니다. 마초적인 기질이 있다 보니까 여성 캐릭터에 대해 잘 생각해보지 못했고, 표현할 줄도 몰랐어요. 어쩌면 제 한계일 수 있는 부분을 여성 캐릭터가 명확하게 있는 이 작품을 통해서 보완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비중을 원작보다 조금 더 늘려본 것이고요. 앞으로도 여성 캐릭터를 더 잘 만들 수 있는 감독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장르 중 하나가 멜로입니다.(웃음)"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