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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중독②]“인간관계 단절, 정신·신체 해로워…'스몸비' 사고 위험"

등록 2016-04-19 06:00:00   최종수정 2016-12-28 16:5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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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디지털 중독을 풍자한 장 줄리앙의 작품
【서울=뉴시스】신정원 기자 = #. 모처럼 한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원래대로라면 음식을 먹으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눠야 하겠지만 이들은 서로를 외면한 채 자기 손에 들려 있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디지털 기기만 주시하고 있다. 식사도 뒷전이다. 서로를 향한 관심과 애정, 웃음은 보이지 않는다. 남은 것은 무서운 적막함뿐이다.

 #. 한 남자가 잠을 자려는지 침대에 모로 누웠다. 하지만 한쪽 눈은 뜬 채다. 그 눈이 응시하는 것은 빛이 남아 있는 휴대폰이다.

 #. 나란히 앉은 세 사람이 모두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있다. 같은 공간에 함께 있지만 단절됐다. 다음 컷에선 같은 자세로 각자 자기 왼쪽 팔에 찬 스마트 워치만 보고 있다. 스마트 기기는 진화했지만 단절된 것은 마찬가지다.

 #. 한 남자가 휴대폰으로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휴대폰엔 족쇄가 채워져 있다. 이 사람은 이미 휴대폰의 노예다.

 프랑스 출신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래픽 디자이너 장 줄리앙의 작품들이다. 스마트 기기는 작품 속 식사 자리에서도, 화장실에서도, 잠자리에서도, 휴가지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심지어 가족, 연인과 함께 있어도 기기에만 집중하는 모습이다. 종일 디지털 기기를 놓지 못하는 현대인의 일상이다.

 ‘디지털 중독’의 위험성과 세태를 풍자한 이 작품들은 ‘디지털 기기의 발전은 인류에게 축복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삶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 손안의 작은 컴퓨터’인 스마트폰을 비롯해 디지털 기기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지만 그만큼 인류가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기가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다른 사람 대신 기기와 소통한다. 그러다 스마트 기기 없이 살 수 없는 ‘디지털 중독’에 이르면 노예가 되기도 한다. 혹자가 “디지털 기기의 진화는 인류에게 ‘야누스(Janus)의 얼굴’과 같다”고 한 말이 설득력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디지털 치매’ 위험…정서·신체건강도 비상

 미국의 미래학자 니컬러스 카는 저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컴퓨터와 인터넷을 무조건 믿고 무분별하게 사용하면서 가벼운 지식이 양산됐다. 인터넷을 통한 맥락 없는 정보만 추구하게 되면서 우리 사고방식은 지극히 경박해졌고 뇌 구조까지 물리적으로 취약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기기 의존도가 높아지자 전화번호와 이름, 일정을 기억하거나 계산하는 것은 고스란히 기기의 몫이 됐다. 기억력과 계산 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디지털 치매’도 디지털 혁명이 가져온 어두운 단면이다. 깊게 생각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반응하는 증상 역시 지나치게 디지털 기기에 의존한 결과다.

 미국 템플대 심리학 연구팀의 연구 결과도 주목할 만하다. 이 연구팀은 “SNS를 이용하거나 체크하기 위해 끊임없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의 대다수는 참을성이 적고 충동적인 것으로 나타났다”며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기기에 중독되면 성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정보화진흥원(NIA) 2014년 스마트폰 중독 실태 조사에선 디지털 중독의 부작용으로 ‘우울’(51.7%), ‘불안’(46.3%),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장애(ADHD)’(16.5%)(이상 복수응답) 등이 있었다. 중독수준에 따라서는 중독 위험군은 ‘불안’(52.6%)을, 일반 사용자군은 ‘우울’(59.4%)을 더 많이 느꼈다.  

 신체적으로도 ‘시력저하·안구건조·두통·위장장애·만성피로 등’(54.1%), ‘목·어깨·허리·다리·손목 등의 통증’(51.0%), ‘비만’(14.8%) 등의 부작용이 나타났다.

 ◇주의력·반응속도 떨어져…‘스몸비’ 사고 위험 커

 A(33)씨는 며칠 전 겪었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철렁하다.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에 다운받은 영화를 보며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데 갑자기 자동차 한 대가 ‘끽’ 소리를 내며 오른쪽 옆구리에 닿을 듯 말 듯 급정차했다. 당황해서 그 자리에 얼음처럼 서 있었는데 “눈을 어디에 두고 다니느냐”는 운전자의 고함이 들려왔다. 정신을 차려 보니 신호등은 이미 적색으로 바뀐 뒤였다.

 A씨는 “당시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정말 십년감수 했다”며 “인터넷에서 스마트폰 사용자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그런 일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다”고 돌아봤다. 그는 “운전자에게 정말 호되게 욕을 먹었지만 그래도 살아있어 다행”이라며 “앞으로 길거리에선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좀비처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도 더는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들을 ‘스마트폰(smart phone)’과 ‘좀비(zombie)’의 합성어인 ‘스몸비’라고도 부른다.

 교통안전공단의 ‘스마트폰 사용이 보행안전에 미치는 위험성 연구’ 결과를 보면 스마트폰을 보며 걷다 발생한 교통사고는 2009년 437건에서 2013년 848건으로 증가했다. 또 걸으면서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사고 위험이 76%나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각한 교통사고가 아니라도 사고 위험은 널렸다. 걷다 장애물을 보지 못하거나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경우도 흔하다. 반대편에서 마주 오던 사람과 부딪히기도 한다.

 교통안전공단 관계자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걸으면 평소 시야각 120~150도보다 10~20도 정도 줄어들어 그만큼 돌발 상황이나 장애물에 대처하기 힘들어진다”며 “주의력이 떨어지고 반응속도가 느려져 사고 위험을 높인다는 점을 명심해 가급적 길거리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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